박인환, 독한 드라마 홍수 뚫고 아름답게 날아오른 ‘나빌레라’의 수석 무용수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담하기)]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는 튀지 않아서 오히려 눈에 띄는 드라마다. 최근 주목받는 드라마는 유독 독한 작품들이 많다. 최고 인기 드라마인 SBS <펜트하우스2>에는 독한 설정들이, JTBC <괴물>이나 tvN <마우스>는 아예 내용 전체가 잔혹한 살인들 위에서 진행되는 독한 장르물들이다.

역사 왜곡 문제로 조기 종영됐지만 SBS <조선구마사>도 마찬가지이고 독한 설정이나 내용의 드라마들이 대대적으로 TV에 몰려오고 있다. 뻔한 연애담이 전부였던 과거 드라마에 비해 다양한 소재와 표현을 만날 수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아무래도 텐션 높은 독한 드라마만 거듭 시청하는 일은 피로감을 높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라 <나빌레라>는 착한 드라마, 따뜻한 드라마라 텐션은 낮은데도 역설적으로 도드라진다. <나빌레라>70세 노인의 발레 도전기다. 좀 더 정확히는 나이 일흔 심덕출(박인환)이 발레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과, 어쩌다 덕출의 선생이 된 스물셋 발레리노 이채록(송강)의 성장이 함께하는 웹툰 기반 드라마다.

덕출은 집배원에서 은퇴 후 어릴 때부터 자신을 매혹했지만 가계를 책임지느라 마음 깊숙이 담아만 뒀던 발레의 세계에 어렵게 발을 들인다. 채록은 아버지가 감옥에 간 어떤 사연으로 방황하다 덕출을 만난 후 꿈을 향한 도전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왜 발레를 하려냐는 채록의 질문에 한번은 날아오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는 덕출은 <백조의 호수>로 무대에 서고 싶다는 목표를 향해 뜻대로 잘 안되는 몸을 노력으로 어렵게 극복하며 나아가지만 문제는 안팎에서 다가온다. 채록은 물론 덕출 부인과 장남, 딸 등 많은 주변 사람들이 노인이 무슨 발레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덕출은 포기하지 않는다.

채록은 처음엔 귀찮기만 하던 덕출이 자신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매니저 역할까지 하면서 보여주는 진정성과 삶의 지혜에 서서히 마음이 열린다. 가족들도 반대하던 입장에서 서서히 태도가 바뀐다. 이 과정에서 덕출과 채록은 점점 가까워지고 각자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간다.

6회 방영을 마친 현재 덕출은 발레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조급한 마음에 채록에게 발레 고급 동작 교습을 재촉하다가 채록의 스승인 기승주(김태훈)로부터 아직 많이 부족한 기본부터 충실하지 않으면 발레를 자신과 채록이랑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경고를 받고 스스로의 성급함을 반성한다.

드라마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박인환이 발레복 입은 모습은 눈에 편하게 들어오는 장면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몸선과 포즈의 젊은 발레리노들에 대한 축적된 기억은 세월의 무게가 얹힌 노년의 매끈하지 못한 체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웹툰에서 덕출은 그나마 얼굴도 작고 비율도 나쁘지 않았는데 드라마로 오니 머리는 커보이고 몸은 왜소한 전형적인 한국 보통 남자 비율을 가진 박인환으로 실사화되면서 더욱 그러했다. <나빌레라>, 좋은 이야기겠지만 노인이 발레리노에 도전한다는 설정에 다소 과함이 있어 실사화한 드라마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을까 싶었다.

드라마가 시작되자 박인환은 반전의 마법을 보여줬다. 꿈에 도전하는 순간, 꿈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동안 노인의 초라한 몸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어떤 젊음보다 젊고 아름다운 표정과 말과 행동의 덕출만이 드라마를 채웠다.

일흔에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노인은 주변 사람들의 난관 극복을 돕는 지혜와 안정감을 보여주는데 이런 설정을 박인환은 공감을 극대화하는 연기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발레를 할 수 있게 되면서 해맑게 행복해하는 덕출의 표정과 말투는 박인환보다 더 잘 연기할 배우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나빌레라>에는 삶과 꿈에 대한 명대사와 감동적인 상황이 이어지는데 박인환을 중심으로 송강과 나문희 그리고 그 외 출연 배우들이 만드는 앙상블의 결과다. 아름다운 발레 공연이 그러하듯 <나빌레라>의 배우들은 수석 무용수처럼 극을 이끄는 박인환과의 호흡으로 아름다운 드라마를 빚어내고 있다.

드라마가 보통 끝을 궁금해하며 보는 것이지만 <나빌레라>는 특히 마지막이 궁금하다. 박인환은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날아오르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삶과 관계에 대한 통찰과 감동이 뒤따를 것 같으니 그런 엔딩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게 하는 <나빌레라>는 드라마로서는 이미 날아오른 듯하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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