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마라맛에 질렸나, ‘나빌레라’의 순한 맛이 더 끌린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사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는 시작 전부터 과연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원작 웹툰이 가진 막강한 감동스토리의 힘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독한 마라맛드라마들 속에서 어찌 보면 너무나 순한 맛으로 느껴질 수 있어서다.

방송 시간이 완전히 겹치지는 않지만 마침 시작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시작부터 19금을 내걸었고, 그 기치에 걸맞게 목이 잘려나가고 머리가 으깨지며 도륙된 시체들이 하얀 눈을 붉게 물들이는 장면들을 내보였다. 여기에 우리네 사극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왕세자 양녕대군(박성훈)이 애첩 어리(이유비)와 벌이는 애정행각도 담겨졌다. 당연히 셀 수밖에 없는 극성이다.

그 결과 <조선구마사>의 첫 회 시청률은 8.9%(닐슨 코리아)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고, 반면 <나빌레라>2.8%라는 소소한 시청률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수치의 방향은 2회에서는 희비쌍곡선을 그었다. 첫 회부터 반중 정서에 기름을 붓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거센 역풍을 맞게 된 <조선구마사>6.9% 시청률로 주저앉은 반면, <나빌레라>2.9%로 아주 천천히 상승세를 이어갔다.

물론 논란이 불러온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나빌레라>에 대한 반응은 이런 외부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뜨겁다. 이제 칠순을 넘긴 할아버지 덕출(박인환)과 스물셋 청춘 채록(송강)이 함께 발레를 해가며 만들어가는 특별한 브로맨스가 의외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끌어당기고 있다.

<펜트하우스><조선구마사> 같은 마라맛 드라마들이 눈과 귀 같은 감각을 얼얼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라면, <나빌레라>는 가슴을 툭툭 건드리는 드라마다. 칠순의 노년에도 하고 싶었던 발레에 도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덕출의 모습은 그 어떤 복잡한 서사나 강력한 극성을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어쩌다 덕출의 발레 선생을 떠맡게 된 채록이, 발끝을 올린 채 자세를 유지하는 발란스 자세1분 간 버티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고 조건을 내세우자, 덕출이 그걸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눈물겹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그 동작을 애써 취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발과 손을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버텨내고 있는 덕출의 얼굴은 보는 이들을 찡하게 만든다. 그 얼굴에 그가 가진 발레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빌레라>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그 결말을 예상하게 만든다. 물론 진짜 덕출이 꿈꾸던 백조의 호수를 그가 발레로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렇게 도전과 열정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그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런 도전과 열정은 고스란히 스스로 과거에 붙잡혀 제 발을 묶어 놓고 살아가는 채록에게도 나비효과같은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네 드라마에서도 이제 막 19금의 자극적인 세계가 열리고 있는 요즘이다. 그것은 시대의 요구로서 당연한 일이고, 또 글로벌 경쟁력을 생각해보면 응당 우리도 뛰어들어야 하는 길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강력한 자극의 얼얼한 마라맛 드라마들이 많아지면서, 정반대로 가슴을 채워주는 <나빌레라> 같은 순한 맛 드라마가 끌리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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