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왕후’에 이어 ‘조선구마사’까지, 박계옥 작가의 위험한 상상

[엔터미디어=정덕현] 역대급이다. 드라마가 재밌다는 뜻으로서의 역대급이 아니다. 목이 날아가는 생시들(살아있는 시체)과 태왕의 환영을 보고 착각해 민초들을 모조리 도륙하는 태종(감우성). 19금 등급이긴 하지만 그 자극이 역대급이고, 사실상 좀비에 악령까지 깃든 생시들과 사투를 벌이는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에 굳이 태종, 충녕대군(장동윤), 양녕대군(박성훈) 같은 실제 역사 속 인물을 고스란히 채워 넣은 그 만용이 역대급이다.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방영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조선 좀비를 그려 글로벌한 K좀비 열풍을 이끌어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과는 완전히 상반된 반응들이었다. 가장 큰 우려의 요인은 <킹덤>과는 달리 역사 속 실존인물들을 굳이 주인공으로 세워 역사왜곡의 불씨를 심어 놨다는 점이다.

예상대로 드라마는 첫 회 방영만으로 논란의 불씨에 불을 지폈다. 굳이 역사 속 실존인물을 끌어다 쓸 이유가 전혀 없는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태종, 충녕대군, 양녕대군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신경수 PD완벽한 허구로의 지향이 이 드라마가 구현해야 할 공포의 현실성을 앗아갈까 걱정이 되어서였다고 밝힌 바 있다. 실감나는 공포를 위해 역사 속 인물을 썼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공포 같은 자극을 위해 역사 속 인물을 이용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이라 볼 수 있을까.

문제는 실존 인물을 썼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 아무리 허구라고 사전고지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허구라면서 실존 인물은 왜 썼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그 시공간적 디테일에 대한 고증은 있어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첫 회부터 조선이라고는 볼 수 없는 잘못된 시공간적 디테일들을 채워 넣는 우를 범했다.

서역에서 온 무당(구마사) 요한(달시 파켓)의 통역사 마르코(서동원)가 기생집 대접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중국식으로 가득 채워진 디테일들은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검은 도자기에 빨간 색으로 ()’라고 써진 술병, 중국식 월병, 만두, 심지어 피단(오리알을 석회 등이 함유된 진흙, 왕겨 등에 넣어 삭힌 것) 등이 술상에 올라와 있었던 것. 시청자들은 <조선구마사>가 아닌 중국구마사라며 분노를 터트렸다.

하필이면 최근 중국의 전파공정때문에 가뜩이나 예민해진 시청자들이었다. 잘 나가던 tvN <빈센조>가 중국 PPL 논란으로 휘청했던 게 불과 한 주 전 이야기다. 결국 역대급 드라마에 시청자들의 역대급 요구가 이어졌다. 첫 회 만에 조기종영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진 것. 앞뒤 전후 사정을 들여다보면 시청자들의 이런 요구는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여겨진다.

<조선구마사>를 쓴 박계옥 작가는 전작이었던 tvN <철인왕후>에서도 판타지 사극에 굳이 실존인물인 철종과 순원왕후, 안동김씨, 풍양조씨 가문을 등장시켜 논란을 일으킨 바 있고, 특히 조선왕조실록 다 지라시네같은 과한 대사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물론 이런 역사적 인물을 가져다 쓰고, 파격적인 설정으로 역사적 상황들을 헤집는 자극적인 이야기로 이 드라마는 무려 최고시청률 17.3%(닐슨 코리아)를 기록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철인왕후>는 그 판타지 설정을 통해 조선시대라는 공간으로 넘어간 인물이 다른 성을 체험하며 드러내는 파격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었지만, <조선구마사>는 과연 그런 부분이 존재할까 싶다. <킹덤>과는 다르다고 했지만, 벌써부터 좀비에 오컬트, 사극의 여러 부분들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아류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다. 어째서 <조선구마사>는 이런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 걸까. 저의까지 의심받는 역대급 선택의 결과가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시작부터 조기종영 요구가 거셉니다. 박계옥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의 역사왜곡과 개념부족이 나은 참사인데요. 왜 그런지 정덕현 평론가가 짚어봤습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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