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역사에 대한 고민이 휘발된 탈정치의 유해함
예쁜 로맨스 만들겠다는 욕망으로 시대의 본질을 생략하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JTBC 주말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민주화 운동을 비하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안기부를 미화하는 역사수정주의적인 작품”이라며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가 거센 가운데, 그 반대편에서는 “작품은 작품으로 볼 것”, “사람들이 시놉시스만 보고 오해하는 것이고, 직접 보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라는 목소리들이 조금씩 나오는 중이다. 정말 직접 보면 다를까? 직접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직업인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그래서 이 가장 뜨거운 논쟁의 한가운데에 놓인 텍스트를 한번 직접 보기로 했다. 직접 보니 “간첩이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같은 주장을 하려는 작품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보다 더 큰 단점이 산더미처럼 쌓인 작품이라는 게 문제였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1987년을 똑똑히 기억하는 정석희 평론가는, <설강화>가 시대배경을 “내키는 대로 바꿔 치울 수 있는 벽지나 칠” 취급을 하느라 온통 이음새가 이상한 작품이라 “정해인과 지수가 아니었다면 화제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라 평한다. 자신들이 배경으로 삼고자 하는 시대의 외관도 정신도 제대로 재현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혹평이다.
이승한 평론가는 그 이유를 “‘절절한 사랑 이야기’의 무대가 되어줄 배경으로서의 의미를 제외하면, 배경이 된 시대에 별 관심이 없”는 제작진의 태도에서 찾는다. 전대협이 막 결성되고 직선제 개헌이 통과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세계를 사는 대학생들은 시대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고, 안기부 요원도 남파간첩도 자신들이 수행하는 임무의 정치적 맥락을 하나도 짐작하지 못한다. 모두가 고도로 정치적이었던 시기를 예쁜 로맨스의 배경으로 소비하기 위해 정치성을 탈색하는 ‘탈정치’의 태도가, 사실은 실존하는 정치적 맥락을 소거하는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비판이다.
이처럼 역사를 대하는 지나친 순수함이 극에 달하는 점으로, 남지우 평론가는 “안기부에 대한 청순한 묘사”를 꼽는다. 하필이면 극의 전면에 나선 두 안기부 요원을 “간첩 소탕이라는 정의로운 열망으로 가득한”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시대의 야만을 지워낸 ‘뽀샤시한 안기부 낭만’을 전세계에 송출하는 유해함을 지적했다.
◆ 성의도 고민도 없이 회 칠한 무덤
허술하기 짝이 없다. 빵빵한 과자봉지를 뜯었더니 과자는 몇 조각 들어있지 않은 것과 같다. 전가의 보도처럼 앞세운 정해인과 지수가 아니었다면 화제조차 되지 않았을 작품이다. 화가 거듭될수록 민주화 운동 훼손이니 안기부 미화니, 그간의 치열했던 논란이 허무해진다. 때가 명시된 시대극의 배경은 내키는 대로 바꿔 치울 수 있는 벽지나 칠이 아니다. 한쪽 면을 새로 칠했다가는 다른 면과의 이음새가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1987년이 배경인데 주인공 임수호(정해인)와 은영로(지수)의 연결 고리가 된 ‘One way Ticket'은 1970년대 말에 유행했던 곡이 아닌가. 일명 ‘방팅’이 이루어진 어항이 있는 ‘다방’도 그 즈음엔 거의 자취를 감췄었고 따라서 누굴 기다리며 쌓던 성냥탑도 보기 어려워졌을 때다. 거리 풍경이며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은 1960~70년대 수준이건만 주인공들의 외양은 2021년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건 뭐 1960년대부터 2020년까지 수십 년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차라리 시대 미상으로 하지 그랬어,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그 서슬 퍼렇던 시절에 총 들고 들이닥친 안기부 요원에게 여대 기숙사 사감이 금남의 집이니 어서 나가달라고 호통을 친다? 그것도 간첩이 숨어들었다는데?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사감이? 간첩을 쫓던 안기부가 일개 사감의 말 한 마디에 깨갱하는 장면 또한 언어도단이다. 그 시절을 살아본 사람들은 다 안다. 영장 따위는 필요 없었다는 것을. 여학생이 기숙사 방에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몸을 젖혀 얼굴을 볼 생각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고함을 치며 밖으로 피하는 게 우선이 아니겠나.
그저 운동권 인물의 편의를 봐주기만 해도 어떤 불이익이 닥칠지 너무나, 누구나 잘 알던 시대다. 4화를 보고나니 은영로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안기부장 딸이란다. 믿는 구석이 있었나 보다. 하나하나 짚자면 날 새겠다. 그저 ‘간첩과 여대생이 사랑하는 이야기,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이런 단순한 발상에서 출발한 회 칠한 무덤이지 싶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탈정치’의 정치성
호수여대 기숙사 안과 밖을 경계로 <설강화>의 세계는 극적으로 나뉜다. 밖에서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북풍 공작을 벌이는 안기부 주요 요인들과, 간첩 잡아 실적을 올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가두고 때리고 억압하는 안기부 현장 요원들이 돌아다닌다. 그러나 기숙사의 문턱을 넘는 순간, 프릴 잠옷을 입은 여대생들이 미팅 이야기에만 열중한다. 개중 운동권 학생이 한 명 눈에 띄긴 하지만, 그 한 명 정도를 제외하면 죄다 부푼 꿈을 두 눈에 담고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기다리는 학생들이다. 막 전국대학생대표자회의(전대협)가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하고, 불과 며칠 전에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한 새로운 정치적 시공간을 사는 대학생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순수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설강화>는 공작을 수행하기 위해 남파된 간첩 임수호(정해인)와 그가 간첩인 줄 모르고 운동권 학생인 줄 알고 숨겨줬던 호수여대 학생 은영로(지수)의 ‘시대를 거스른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그 배경인 ‘시대’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실제로 <설강화>의 등장인물들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탈정치적이다. 시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순진무구한 여대생들의 공간 안에, 자신들이 권력의 장기말이라는 걸 모른 채 주어진 임무만 충실히 수행하는 수호나 강무(장승조) 같은 인물들이 시대의 폭풍을 몰고 들어온다.
아마 작품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고작 권력의 수명연장을 위해 쓰이는 것을 깨닫고 환멸을 느낄 것으로 예상되지만, 권력의 신임을 받고 수 차례의 해외공작을 수행해 온 북한 공작원이나, 해외 임무를 맡고 활약해 온 안기부 블랙요원이 그동안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맥락을 그렇게 모르고 있을 거라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권력에 희생된 젊은이들”이라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설강화>는 주인공 전원을 시대도 모르는 존재들로 탈색시켰다.
이제 <설강화>의 제작진들이 어떤 정치적인 의도도 없다며 억울해 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들은 ‘절절한 사랑 이야기’의 무대가 되어줄 배경으로서의 의미를 제외하면, 배경이 된 시대에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지극히 정치적인 시대와 환경에 대한 탈정치적 접근은, 이미 존재하는 정치적 맥락을 소거해 버린다는 점에서 고도의 정치활동에 가깝다. <설강화>가 하고 있는 일은 그런 것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드라마인가 사태인가
<설강화>를 보기 전, 내게서 가장 먼저 포착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악한 사람들이 악의에 가득 차 써 내려간 이야기일까, 그리고 내가 그 참혹한 현장의 목격자가 되진 않을까. 이런저런 소심함이 앞서 시청을 미루려던 그때, 트위터 타임라인은 폭발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은 매시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하나의 사태이자 스캔들, 더러운 파문으로 지목당한 작품들이 모두 같은 결말을 맞이했던 2021년. 캔슬, 캔슬, 또 캔슬. 유래 없는 캔슬 컬처의 파도를 타고 도착한 한 해의 끝자락에서, 나는 또 <설강화>가 없어질까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방송사 JTBC가 주 3회, 조기 방영이라는 파격을 감행한 이번 주, 두려움과 조급함을 지나온 나의 마음은 이제 ‘물음표 백 만개’의 상태로 진입한다. 도대체 왜? 어째서? 무엇을 위하여? 한 개인의 창작물인 <설강화>는 TV 바깥으로부터 ‘1987’이라는 수를 공유받았는데, 그 1,9,8,7은 ‘숫자’가 아닌 ‘역사’라는 지점에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1987은 단순히 아기 예수가 태어난 지 1987번째가 되는 해의 아라비아 표식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 시청자들에게 1987은 그 자체로 민중항쟁, 직접선거, 그리고 민주주의 개념의 등가 표현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많은 이들이 저항한 지가 5년, 영화 <1987>이 우리 앞에 도착한 지도 3년이 흘렀다. ‘시대 배경 빼고는 모두 판타지’라는 <설강화> 제작진의 항변과 ‘88년생이기에 1987년은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는 주연배우 정해인의 발언. 그 모든 것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대중이 알아차리기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설강화> 유니버스가 ‘1987’이라는 숫자를 너무도 순진한 방식으로 빌려 썼듯이, ‘남파 간첩’, ‘국가안전기획부’, ‘선거공작’ 등 엄중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거나, 진실과 거짓의 문제가 해소되지 못한 채 여전히 누명을 쓴 개념들 역시 막무가내로 호출된다. 이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국가안전기획부, 안기부에 대한 청순한 묘사다. 간첩 소탕이라는 정의로운 열망으로 가득한 안기부 요원들, 이들이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에 저지르는 불의는 ‘진짜 간첩’인 임수호(정해인)를 잡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 활약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 요원, 이강무(장승조)와 장한나(정유진)는 첩보 누아르의 주역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지다. 표정, 그리고 패션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이들의 직장은 안기부, 때는 바야흐로 1987년이다. 드라마 <설강화>가 안방을 넘어 전 세계에 송출하고 있는 뽀샤시한 안기부 낭만, 정말 유해하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사진·영상=JTBC.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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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평은 작품 자체에 대한 비평인가? 아니면 자신의 섣부른 설레발을 정당화하기 위한 비난을 위한 비난인가?
이러다가 1987년 서울 한복판에서 무장공비 총격전이 웬말이냐고 비난하기 시작할것 같다.
전대협을 들먹일 필요 없다. 기나긴 군부 독재 끝에 직선제로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1987년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안기부가 낭만? 1화를 보면 장승조가 왜 정해인에 집착하는지 개인적 원한이 묘사되어 있고 4화에 정유진이 장승조에 집착하는 이유도 나와있다.
TV평론가라는 직업 참 편하다.
방구석 리모코니스트들이 일기장 끄적이듯 그냥 자기 생각만 쓰면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