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구마사’에 놀란 가슴... ‘설강화’ 스포까지 해야 했던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방영 2회 만에 폐지 결정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낳은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만들어낸 재난급 후폭풍은 엉뚱하게도 아직 방영도 되지 않은 JTBC 드라마 <설강화>로 향했다. <조선구마사>야 방영된 후 첫 회에 우려된 역사왜곡의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이에 제동을 건 시청자들의 보이콧은 정당했지만, <설강화>는 사정이 다르다. 방영도 되지 않은 작품에 커뮤니티를 통해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캐릭터 소개 글 일부의 조합만으로 만들어진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이다.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해되는 면이 있지만, 방송도 나오기 전에 촬영 중지 요청까지 하는 상황은 과하다. 그 우려가 그저 파편화된 정보에 의해 만들어져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로 포장되어 퍼져나가는 상황은 드라마 제작사나 방송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대해 비판을 내놓는 건 정당한 일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품을 보고나서 해야 할 일이다. 보지도 않고 어디선가 나온 정확하지도 않은 단편적인 소재의 정보만으로 그 작품을 재단하고 심지어 제작 중단을 요구한다면, 이는 제작자들을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해명을 해도 이미 나온 이야기에 더해진 억측들이 저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더해 괴물처럼 커져가는 상황에 <설강화>는 작품의 내용을 공개하는 초강수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건 일종의 스포일러를 감수하는 일이다. 그러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 드라마가 일종의 기대감과 궁금증이 더해져 그 동력으로 힘을 얻는 장르라는 걸 생각해보면 미방영작에 쏟아진 억측들 때문에 어쩔 수 없게 하게 된 스포일러 감수는 드라마에는 크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이 만든 억측은 민주화 운동 폄훼간첩, 안기부 요원 미화같은 자극적인 문구들로 채워져 그것만 보면 실로 시청자들의 우려와 걱정을 살만하다. 하지만 JTBC 측이 스포일러까지 해가며 내놓은 <설강화>의 내용을 보면, 그 억측이 이 작품이 그리려는 방향성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 이야기가 아니고, 군부정권과 북한독재정권이 야합해 양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른바 북풍공작이 벌어지고, 이로써 피해를 입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다. 즉 남파간첩과 안기부 요원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들은 북한 정권으로부터 또 안기부로부터 버려지고 핍박받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북한이나 안기부를 미화하는 존재들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을 비판적 관점으로 보게 만드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콘텐츠에 대해 시청자들이 어떤 의견을 표출하는 건 정당하고 나아가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분명한 작품의 내용들이 그 의견의 확실한 근거들을 제시할 때만 해당하는 일이다. 내용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추측만으로 작품을 재단해 억측을 만들고 그것으로 심지어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건, 상식적인 행동이 아니다.

<조선구마사> 사태는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하나의 선례를 만들었다. 역사왜곡, 문화왜곡 같은 심각한 사안들이 콘텐츠에서 드러날 때 시청자들은 언제든 나서서 이를 제지할 수 있고, 일종의 소비자 운동을 통해 실제로 그 결과 또한 신속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선례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힘이 아닐 수 없다. 수 백 억이 들어간 작품을 단 5일 만에 내릴 수 있는 힘이니 말이다. 하지만 힘에는 그만한 책임도 따른다는 걸 대중들도 인식해야 한다. 사실과 근거 없는 억측을 구분하는 일은 행동하기 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일이다. 의견과 비판은 작품 방영 후 사실을 확인하고 해도 늦지 않다.

<다음은 JTBC가 공개한 <설강화> 논란 관련 입장 전문이다.>

JTBC가 드라마 설강화논란에 거듭 입장을 밝힙니다.

JTBC설강화에 대한 입장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억측과 비난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재차 입장을 전합니다.

현재의 논란은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의 조합으로 구성된 단편적인 정보에서 비롯됐습니다. 파편화된 정보에 의혹이 더해져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로 포장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정제되지 않은 자료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제작진의 책임입니다.

이에 JTBC설강화의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1.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 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2. ‘설강화의 극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1987년 대선 정국입니다. 군부정권, 안기부 등 기득권 세력이 권력유지를 위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인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3. 이런 배경 하에 남파 공작원과 그를 쫓는 안기부 요원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각각 속한 정부나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부정한 권력욕, 이에 적극 호응하는 안기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부각시키는 캐릭터들입니다. 그러므로, 간첩활동이나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설강화와 무관합니다.

4. 안기부 요원을 대쪽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힘 있는 국내파트 발령도 마다하고, ‘간첩을 잡는 게아니라 만들어내는동료들에게 환멸을 느낀 뒤 해외파트에 근무한 안기부 블랙요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인물은 부패한 조직에 등을 돌리고 끝까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원칙주의자로 묘사됩니다.

5. 극중 캐릭터의 이름 설정은 천영초 선생님과 무관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관련 여주인공 이름은 수정하겠습니다.

위 내용들을 토대로, 이 시간 이후부터는 미방영 드라마에 대한 허위사실을 기정사실인양 포장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하는 수많은 창작자들을 위축시키고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해주셨으면 합니다.

JTBC는 완성된 드라마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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