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제작진 만용의 결과, 멜로도 시대극도 액션도 지리멸렬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논란도 어느 정도 완성도를 담보한 작품이라야 할 가치가 있는 법이다. 민주화 운동 폄훼, 안기부 미화, 간첩 미화 등등 어마어마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심지어 ‘폐지 논란’까지.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는 방영 전부터도 논란이었고, 방영 후에도 곧바로 폐지 청원이 올라올 정도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초반에는 아직 드라마가 방영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며 속단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나왔고 그것이 일견 공감가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7회까지 방영된 <설강화>를 두고 보면 한 마디로 지리멸렬이다. 애초 제작진이 갖가지 논란에 대해 이 작품은 ‘멜로’라고 한 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대극이라 보기에는 시대적 고증이 너무 일천하다. 액션 연출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드라마를 보는 듯한 전투 액션이라니.

시대에 무지한 작가의 만용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미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했듯, 1987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가져오면서 당대의 민주화 운동이나 안기부의 끔찍한 폭력, 민감한 간첩 이슈 등등을 그저 소재로 활용하며 “사실은 멜로를 그렸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주요 배경이 된 호수여대 기숙사에서 민주화 운동을 한 인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여정민(김미수)이라는 인물 하나라는 건 이 시대를 얼마나 작가가 편협하게 바라보는가를 잘 드러낸다.

물론 <설강화>가 그리려는 건 1980년대 말 신군부가 북한과 공조해 북풍을 일으키고 그것으로 대선에서 이기려는 그 야욕에 대한 풍자다. 그래서 남파 간첩 임수호(정해인)도, 그를 운동권 학생으로 오인해 기숙사에 숨겨주다 정체를 알게 된 후에는 인질이 되는 은영로(지수)도, 작가는 이 시대가 만든 비극의 주인공이라 강변하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이 민감한 시기를 다루면서 간첩, 대학생, 안기부 같은 단어들이 갖는 무게감이 현재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는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예민하다는 걸 작가는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했던 걸까.

이러한 일련의 논란들을 모두 차치하고, 온전히 드라마의 완성도만을 두고 봐도 <설강화>는 졸작이다. 임수호와 은영로라는 두 인물이 우선 매력적이지가 않다. 아니 매력적일 수가 없다. 멜로 장르로 보면 임수호는 어쩌다 은영로와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지만, 곧바로 테러리스트가 되어 다름 아닌 은영로를 인질로 삼는 인물이 된다. 멜로의 주인공으로서 정서적 공감대를 깨는 임수호 같은 인물에 그 어떤 시청자가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이것은 은영로도 마찬가지다. 이 캐릭터는 ‘착한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바보 같은’ 캐릭터다. 최근 드라마들이 그리는 능동적이고 나아가 도발적인 여성 캐릭터와는 정반대의 인물. 이 모든 사단이 그가 딱 한 번 방팅을 해서 만난 임수호에게 마음을 주고, 그를 제 맘대로 운동권 학생이라 오인한 데서 비롯된 것이란 점은 은영로라는 여성 캐릭터를 엄청난 ‘민폐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인물에 그 어떤 시청자가 몰입감을 느낄 수 있을까.

멜로 관계처럼 달달해졌다가 갑자기 총구를 들이대는 인질극으로 넘어오면서 드라마는 장르적으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임수호에도 매력을 느낄 수 없고 은영로도 마찬가지이며 그렇다고 안기부 요원들인 이강무(장승조)나 장한나(정유진)에게 몰입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결국 시청자들은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낼 수 없다. 지령을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총구를 들이밀고 인질극을 벌이는 간첩도, 시대의 아픔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듯한 안기부장 딸 대학생에게도, 감성적으로 포장되어 있는 안기부 요원들에게도 시청자들은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이 먼저 든다.

인질극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조차 일부 희화화와 코미디로 그려내고, 왜 등장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아마도 재미있는 풍자라 여겼을 테지만) 안기부 고위급 인사들의 아내들이 남편의 지위에 따른 계급구조를 드러내며 점에 집착하고 “용상” 운운하는 대목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안이하게 작품을 대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인질로 붙잡혀 꽁꽁 묶인 채 목숨이 경각에 놓인 광태(허남준)와 병태(안동구)가 공포에 질려 오줌까지 질질 싸는 장면을 코미디로 담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일까.

마찬가지로 인질극 속에서 임수호와 은영로가 서로 총구를 겨누기도 하지만 상처를 치료해주고, 영로가 자신의 마음을 적어 날린 종이비행기를 수호가 갖고 있었다는 걸 알면서 은근히 깔리는 멜로의 배경음악도 언발란스한 느낌을 준다. 그건 자칫 사랑을 담는 멜로가 아니라 일종의 ‘그루밍’ 같은 인질범과 인질 사이에서 벌어지는 병리학적인 관계처럼 보인다.

의사를 보내주는 대가로 인질들을 풀어주는 상황에서, 누가 나갈 것인가를 두고 계분옥(김혜윤) 같은 인물이 나서서 ‘제비뽑기’를 주장하는 개연성이 전혀 없는 터무니없는 상황이나, 이런 상황에 총구를 들이대는 남파공작원 주격찬(김민규)을 막는 임수호의 논리가 “총알을 아끼라”라는 말 정도라는 것도 납득이 어렵다.

매력적인 캐릭터도 없고 개연성도 찾아보기 힘든 서사에 시대적 무게나 책임의식도 잘 느껴지지 않는 느슨한 전개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긴 어렵다. 임수호 역할의 정해인은 테러리스트와 멜로 주인공 사이에서 애매한 연기를 보이고 있고, 발성 자체가 듣기 힘들 정도인 은영로 역할의 지수는 왜 캐스팅 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강무 역할의 장승조는 연기 잘 하는 배우지만 츤데레를 보이는 안기부 요원이라는 캐릭터의 부조화 속에서 연기가 묻히며, 기숙사 사감 피승희 역할의 윤세아나 계분옥 역할의 김혜윤, 남태일 역할의 박성웅 모두 지나치게 과장된 캐릭터로 연기도 과하게 느껴진다.

<설강화>가 이런 지리멸렬한 드라마가 된 건, 시대와 사태의 무게감을 너무 간과한데서 비롯된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소통의 부재’가 큰 몫을 차지한다. 제작진은 전작이었던 <SKY 캐슬>의 큰 성공에 취했던 건 아닐까. 시놉시스 유출로 인해 논란이 생겨나고 당시 <조선구마사>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는 걸 목도하면서도 어째서 그것이 시대를 담는 이들의 ‘무거운 책임의식’을 시청자들이 요구하고 있다는 것으로 읽어내지 못했을까.

물론 필자는 이런 논란들이 ‘작품의 폐지’로 가는 결론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또 <설강화>의 지리멸렬한 스토리를 왜곡이 아닌 실제로 볼 정도로 시청자들의 눈이 낮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폐지 주장보다는 이러한 시대극이 어째서 불편하고 불쾌하며 재미가 없는가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것이 K드라마를 실질적으로 일궈낸 한국의 대중들의 진짜 저력일 테니 말이다. 표현을 열어두지만 비판도 아끼지 않는 그런 대중들이 있어 가능해온 지금의 K드라마가 아닌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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