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과 ‘중국’ 중 대중들이 정말 분노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TV삼분지계의 이 달의 생각] ‘조선구마사’ 사태를 겪은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의 이달의 생각] ◾편집자 주◾ 21세기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숨가쁘다.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를 다 챙겨보는 일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시대, 당장 눈 앞의 변화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초점을 잃게 된다. 그래서 TV삼분지계는 생각했다. 매주 방영되는 프로그램 리뷰 말고, 보다 더 긴 호흡으로 TV를 곱씹어 볼 수는 없을까? TV삼분지계는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이야기에 얽매이지 않고, 더 긴 호흡으로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TV삼분지계의 이 달의 생각]이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방영한 지 1주일도 안 되어 폐지됐다. 작중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중국풍 묘사가 많았다는 점에서 출발한 역사왜곡논란은, 작가의 소속사와 작품 행보, 이름과 출생지까지 의혹의 대상이 된 끝에 48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네티즌들로부터 동북공정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진은 재정비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급속도로 전개된 드라마 폐지운동과 광고주 압박은 사상 초유의 ‘2회 방영 후 폐지라는 기록을 남겼다. 작가의 전작인 tvN <철인왕후> 또한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되었고, 급기야 9월 방영 예정이라 아직 뚜껑도 열지 않은 JTBC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또한 쯔진천 작가의 원작 <장야난명>시진핑 정부 선전 소설이라는 의혹이 있었다며 경계 어린 눈초리를 받고 있다.

사상 초유의 폐지 사태를 겪은 드라마 '조선구마사' / 사진=SBS
사상 초유의 폐지 사태를 겪은 드라마 '조선구마사' / 사진=SBS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모두 ‘역사왜곡과 동북공정에 저항한다’고 말하지만,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은 조금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정석희 평론가는 “따라서 나와 다른 의견에 날을 세울 필요도, 분위기에 휩쓸려 목소리를 낮출 필요도 없다고 본다”면서도, 불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드라마에 무슨 역사의식을 요구하느냐는 반응도 꽤 있었”음을 지적하며 논의가 지나치게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탓에 현장의 인력들이 다치는 것을 염려했다.

남지우 평론가는 “전체주의를 경계하며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마음을 모아 만나는 자리는 겨우 ‘반중’”이라 지적하며, 지금의 반중 정서가 정말 각자의 정치적 지향과 판단으로 내린 결론의 총합인지 물었다. 이승한 평론가는 중국 정부의 국가주의적인 행보에 저항하겠다는 이들이 택한 방식 또한 마음에 안 드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는 방식이라며, “상대와 같은 방식으로 싸우느라 상대와 나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차이점을 잃어버린다면, 그건 누구 손해인가?”라고 반문했다.

◆ 하루 아침에 제작 중단, 다치는 건 누가 다치는가?

SBS <조선구마사>가 역사왜곡, 친중 논란으로 방송 2회 만에 폐지됐다. 논란은 이미 올 초 같은 작가의 작품 tvN <철인왕후> 때도 불거졌지만 당시엔 방송사와 제작사가 대중의 반응을 모르쇠로 일관했었다. <철인왕후>의 실존 인물 왜곡을 지적하는 내 영상에 왜 하릴없이 딴죽을 거느냐,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드라마에 무슨 역사의식을 요구하느냐는 반응도 꽤 있었다.

하지만 불과 두어 달 사이에 분위기는 일변했다. 철종과 세종, 역사적 무게 차이도 큰 이유이겠고 한복과 김치가 자신들의 전통문화라는 중국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이 보태지면서 급 물살을 탄 것이다. 여론이 일고 불매 운동에 불이 붙자 기업들이 잇달아 지원을 철회하면서 속전속결이다. 급기야 <철인왕후>까지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지되었고 더 나아가 몇몇 드라마들은 방영 전부터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기획 의도나 설정이 검열에 놓이는가 하면 중국 자본이 유입되었다는 이유로 제작 중지를 강요받기도 한다. 대다수가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는 추세이지만 반론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시절을 역행하느냐, 왜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느냐, 한 마디로 다수의 횡포라는 지적이다.

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조선구마사'가 폐지된 이후 작가의 전작인 '철인왕후' 또한 다시보기가 삭제되었다. / 사진=tvN
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조선구마사'가 폐지된 이후 작가의 전작인 '철인왕후' 또한 다시보기가 삭제되었다. / 사진=tvN

사람마다 제각기 가치관이며 세계관이 다를 터 반응하는 지점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나와 다른 의견에 날을 세울 필요도, 분위기에 휩쓸려 목소리를 낮출 필요도 없다고 본다. 내가 늘 중요히 여기는 건 사람이다. 드라마 제작이 하루아침에 중단되면 많은 인력들, 특히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일명 프리랜서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중국 자본, 원작, PPL, 차차 길을 찾아가겠지만 그 사이 비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릴 젊은이들, 답답한 노릇이다.

정석희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우리가 만나는 자리가 겨우

2047년까지 홍콩은 일국양제 원칙하 중국 본토와는 다른 자유의 권리를 보장받기로 했던바. 하지만 홍콩 정부는 2019년, ‘범죄인 인도법’을 시작으로, ‘복면금지법’, ‘국가법’ 등을 제정해 홍콩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베이징의 영향력을 확대한다. 이에 저항하는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폭력은 극에 달해 대학들을 포위하고 학생들을 감금·체포하는 사태에 이른다. 전 세계의 눈이 홍콩으로 향했다.

홍콩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 역시 상당했는데, 부당한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풀뿌리 시민운동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폭력이란 속성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이라는 점에서 진보 시민들은 홍콩을 지지했다. 동시에 보수 시민들은 세를 넓히려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저항, 동북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의 기회로 받아들이며 홍콩 시위를 지지했다. 후자의 해석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한국의 좌우가 ‘반중’이라는 희한한 방식으로 홍콩 땅에서 만나게 된 셈이다. 그렇게 싸우다가 이렇게 만난다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각자의 정치적 지향과 판단으로 반중을 택하는 일과, 군중 정서에 휩쓸려 반중을 택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 사진=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CC0 라이선스 퍼블릭 도메인)
각자의 정치적 지향과 판단으로 반중을 택하는 일과, 군중 정서에 휩쓸려 반중을 택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 사진=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CC0 라이선스 퍼블릭 도메인)

한국인들은 반일·반중의 자리에 모여 언제든 한마음으로 만난다. 이 마음은, 우리가 홍콩의 자유를 염원했던 것처럼, 정치의 영역에선 옳은 것을 추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콘텐츠의 영역으로 넘어와선 왜색’(tvN <여름방학>) ‘중국향’(SBS <조선구마사>) 같은 모호한 논란을 만든다. 충녕대군이 중국풍 식기에 월병, 오리알같은 중국 음식을 담아 외국인 사제를 접대하는 굴욕적인 장면을 역사 왜곡이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중국의 문화공정으로 해석하며, 제작에 투자된 중국발 자본을 일단 의심하고, 작가를 조선족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각자의 정치적 지향과 판단으로 반중을 택하는 일과, 군중 정서에 휩쓸려 반중을 택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320억 제작비와 대규모 노동력이 투입된 한 드라마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데까지 나흘. 해당 작품과 관계된 연출, 배우, 관객과 자본이라는 모든 주체는 각자의 정치적 판단을 포기하고, ‘반중 정서’라는 유령의 처분을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정치나 문화, 그 모든 영역에서는 전체주의를 경계하며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명백하게 옳은 것들(차별이나 폭력에 반대하는 것)에 마음을 모으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마음을 모아 만나는 자리는 겨우 ‘반중’이다. 자리가 너무 좁은 것은 아닌가. 한국은 아직 그 어떤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jeewoo1119@gmail.com

◆ 욕하다가 닮아버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시청자들이 사극 속 역사 재현이 무성의한 것에 화를 내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국 사극은 오랫동안 고증오류나 무성의한 설정오류를 ‘창작의 자유’ 정도로 눙치고 지나갔던 오랜 전력이 있다. 복식이나 사회 제도와 같은 역사적 제약을 돌파하기 위한 상상력과, 그런 역사적 제약을 애초에 신경 안 쓰는 게으름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후자를 전자인 척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잘못된 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과 국가주의 팽창을 우려하고 경계하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서로가 서로의 역사와 문화형성에 깊게 관여해 영향을 주고받았기에 일정 부분 공통의 역사적, 문화적 자산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다 중국 기원이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는 아류나 변주라는 식의 주장의 이면엔, 애국주의를 부추기고 체제 외부에 공통의 적을 제시함으로써, 체제 내부의 불만이나 문제 제기를 막아보겠다는 중국 정부의 전체주의적 발상이 존재한다. 이를 경계하는 일이 잘못된 건 아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박계옥 작가 퇴출 청원. “출생지가 문제가 될 것은 없다”면서도 박계옥 작가의 작품에 조선족이 자주 나왔다는 것을 굳이 언급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박계옥 작가 퇴출 청원. “출생지가 문제가 될 것은 없다”면서도 박계옥 작가의 작품에 조선족이 자주 나왔다는 것을 굳이 언급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고 오이밭에서 신발 고쳐 신는 사람들을 묻지도 않고 때려잡는 건 크게 이상하고 잘못된 일이다. 박계옥 작가가 <조선구마사>에서 묘사한 조선의 그림이 이상해 보일 수는 있다. 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항의하는 것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묻고 답하고 되묻는 논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북공정의 일환일 것’, ‘작가가 조선족인 듯같은 음모론과 인종주의적 선동을 거쳐서 드라마 폐지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폭력이다. 논의가 이뤄질 시간도 공간도 모두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실력행사였다.

중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애국심을 강요하고,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자산을 모두 자국 기원이라 주장하며, 그와 불합치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탄압하는 광경은 분명 공포스럽다. 그런데 그 공포와 맞서겠다는 사람들이 택한 방식 또한 한국의 역사의식과 불합치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압박하고 입을 다물게 만드는 거라면, 양자 간에 국적과 국력 말고 무슨 차이가 있는가? 상대와 같은 방식으로 싸우느라 상대와 나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차이점을 잃어버린다면, 그건 누구 손해인가?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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