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와 ‘달뜨강’이 역사를 담는 드라마에 제시하는 시사점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종영했지만 여전히 여운이 남는 사극으로 남았다. 최고시청률 17.4%(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며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무엇보다 역사와 상상력 사이에서 논란과 부침을 겪었던 지난해 사극들에 하나의 대안을 보여줬다는 점이 이 사극이 만든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SBS <조선구마사>가 고증 논란으로부터 비롯되어 단 2회 방영 후 폐지 결정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건 지난해 드라마업계에서 벌어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중국풍 소품으로부터 시작되어 중국의 역사, 문화공정으로 인해 확산된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고 결국 광고 불매 운동까지 번지면서 드라마가 폐지된 것. 비판은 충분히 공감 가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폐지로까지 이어진 건 너무 극단적이라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사태는 사극의 오래된 논쟁인 역사와 상상력 사이에서 어디까지 허용 가능하며, 나아가 상상력을 극대화한 사극이라고 해도 배경을 빌려 쓰는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일깨웠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최근 역사에서 점점 멀리 벗어나 허구로 확장되어가던 사극의 흐름에, 새로운 대안을 보여준 사극이 됐다. 즉 영정조 시대의 역사를 가져오면서도 의빈 성씨와 이산의 이야기를 궁녀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함으로써 충분히 흥미로운 상상력의 틈입을 가능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미 <이산> 같은 사극으로 당대의 이야기가 방영된 바 있다는 사실 또한 <옷소매 붉은 끝동>의 선택을 더욱 주목하게 만들었다. 즉 이미 사극이 다룬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도, 다른 관점과 해석을 통해 전혀 다른 사극의 재미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이 <옷소매 붉은 끝동>에 열광한 이유도 바로 이런 사극이 가진 본령, 즉 역사적 사실의 무게감과 더해진 신선한 상상력의 결합이 가능하다는 걸 이 작품이 실증해 보여줘서다.

최근 역사와 상상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극의 논란에 있어 지난해 새로운 길을 제시한 작품으로 KBS <달이 뜨는 강>을 빼놓을 수 없다. <달이 뜨는 강>은 특히 드라마에서 종종 벌어지는 논란에 대한 바른 대처 방식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과정을 보여준 작품이다. 주인공 역할의 지수가 학폭 논란에 휩싸이면서 벌어진 사태에 <달이 뜨는 강>은 놀라운 대처를 보여준 바 있다. 즉시 주인공을 교체하고, 이미 찍었던 분량을 모두 다시 찍고, 심지어 기방영분도 교체 촬영으로 마무리하는 초유의 대처방식을 보여준 것. 심지어 이를 위한 방송 중단도 없었다.

논란이 터진 후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자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대응한 것이 이 작품에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계기가 됐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달이 뜨는 강>의 여주인공 김소현이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지수를 대체해 들어간 나인우도 신인상과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달이 뜨는 강>의 논란 대처방식을 보면, <조선구마사>나 JTBC <설강화>가 논란에 대처하는 방식이 너무나 차이가 난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조선구마사>는 논란에 대해 소통하고 재촬영 등을 통해 문제의 방영분들을 교체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방송 폐지’라는 결정을 내는 아쉬운 행보를 보였고, <설강화>는 이미 시놉시스 유출로 빚어진 논란들을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로만 대응하며 시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처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소통의 실패’가 작품의 성패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K드라마라는 지칭이 나올 정도로 한국드라마에 대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관심은 높아졌다.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로컬의 맛을 담는 사극은 그래서 더 중요한 장르로 서게 됐다. 그간 사극이 갖는 역사와 상상력 사이에 놓인 긴장감은 이런 변화 속에서 더더욱 예민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때론 의도치 않은 논란이 불거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해지는 건 시청자들이 제기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작년 <옷소매 붉은 끝동> 열풍과 <달이 뜨는 강>의 논란 대처 방식은 드라마 제작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KBS, JT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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