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청’·‘술꾼도시여자들’, 소재부터 속도감까지 30분의 승부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드라마는 60분 분량? 과거 지상파 시절에는 이것이 일종의 룰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이건 고정 불변의 불문율일까. 그렇지 않다. 웨이브나 티빙 같은 토종OTT들이 내놓은 오리지널 시리즈는 회당 30분 남짓의 분량으로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와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은 단적인 사례다.

보통 지상파나 케이블의 미니시리즈가 16부작인 것과 달리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와 <술꾼도시여자들>은 모두 총 12부작이다. 게다가 회당 분량이 30분 내외로 되어 있어 시청자들이 느끼는 속도감은 남다르다. 이것은 OTT의 특징일 수 있는 몰아보기 방식에 최적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한 편을 보면 이어서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속도감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당 30분 분량이 의미하는 건 양적인 것만은 아니다. 짧아진 분량은 여기 담기는 스토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술꾼도시여자들> 같은 경우 그 형태가 시트콤처럼 구획되어 있고 세 명의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상 에피소드로 채워질 수 있는 건 이 분량과도 무관하지 않다. 짧은 분량은 굳이 거대 서사를 강박적으로 추구할 필요가 없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도 그 분량에는 충분히 하나의 에피소드로 그려질 수 있어서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역시 전체 이야기가 갑자기 문체부장관으로 임명된 정은(김성령)에게 벌어진 1주일간의 이야기로 그려진 것도 이러한 짧은 에피소드들의 압축이 가능한 분량 덕분이다. 정은이 첫 문체부 행사를 하고 청와대까지 갖다 오게 된 단 하루의 에피소드를 2회에서 5회까지 분량으로 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하루를 거의 세분해서 담아놓은 사건들은 시청자들에게 그만큼 긴박감과 속도감을 주기 마련이다.

OTT 오리지널은 이러한 색다른 시청 체험을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소재나 표현에 있어서도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술꾼도시여자들> 같은 경우 아마도 지상파라면 ‘음주조장’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지만, 티빙이라는 OTT여서 술 자체가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 또 표현 수위도 19금을 표방하며 훨씬 높게 되어 있어 보다 리얼한 이야기들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도 정치풍자를 훨씬 더 리얼한 수준으로 담고 있다. 물론 정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은 기존 방송사들에서도 많이 만들어졌지만, 이 드라마는 실제 인물의 이름까지 등장할 정도로 신랄한 풍자의 수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네거티브 정국으로 생겨난 반감으로 정치적 무관심 또한 커지고 있지만, 이런 부분은 이를 풍자로 삼고 있는 이 드라마에는 오히려 관심을 갖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중요한 건 OTT 오리지널 드라마들이 변화시키는 이러한 달라진 드라마 체험이 기존 방송사들의 드라마를 시청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60분을 채워 넣는 기존 방송사들의 드라마들이 너무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일이나, 최근 과도한 PPL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 커진 점 등은 짧고 압축도 높은 OTT 오리지널 드라마들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기존 포맷을 고수하고 있는 드라마들이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변화에 대해 적응을 고민할 시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웨이브,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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