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폭동 다룬 ‘꼬꼬무’, 이야기 재구성만으로 이런 몰입감이

[엔터미디어=정덕현] 이건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충격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끝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터지는 감동까지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다룬 LA폭동 사건의 재구성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강력한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잘 보여줬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가 바로 그것이다.

엉뚱하게도 이날의 이야기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불러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난 알아요’에서부터 시작했다. 랩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그 곡을 이야기하며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랩 한 곡을 들려준 것. 그 랩은 이야기의 중간쯤에 밝혀지지만 다름 아닌 아이스 큐브가 부른 ‘블랙코리아’로 당시 미국 흑인들이 갖고 있던 한인교민들에 대한 감정을 담은 노래였다. LA폭동 사건에 어째서 흑인들이 한인교민들을 타깃으로 삼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가 거기 담겨 있었다.

이야기는 당시 LA교민이었던 조성환씨의 진술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먼저 실감케 만든다. 주류매장을 운영하던 조성환씨가 뒤늦게 폭동이 난 사실을 알고는 흑인처럼 얼굴에 볼펜 잉크를 바르고 차로 위험천만한 거리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던 순간이 스토리텔러들의 극적인 이야기와 실제 당사자의 인터뷰 영상, 또 당시 폭동 자료화면 등과 함께 전해지며 긴장감을 높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당시의 생생한 장면들을 보여주며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도 당시 뉴스를 통해 접했던 이야기였지만, 생생한 자료화면이 전하는 건 아비규환이자 마치 종말이 온 것 같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당시 LA교민 43만 명, 한인 가게만 1만2천개에 달했던 LA는 미국 속의 작은 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이 흑인, 히스패닉 등에 의해 약탈당하고 불타고 있었다.

결국 LA 전역에 비상사태 선포가 되게 된 이 사건의 발단은 백인 경관 네 명이 음주운전으로 붙잡인 로드니 킹을 마구잡이로 집단 구타한 데서 비롯됐다. 로드니 킹은 81초 동안 무려 56번 몽둥이질을 한 이 끔찍한 폭력 사건으로 얼굴만 스무 바늘 넘게 꿰매고 11군데 골절, 뇌손상, 청각장애까지 갖게 됐지만 1년 간 벌어진 법정공방 끝에 가해자 경관들은 대부분 무죄 판결로 풀려났다. 인종차별에 분개한 흑인들이 집단 시위에 나서고 급기야 약탈 방화가 벌어지게 되면서 폭동 사태로 이어진 것이었다.

이야기 시작에 들려준 아이스 큐브의 ‘블랙 코리아’에 담긴 것처럼 흑인들은 한인들이 그들을 도둑처럼 쳐다보고 의심하는 등의 시선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애먼 한인상점들이 타깃이 된 것.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충격적인 이유가 들어 있었다. 애초 판결 이후 폭동이 날 것까지 예상한 경관들은 시위가 터지자 모두 철수해 베버리힐즈, 할리우드로 옮겨가 백인들만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한인을 타깃으로 한 약탈 등을 막으려 하지도 않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분노를 가라앉히려 했다는 심증까지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폭동 사태에 의한 LA교민들의 비극에서 끝나지 않았다. 경찰도 지켜주지 않자 교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경단을 만들어 대응하게 된 것. 상점들을 약탈하고 방화하는 이들을 상대로 죽을 위기에 몰린 교민들을 구출해내기도 하고, 쫓아내기도 한 자경단의 활동은 미국 언론에서도 큰 화제가 될 정도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공개한 당시 자경단의 영상들은 도시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들이 들어 있었다.

결국 2만여 명의 병력이 동원되어 6일 만에 끝난 폭동. 사망자가 58명이고 부상자는 무려 24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 동안 노력해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실의에 빠져 있는 교민들을 일으킨 건 다른 교민들이 내민 도움의 손길이었다. 요한나 김이라고 밝힌 당시 라디오에 소개된 한 아이가 “우리 오빠하고 나하고 141불 저금통에 모아놓은 거를 기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이 프로그램에 나온 청자들에게 가슴 찡한 감동을 전했다.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이어진 기부의 물결.

하지만 더 감동적인 건 절망이 아닌 희망을 위해 모인 한인들의 ‘색다른 선택’이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라는 목소리로 이어진 집회 현장을 당시의 미국기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 역사 중 가장 파괴적인 폭동이 있었던 도시는 이제 상처를 청소하고 치료하고 있습니다.” 이 집회에 흑인, 히스패닉 그리고 백인들까지 참여하면서 모두 함께 평화를 외쳤고 이들은 모두가 결국 함께 살아가야할 이웃이라는 사실을 그 목소리에 담았다.

사실 LA폭동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느 정도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된 이 사건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너무 단편적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놀랍도록 흥미진진하고 충격적인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있고, 그것들이 하나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라고 해도 될 법한 메시지들을 전하고 있었다. 충격에 분노에 감동까지 다 잡은 이야기. 이야기의 재구성만으로 이만한 몰입감을 준다는 것이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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