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노희경표 위로 종합 선물세트 드라마

[엔터미디어=정덕현] “나중에...” 엄마가 보고 싶어 하는 백록담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려 한라산을 오르고 또 오른 동석(이병헌). 눈이 많이 내려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되자 동석(이병헌)은 그곳에서 엄마에게 보내는 영상을 찍다 ‘나중에’라는 말을 꺼내놓고 할 말을 잇지 못한다. 말기암으로 바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엄마의 상황을 알고 있는 동석이라 ‘나중’을 기약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그는 알기 때문이다.

눈시울이 붉어지던 동석은 그래도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애써 말을 이어나간다. “나중에 눈 말고 꽃피면 오자. 엄마랑 나랑 둘이. 내가 데리고 올게. 꼭.” 그렇게 찍어온 영상을 엄마 옥동(김혜자)은 자꾸만 반복해서 보고 또 본다. 엄마의 눈가도 촉촉해진다. 그 역시 알고 있다. 아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중에 다시 올 수 없다는 걸. 하지만 동석이 전한 마음으로 충분했을 게다.

집으로 돌아온 동석은 엄마를 홀로 두고 가는 게 영 마음에 쓰인다. 그래서 자기가 사는 집에 가보겠냐고 묻는다. 그건 어쩌면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여정이 될 터였다. 엄마는 동석의 도움으로 이젠 수몰되어 사라져버렸지만 자신이 태어났던 곳을 찾아갔었고, 동석 아빠를 만났던 곳도 찾아갔었다. 그리고 제주 살며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한라산도 올랐다. 그 먼 길을 돌아 아들이 사는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반갑게도 동석이 사랑하는 선아(신민아)가 아들과 함께 와 있다. 엄마는 처음 보는 선아에게 머리 숙여 인사한다. 고마웠을 게다. 아들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록 짧았지만 엄마는 아들과 선아와 선아 아들과 함께 평범한 여느 집안의 가족들 같은 시간을 갖지 않았을까.

엄마에게 삶은 모질었다. 남편을 잡아먹고 딸까지 잡아먹은 바다가 원수 같았을 게다. 그래도 배운 거 없어 입에 음식 들어가고 학교 다닐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첩살이까지 했고 그 집에서 종살이도 했다. 아들의 마음이 썩어가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 아들이 모진 말을 쏟아낼 때 엄마는 아무 변명도 하지 않는다. 왜 자기한테 미안해 하지 않냐는 아들의 원망 앞에 엄마는 아프게도 자격을 이야기한다. 엄마는 자신을 심지어 “미친 년”이라고 한다. “미친년이 어떻게 미안한 걸 알어?”

그 마음을 알게 된 엄마와의 여정. 동석은 엄마를 집에 데려다 주고 가면서 괜스레 “내일 아침에 된장찌개 끓여놓으라”고 말한다. 엄마의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서였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다음 날도 엄마가 된장찌개를 끓이며 살아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을 게다. 기력 없는 엄마도 자식을 위해 차리는 밥상에서는 힘이 난다. 그렇게 엄마는 아들을 위한 마지막 된장찌개를 끓여 놓고 떠난다. 그리고 아들은 엄마가 떠난 후에야 엄마를 끌어안고 깨닫는다. 자신이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안고 화해하고 싶어했다는 걸.

<우리들의 블루스>가 종영했다. 이 드라마가 그리려한 건 삶의 다양한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혹은 천륜이든 관계는 늘 갈등을 만들고 우리를 버겁게 한다. 하지만 그 갈등이 결국은 상대에 대한 보다 깊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서운함이고 아픔이고 상처라는 걸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싸우고 갈등하면서도 그들은 끝내 화해한다. 노희경 작가는 그것이 우리네 삶의 비의이고,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 모두는 행복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로 동석과 옥동의 이야기를 다룬 건, 갈등의 크기만 다를 뿐 천륜으로 누구나 겪게 되는 관계의 애증이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삶의 많은 것들을 설명해주는 본원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다. 가까이 있어 서로 상처주고 아파하고 힘들어하지만, 바로 그 가까운 이들 때문에 치유되고 버텨낼 수 있는 삶. 비록 어리석은 인간이라 누군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 비의를 깨닫고 후회하지만 그것이 우리네 삶의 본질이 아닌가.

엔딩에 제주에서 친구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하면서 짝을 지어 달리는 2인3각 경기는 그래서 <우리들의 블루스>가 보여준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서로 발이 묶여 번거롭고 힘들고 때론 짜증도 나지만 그렇게 한 발 한 발 서로 맞춰 뛰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함께 나가는 것. 노희경 작가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그런 2인3각 같다고 말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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