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옴니버스지만 이야기마다 다른 깊이의 편차

[엔터미디어=정덕현] 제 아무리 노희경 작가라도 어쩔 수 없는 옴니버스의 한계인가. tvN 주말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첫 번째로 들어간 한수(차승원)와 은희(이정은)의 에피소드는 더할 나위 없었다. 중년의 위기에 흔들리는 한수가, 자신을 첫사랑으로 생각하는 친구 은희에게 돈을 빌리려고 거짓말을 하다 들키지만 결국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며 끝나는 그 에피소드는 하나의 단편작품이라고 해도 괜찮을 법한 완성도를 선사했다.

하지만 이 첫 번째 에피소드가 끝나고 이어지는 고등학생 영주(노윤서)와 현(배현성)의 임신 스토리는 그리 새롭진 않았고 그 전개 과정에서도 또 낙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허점들이 노출됐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모범생이지만, 제주살이가 지긋지긋하고 지겨운 영주는 유일하게 자신을 설레게 하는 현과 관계를 맺고 덜컥 임신을 해버린다. 인생 전체가 날아가 버리는 듯한 두려움 속에 영주는 낙태를 하려하고 현은 어떻게든 영주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이야기.

결국 낙태를 하러 간 병원에서 초음파로 아기 심장 소리까지 듣고는 영주와 현은 낙태를 포기하고, 타고 오던 버스에서 연기가 치솟아 오르자 “임산부”라는 걸 커밍아웃 하기도 한다. 급기야 학교 친구도 그 사실을 눈치 채기 시작하고 현은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한다. 영주와 현의 에피소드는 그들의 아버지들인 호식(최영준)과 인권(박지환)이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사이라는 점 때문에 앞으로의 파국을 예고한다.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사이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자식들 앞에서 어떤 결정과 변화를 보일 지가 이 에피소드의 주요 관전포인트다.

그런데 임신 때문에 괴로워하고 낙태를 결심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굳이 초음파 검사를 시키고 또 아기 심장소리를 들려주는 광경은 그리 상식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두 사람이 결국 낙태를 포기하고 아기를 낳겠다 결심하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시청자들 중에는 이 장면이 ‘낙태는 살인’이라는 죄의식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하필이면 탄 버스가 고장으로 연기가 치솟고 그래서 영주와 현이 임산부이고 아기 아빠라는 사실을 외치는 장면 역시 너무 작위적인 면이 있다. 고등학생이지만 그래도 이들이 아기의 부모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장면들이 그리 자연스럽지만은 않게 전개되면서, 낙태 반대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를 담은 것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는 마치 청소년 성교육 자료 같은 뉘앙스를 갖게 됐다.

이밖에도 영옥(한지민)과 정준(김우빈)의 에피소드는 아직까지 해녀와 선장의 평이한 사랑이야기에 머물고 있고, 동석(이병헌)과 선아(신민아)의 에피소드는 이혼하고 우울증 때문에 양육권 분쟁을 겪는 선아가 아이가 한 “엄마는 아파요”라는 말 때문에 절망한 채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을 보여줬다. 물론 이들의 에피소드들은 어느 것 하나 완결되지 않고 진행 중이다. 하나씩의 이야기를 끝내가는 것이 아니라, 교차해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어서다.

향후에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 옴니버스 구성이 여러 인간군상을 다룰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그런 구성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블루스>가 에피소드별로 나뉘는 완성도나 담는 메시지, 소재 등에서 느껴지는 편차에 대한 아쉬움은 분명히 남는다. 물론 이런 정도의 다양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워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것 역시 노희경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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