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환과 최영준이 살려낸 ‘우리들의 블루스’가 그리려한 것

[엔터미디어=정덕현] 이건 거의 누아르 수준이다. 연기파인 건 알고 있었지만 박지환과 최영준이라는 배우의 저력이 느껴졌던 순간이다. 철천지원수처럼 만나면 으르렁대며 싸웠던 인권(박지환)과 호식(최영준). 그런데 인권의 아들 현(배현성)과 호식의 딸 영주(노윤서)가 아이를 가졌다. 제주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 몰아치는 태풍처럼 두 아방 사이에 치고 박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또 아방들과 자식들 사이에도 폭풍 같은 갈등이 펼쳐졌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을까. 결국 아이를 낳기를 고집하는 영주와 현 앞에서 아방들은 무릎을 꿇었다. 호식은 영주와 현이 살 집을 마련해줬고, 인권은 영주를 위해 학교도 학원도 나가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아들 현과 화해의 포옹을 했다. 태풍이 지나고 촉촉이 내리는 비는 이 폭풍 같던 시간들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누아르 영화의 엔딩 같은 장면이다.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고등학생으로 아이를 갖게 된 영주와 현이 임신중지와 출산을 놓고 벌인 갈등에 이어 그 아방들인 호식과 인권의 스토리를 전했다. 사실 영주와 현의 에피소드에서 아쉬웠던 건, 원치 않는 임신에도 지나치게 모성애를 강조하며 ‘사랑의 결실’ 운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몰아간 부분이었다. 특히 임신중지를 결정하고 찾은 병원에서 갑자기 태아의 심장박동소리를 듣게 하고 죄책감을 강조한 건 불편한 연출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이 청소년들의 임신 문제에 이어진 아방들의 갈등 역시 거의 누아르 액션을 보는 듯한 격투로 이어지면서 극한으로 치달았다. 조폭 출신인 인권은 현을 무릎 꿇리고 뺨을 때리는 폭력도 보여줬고, 한때 도박에 빠졌었던 호식은 딸을 어쩌지 못해 제 뺨을 때리는(이것 역시 폭력이다)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두 사람은 결국 시장통에서 마주해 피를 흘리는 주먹다짐을 했고 경찰서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두 아방들이 이토록 싸운 건 망가진 자신들의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자식들이 아이를 갖게 됨으로써 그 희망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날아간 상황 때문이었다. 인권은 조폭 짓을 하다 어머니가 차에 치어 숨졌고 아내는 떠났다. 떠나면서 아내는 “자식한테 부끄럽게 창피하게 살지 말라”고 한 어머니의 유언을 전했다. 호식 역시 도박에 빠져 아내가 도망쳤고, 인권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자식 앞에서 앵벌이 하는 기분이 어떠냐?”는 말을 듣고는 절망했다.

그 말은 도박에 빠진 호식을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호식은 그 후로 인권을 사람 취급 하지 않고 으르렁대며 살아왔다. 결국 아이들 문제로 시작했지만 이 에피소드는 인권과 호식 사이에 있었던 오랜 갈등과 그 화해로 이어졌다. 자식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 했지만 그 자식이 “아버지가 평생 쪽팔렸다”고 말하는 걸 듣게 된 인권이나, 홀로 아이를 키워오며 그 힘겨움만은 자식에게 주고 싶지 않았던 딸이 끝내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하며 “져 달라”고 말하는 걸 듣게 되는 호식이나 모두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마주하게 됐다.

그래서 결국 이 인권과 호식의 에피소드는 무얼 말하려 한 것일까. 흔히 자식에 대한 헌신이나 희생 같은 숭고한 말들로 포장되지만, 그럼에도 결국 아이들은 제 갈 길을 가기 마련이며 그걸 부모가 막거나 바꿀 수는 없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태풍처럼 몰아친 갈등은 그래서 마치 인권과 호식이 애지중지 ‘내거’로 생각해오던 현과 영주를 독립적인 존재로 놔주는 과정처럼 보인다. 물론 이에 대해 아방들에게 각각 영주는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현은 “잘못했다”고 말하며 뒤에서 포옹하며 화해하지만.

이 에피소드에는 남는 아쉬움들과 불편한 지점들이 적지 않다. 그건 과연 저런 상황이 연달아 벌어질 수 있을까 싶고, 저런 상황에서 저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싶은 다소 과한 스토리 전개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를 이처럼 누아르 방식으로 풀어낸 건 색다른 지점이긴 하다. 무엇보다 이 두 아방 박지환과 최영준의 몰입감 높은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과한 설정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울릴 수 있었을까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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