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노희경 작가가 건네는 희망과 위로의 정체

[엔터미디어=정덕현] 우리의 삶은 서로의 손을 잡고 추는 블루스 한 자락을 닮은 게 아닐까.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왜 옴니버스식으로 여러 인물들을 짝으로 세워 이야기를 풀어내며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이제야 알겠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저마다의 아픔과 갈등으로 고통 받지만, 그런 그들에게는 누군가 내미는 의외의 손길들이 있다. 그 손길이 있어 ‘블루’한 삶이 ‘블루스’가 되어간다. 힘들어도 한 자락 함께여서 출 수 있는 춤이 된다.

거의 마지막 에피소드일 옥동(김혜자)과 동석(이병헌)의 이야기는, 도무지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동석의 가슴에 맺힌 한에 대한 것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죽고 누나도 물질하다 죽고 남의 집에 사실상 첩이 되어 들어간 옥동. 그는 그 집에 들어가면서 동석에게 자신을 엄마라 부르지 말고 ‘작은 엄마’라 부르라 했다. 동석은 그걸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집 아들들에게 주먹질을 당해도 본체만체했고 돈 훔쳐 도망칠 때도 잡지 않았다. 옥동은 왜 그랬을까. 동석은 그게 궁금해 미칠 지경이지만 묻지 못한다.

푸릉마을 사람들은 동석에게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옥동이 말기암이라는 사실 때문에 동석에게 옥동이 원하는 마지막 일들을 해주라고 한다. 그건 죽은 양아버지 제사에 데려다 달라는 것. 동석은 미칠 지경이다. 자신을 이해한다는 푸릉마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들이 그에겐 가득하다. 다행인 건 동석이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엄마의 그 모질었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아(신민아)가 있다는 사실이다.

선아는 동석에게 자신의 이혼으로 아이가 받을 상처에 대해 미안하다 말하고, 엄마랑 대차게 싸워보고 싶다는 동석에게 갑자기 자살해버린 아버지에 대해 말한다. “나 역시 아빠를 생각하면 따지고 묻고 싶거든. 어떻게 딸내미가 보는 앞에서 바다에 뛰어 들 수 있는지. 나는 당신한테 진짜 아무 것도 아니었는지. 근데 나는 지금 따지고 싶어도 못 따져. 오빠는 그러지 마. 엄마한테 물을 수 있을 때 물어. 따질 수 있을 때 따지고.”

<우리들의 블루스>의 이야기들 속 인물들은 저마다 동석 같은 아픔이나 갈등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풀어지는 과정에는 꼭 주변에 누군가가 존재한다. 동석 옆에 선아가 있었듯, 자동차 사고로 의식이 없는 막내아들 소식을 뒤늦게 알고는 병수발하는 며느리에게 모질게도 자신이 모아뒀던 통장을 건네며 의사가 코에 낀 명줄 떼자고 하면 떼라며 괜히 돈 들고 몸 고생하지 말라 말하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춘희(고두심)에게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옥동이 있었다. 소원을 들어주는 달 백 개가 뜬다는 제주 이야기를 해준 아빠의 그 말을 진짜로 믿고 싶은 손녀 은기를 위해 오징어배를 띄워주는 푸릉마을 사람들이 있듯이.

다운증후군인 언니 때문에 도망치고 도망치다 제주에 내려와 그 깊고 깊은 바다에서 홀로 물질을 하는 시간에 빠져든 영옥(한지민)에게는 그 모든 걸 이해해주고 껴안아주는 정준(김우빈)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지만 그를 위해 기꺼이 멀리 떨어져 지내려 하는 언니 영희(정은혜)가 있었다. 가난한 은희(이정은) 옆에는 그를 챙겨줬던 미란(엄정화)이 있었고, 우울증의 심연 깊숙이 빠져 들어가는 선아에게는 만물상 물건들을 알리는 소리로 그를 현실로 끌어 올려주는 동석이 있었다.

어쩌다 덜컥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져버린 영주(노윤서)와 현(배현성)에게는 늘 죽일 듯이 싸워댔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서로를 챙겼던 그들의 아빠들 인권(박지환)과 호식(최영준)이 있었고, 현실에 찌들어 첫사랑 감정마저 이용하려 했던 한수(차승원)에게는 그것마저 우정으로 받아주려 했던 은희가 있었다.

우리는 과연 이 모진 삶을 어떻게 버텨내며 살아가는 걸까. 홀로 뚝 떨어져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거라 여기지만, 누구든 주변에 그걸 바라봐주고 아픔을 들어주고 때론 자기 아픔을 꺼내 위로를 주는 누군가가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우리 삶이 누군가 잡아주고 함께 춤을 춰줘서 버텨낼 수 있는 한 자락의 블루스 같다고 말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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