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억지로 만든 오해와 갈등 그리고 뻔한 화해

[엔터미디어=정덕현] “미란이는 공주님, 넌 무수리. 모시러 안 가냐?” 은희(이정은)의 절친 미란(엄정화)이 제주도에 온다고 하자 동창들은 대놓고 그렇게 함부로 말한다. 무수리와 공주. 제아무리 절친들이고 거칠게 살아온 이들이라고 해도 무례한 언사다. 그래서 기분이 별로인 은희지만, 그래도 미란을 맞으러 공항으로 나간다. 그런데 만나는 장면에서 무거운 짐을 바리바리 끌고 메고 오는 은희와 달랑 짐 하나 끌고 우아하게 걸어오는 미란의 모습이 연출된다. 무수리와 공주의 광경이다.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미란과 은희’ 에피소드는 이렇듯 학창시절부터 찐친이었지만 어딘가 균열이 생기고 금이 가기 시작하는 미란과 은희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며 제 멋대로인 미란에게 앞에서는 웃으며 반가워하지만, 뒤에서는 “이기적인 년”이라며 투덜대는 은희의 모습은 이제 꾹꾹 눌러놓은 감정이 점점 비등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부잣집에서 자라왔고 세 번이나 이혼을 한 미란과 가난한 집에서 자라 학교도 가까스로 나왔고 억척스럽게 살다보니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은희는 그 살아온 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럼에도 은희는 학창시절 버스비가 없을 때 차를 태워주고, 점심 도시락도 챙겨주고, 가난해 학업을 포기하게 하려했던 아버지도 설득시켜준 미란을 ‘고마운 친구’로 여기며 의리를 지켜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희가 인내할 수 없었던 사건이 있었다. 세 번째 이혼을 했던 미란이 죽고싶다며 잠적한 줄 알고 한달음에 제주에서 서울 미란의 집까지 달려왔지만, 그것이 미란이 친구들과 한 내기였다는 걸 알게 됐던 사건이었다. 그날 미란은 은희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다. “얘는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내 인생에서 제일 만만한” 친구라고 했던 것.

‘미란과 은희’의 에피소드는 이처럼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균열을 대놓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누가 봐도 미란을 욕하고 은희의 입장을 두둔하게 되지만, 그러면서도 이것이 분명 은희가 모르는 어떤 ‘오해’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미란이 그런 말과 행동을 하고, 나아가 은희가 큰 상처를 입은 그런 내기까지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것.

오해와 갈등 그리고 화해. 어쩌면 이건 드라마의 기본 골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런 전개는 너무 전형적이다. 그래서 그러한 오해와 갈등을 만드는 사건들이나 그걸 보여주는 대사, 연출 또한 너무나 의도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결국 화해의 순간에 만들어지는 감정선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해와 갈등을 심화시키고, 그래서 일종의 차단막을 세워놓은 채 미란을 ‘이기적인’ 인물로 그려 넣는 듯해서다. 이 관점으로 다시 보면 시작부터 무수리와 공주 운운하는 대목이 너무 작위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에피소드의 작위성은 영옥(한지민)의 이야기에서도 보인다. 거짓말만 일삼고 매번 오는 전화 때문에 육지에 남자가 있다 숨겨놓은 아이가 있다는 식의 소문으로 해녀들 사이에서 배척당하는 영옥의 에피소드가 그렇다. 아마도 아픈 동생 정도가 있을 성 싶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극대화해놓은 오해와 갈등으로 시청자들을 억지로 끌고 가는 그런 느낌이다. “걔는 내 하나뿐인...”이라며 그 정체를 밝히려는 대목에서 대사를 날리고 일종의 ‘지연’ 방식의 전개를 활용한 건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 정체 하나로 시청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느낌이 들어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목과 여러 부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들’로 묶여지는 어떤 관계들이 맞닥뜨린 갈등과 그 화해의 과정을 마치 ‘블루스’를 추는 듯한 밀고 당김으로 풀어냄으로서 우리네 삶이 힘겨워도 하나하나 풀어내다보면 한바탕 블루스 한 자락 같다는 걸 전하는 드라마다. 그래서 갈등이 등장할 수밖에 없지만, 여러 에피소드들이 내놓은 갈등들 중에는 너무 의도성이 보이는 것들이 눈에 띤다.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물론 삶의 진심이 묻어나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다소 억지로 오해를 엮어 만들어내고 다소 뻔한 화해로 풀어내는 에피소드는 아쉽다. 에피소드별로 어떤 메시지나 감동을 전하려 하는 건 좋지만 그 결과를 위해 과정을 다소 인위적으로 배치하는 건 진정성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미란과 영옥의 이야기가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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