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연애예능이 대세인데 ‘여행의 맛’ 통할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조선의 새로운 주말 예능 <여행의 맛>이 첫 번째 여행을 마쳤다. 사실상 지금까지는 크게 비평할 거리나 언급할 만한 색다른 볼거리를 찾기 어렵다. 너무나 익숙한 출연자들이 너무나 많이 봐온 방식으로 티격태격 합을 맞추고 여행지를 보여주는 방식도 극히 평범하다.

이경실, 박미선, 조혜련, 김용만, 지석진, 김수용. 모두 시청자들과 30년 이상 함께 지내온 노련한 예능인이고, 함께 알고 지낸 세월이 깊다보니 모였을 때 바이브가 흥겹다. 그런 만큼 이들이 모였다는 소식 자체가 여행 전 진행을 맡은 김숙부터 출연진 모두가 떨었던 호들갑처럼 큰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추억 보정일 가능성이 높다. 감자골이든, 조동아리든, 1990년대부터 70년대생 MC들과 함께 전성기를 보낸 ‘쎈언니’(이경실, 박미선, 조혜련)든 모두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정규화가 되면 한창 때의 유재석도 살리지 못했다. 변수가 없기 때문이다. 박미선의 이봉원 토크, 김수용의 안 재밌고 의욕 없는 캐릭터, 아내에게 눌려 사는 지석진, 조혜련의 에너지, 장례식 토크 등등 익숙한 맛은 있지만 웃음의 방정식과 상황, 캐릭터의 역학관계가 너무 뻔하고 익숙한 반복이다.

코로나 이후 돌아온 여행예능은 엇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오랜만에 외국의 풍광과 따뜻한 날씨, 여행지를 보여주는 것은 좋다. 그런데 너무나 빡빡한 체험 일정들을 소화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시청자 입장에서 몰입해 대리체험을 하고 싶지만 일정이 너무 매력적이지 않다. 코로나 이후 다시 돌아온 여행예능들에서 대체로 나타나는 특징이긴 한데 조급함인지 혹은 감이 떨어졌는지, 여행의 감각과 정서를 담지 못하고 액티비티나 여행지 체험에 집중하는 여행예능의 초기 수준의 볼거리를 답습한다.

<여행의 맛>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저녁 도착 오후 출발 일정의 2박3일간의 강행군 속에서 맛집 탐방, 쇼핑, 여행상품 투어, 돌핀투어, 사랑의 절벽 투어 등등 입국부터 출국 직전까지 빽빽하게 짜인 여행 스케줄을 따라 가다보니 일정도 채 소화하기 급급하다. 김용만이 중심에 있다 보니 사실상 JTBC <뭉쳐야 뜬다>의 기시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괌으로 떠난 첫 번째 여행에선 이 조합이기에 특별히 기대할 만한 분위기와 스토리라인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TV조선의 ‘맛’ 시리즈에 새롭게 추가된 <여행의 맛>은 현재 TV예능의 두 가지 경향이 만나 탄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 번째는 제목 그대로, 이제 다시 기지개를 틀고 수사 그대로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는 여행예능이란 점이다. 본디, 이런 얕은 트렌드는 경계해야 마땅하나 지긋지긋했던 팬데믹의 종식을 알리는 전령이라 아직은 반갑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다시 느껴보는 이국적인 풍광이 주는 로망과 떠남의 설렘이 코로나 기간 동안 움츠러든 마음에 콧바람을 불어넣는 점도 즐겁다.

<여행의 맛>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런 반가운 여행의 볼거리에 얹은 고령화 전략이다. 조동아리(김용만, 지석진, 김수용)와 이들과 30년 넘게 방송가에서 동고동락해온 이경실, 박미선, 조혜련 등의 센 언니 캐릭터를 가진 베테랑 개그우먼들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 20대부터 알고 지낸 이들의 여행인 만큼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이들과 함께 세월을 보내온 50대, 혹은 40대 중후반 시청자들과 공감대 형성에 있다.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마치 동창회를 하듯 함께 세월을 보내며 살아온 이들이 모여서 함께 그 시절의 감각을 되살린다는 점이 포인트다.

그래서 이들이 처음 꺼낸 이야기도 ‘청춘’으로의 추억 여행이다. 사전 모임을 겸했던 1화에서는 옛날 그 시절 레트로 패션으로 만나서 소지품 교환 같은 미팅의 방정식으로 여행 파트너를 정하고, 괌에 도착해서는 옛날이야기, 50대 중후반인 만큼 이른바 장례식 개그와 같은 또래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옛날 노래를 함께 차에서 크게 함께 부르며 흥을 돋운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SBS <불타는 청춘>이 특별했던 건 당시 TV예능에서 아무도 타깃으로 삼지 않은 중장년층을 특정해 그들을 위한 또래집단이 공감할 수 있는 예능 구사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온가족 콘텐츠뿐 아니라 많은 TV예능이 중장년층의 추억과 또래집단의 기억, 정서를 건드리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MBN <무작정 투어-원하는 대로>는 신애라와 박하선이 매주 새로운 여행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고, <살림남2>에서 다시 한 번 부부애를 보여준 결혼 29년 차 최수종·하희라 부부는 시골의 빈집을 수개월 동안 고치고, 안식처를 완성하는 과정을 담은 KBS 2TV의 새 예능 <세컨 하우스>를 준비 중이다. tvN STORY <회장님네 사람들>은 <전원일기>의 주요 배우들이 다시 모였다. 김용건, 김수미, 이계인의 전원에 자리하고 그리운 손님들을 맞이하는 본격 추억 여행이다.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 중인 혼자 사는 중년 여자 스타들의 동거 생활을 담은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시즌3까지 힘이 떨어지지 않고 순항중이다. 공통점은 올드스타들이 주역으로 등장하고 그들과 함께 세월을 보낸 시청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낸다는 점이다.

트로트 붐을 이끌어온 TV조선의 사업 전략이 이제 TV예능의 하나의 툴로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다. 그리고 ‘추억 여행’의 추구라서 그런지 ‘여행예능’으로 풀어가려는 경향이 보인다. 나이에 맞게 쉬운 길을 찾는 단순한 조합일까, 새로운 돌파구일까. 중년에 찾아온 친구들과의 여행이 과연 젊은이들의 연애예능이 대세가 된 오늘날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제시할지 궁금해진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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