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사라진 여행예능에 미래는 없다(‘두 발로 티켓팅’)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세상에 영원이란 없다. 벼락거지의 탄생에서 영끌족의 탄식으로 이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오징어게임>을 필두로 불었던 OTT붐도 마찬가지다. 마치 세상을 집어삼킬 듯, K-콘텐츠라는 깃발 아래 모든 콘텐츠를 빨아들일 기세였던 OTT 업계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여전히 한류의 조류는 강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지금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외치기보다는 안방부터 전략적으로 지켜야 할 때다.

최근 격전을 치르고 있는 한국 OTT시장을 조사한 결과 구독자들의 K-콘텐츠 소비율은 약 7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비율이 가장 낮은 넷플릭스도 한국어 콘텐츠 이용이 50% 이상이며, 국내 OTT의 경우 드라마의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져서 그렇지 로컬 예능 콘텐츠의 왕성한 소비가 특기할 만한 포인트였다. OTT서비스가 TV편성표를 대체하고 있는 만큼 제작의 가성비 측면에서도 매력적이면서, 일상적이고 가볍고 친근한 콘텐츠로 이미 대중과 가까운 예능이 여전히 구독자를 붙잡아두는 알짜 콘텐츠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예능에 보다 포커스를 두기로 한 tvN과 그와 연관된 티빙이나 지상파3사가 뭉친 웨이브나,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나 후발주자인 디즈니플러스나 한국 시장을 놓고 살벌한 경쟁을 하고 있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예능 투자가 활발하고 주목받는 한해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흐름 하에 티빙은 1월부터 두 편의 새로운 여행예능을 내놓았다. 그중 첫 번째로 출발한 여행예능이 바로 <두 발로 티켓팅>이다. 로그라인은 간단하다. 하정우, 주지훈, 최민호, 여진구 등의 배우들이 뉴질랜드에서 함께 캠핑 여행을 한다. 그런데 그냥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여정에는 이타적인 취지와 명분이 있으니, 여행 중 제작진이 사전에 설계한 미션을 출연진이 완수할 때마다 시청자를 위한 여행 티켓이 발생한다. 즉, 미션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높은 목표를 달성할수록 행운의 시청자 수가 늘어난다. 출연자들을 ‘여행보내Dream단’이라 부르고, 제목이 ‘두 발로 티켓팅’인 이유다.

바로 이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배우들이 망가지고 힘들어하면서도 미션과 게임을 해야만 하는 당위를 마련하고, 이 여행이 그저 그들만의 이야기나 즐거운 경험이 아닌 나름의 사회적인 의의를 더해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한 층 더 깔았다.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캠핑카를 받아 정해진 장소로 직접 이동한다. 매일매일 하루의 예산을 부여받는 용돈게임을 벌이는데, 첫날에는 성인 남성 4명이 26달러 안에서 전전긍긍하며 장을 봐야 했다. 게다가 깜짝 미션을 발동해 배우들을 고생의 늪에 빠트린다. 장을 보는 사이 차를 제작진이 가져가고 44km를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미션을 부여하는 식이다. 당연히 힘들어한다. 걷기로 책을 낸 하정우가 있으니 하루 12만보 걷기 미션도 있다. 엄청난 생고생이라고 투덜거리지만 그들이 고생해 걷고 달리는 만큼 시청자들에게 티켓을 보내줄 수 있으니 의지를 발휘하고 이를 멋진 자연 풍광을 배경 삼아 감동과 잇는다.

그런데, 여행에 명분을 입혔다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시청의 명분으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왜냐면 이들이 여정과 의지에 따라 시청자들에게 행운과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 빼고는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뭉쳐서 여행을 떠나는 데 캠핑감성을 곁들이니 tvN의 <윤식당>부터 <바퀴달린 집>시리즈, <텐트 밖은 유럽> 등이 바로 떠오른다. 미션과 게임 등의 설정을 통해 배우들이 민낯으로 생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는 <1박2일>이 소환된다. 큰형인 하정우를 중심으로 제작진에게까지 미치는 중력이 작용하는 것도 비슷하다. 최민호와 여진구는 존경을 표하고, 자전거와 달리기가 익숙지 않음에도 이를 악물고 참고 버티며 미션을 수행한다.

쉽게 말해 설정 중심으로 타이트한 여행을 하는 옛스런 여행예능인데 착한 취지를 더해 새로움을 추구한다. 한때 유행한 선한 영향력의 변형이다. 제작진은 꼼꼼한 사전 조사를 통해 다양한 볼거리, 액티비티를 다채롭게 준비하고, 복불복 게임부터 몸으로, 또 합동해야 하는 미션을 부여한다. 성공하면 그 혜택이 시청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 감동의 포인트겠지만 이 의도를 너무나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오늘날 예능의 핵심인 스토리텔링이 약화되거나 방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두 발로 티켓팅>과 같은 관찰을 기반으로 한 여행예능에는 리얼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복불복 게임, 먹방, 엑티비티 체험도 작위적인데, 이를 덮을 명분 또한 밖에서 만들어 온 것이니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착한 취지에서 파생되는 미션, 팬심으로 출연자를 대하는 제작진과의 낮은 긴장관계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전개, 변수 등의 가능성이 제한된다. 형 동생의 역학관계 안에 놓인 출연진의 운신의 폭도 넓지 않다. 주지훈은 의외의 발견이지만 그 외에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캐릭터가 없다. 그간 몰랐던 출연자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거나 관계에서 나오는 리얼한 장면들이 많지 않은 이유다. 무엇을 하면 좋게 보이는지 뻔히 알고 큰형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발견’할만한 별다른 여지가 없는 셈이다.

스토리텔링이 사라진 여행예능에 미래는 없다. 팬데믹 이후 여행예능이 판판이 고꾸라지는 이유다. 팬데믹 이후 여행예능은 여행 유튜브를 반드시 참조 후 우회해야 한다. 새로운 풍광을 소개하는 것으론 아예 안 된다. 뻔한 출연진들의 힐링 콘셉트도 어렵다. 유튜버들이 만들어내는 대리체험의 로망은 팬데믹 이전 여행예능 수준으로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리얼함과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란 접근성에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행예능이 갖는 비교우위는 인지도 높은 출연자들이 함께 무언 갈 만들어가는 이야기나, 그들이 새롭게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있다. 혹은 <윤식당>처럼 이 둘의 결합이 필요하다.

<두발로 티켓팅>은 심지어 OTT예능이다. 화제성이 마케팅의 1순위가 되어야 한다. 터지면 글로벌 대박이지만 접근성이 비교적 낮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 OTT예능이라면 더욱 더 새로운 자극점이 필요하다. 연애예능을 제외하고는 OTT만의 예능이 기존 방송 예능 문법을 넘어선 재미를 만들어내진 못한 이유가 기존 방송 문법 그대로 예산만 뻥튀기해서 제작했기 때문이다. 시청자와 제작진이 같더라도 플랫폼이 달라진 만큼 OTT예능은 전략적으로도 달라져야 한다. 시청자보다 어려운 구독자 붙잡아두기를 위해서 필요한 건 명분이나 거대한 스케일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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