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이보영이 이 땅의 진짜 주역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엔터미디어=정덕현] “훗, 충성심이라.. 그게 문젠데.. 일을 능력으로 하지 충성심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공채라서, 누구 라인이라서, 회사에 피해를 주는 일을 해도 승진시켜 주니까 회사가 이 꼴 아닙니까?”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에서 고아인(이보영)은 긴급 마련된 임원 회의에서 임원들에게 그렇게 일갈한다. 임원들이 들고 일어난 건 고아인이 공채 부장들에 대한 인사평가를 하면서다.

공채들만 대놓고 이렇게 저격을 하면 그들이 어떻게 충성심을 보이냐고 말하는 인사팀 상무에게 고아인은 그들이 왜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다. 팀원들에게 광고주 결혼 준비를 위해 청첩장을 만들고 웨딩 사진을 포토샵해 포스터처럼 만들라고 명령하는 부장이나, 실력 있는 부장을 경쟁사로 이직시켜 버린 사내 정치질을 일삼는 부장이 그들이다. 그런 충성심 운운하는 짓거리들로 인해 저들은 계산해보지 않았겠지만 고아인이 계산해낸 손실액은 수백억이다.

고아인이 말한대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저들만의 카르텔과 라인들이 존재해서다. 고아인은 바로 그걸 깨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이렇게 일갈하고 있는 임원 회의의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임원들은 고아인을 빼고는 모두 남자들이다. 고아인이 그 틈바구니에 들어가 제작본부장이라는 임원을 달게 된 건 1년짜리 회사의 얼굴마담 역할 정도로 그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여성 임원을 발탁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려 회사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또 회장의 딸 강한나(손나은)가 귀국해 낙하산으로 회사에 앉히기 위한 사전 포석이기도 하다. 고아인은 죽을 듯이 열심히 일해 제작본부장 타이틀을 따고 임원이 된 사실에 너무나 기뻤지만 그것이 겨우 1년짜리 얼굴마담 역할이었다는 걸 알고는 무너진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결심한다. 다시 저들과 싸우겠다고.

“저는 부모도 없고 지방대 출신 흙수저 여자입니다.” 고아인이 임원회의에서 저들을 향해 자신을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며 “긍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자는 인사팀 상무의 이야기에 “그건 많이 가진 사람들의 자세”라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자신처럼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신 “금전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현실이고 생존 투쟁이라는 걸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자리를 걸고 6개월 내 매출 50% 상승의 결과를 못 내면 책임지고 회사를 나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자리를 걸라고 말한다. 선전포고다.

<대행사>는 고아인이라는 여성들이 대변하는 사회에서 겪는 유리천장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유리천장을 느끼는 건 여성이라는 성차 때문만은 아니다. 고아인이 스스로를 설명하듯 부모도 없고, 지방대 출신이고, 흙수저라는 태생적으로 갈라지는 스펙의 문제 또한 우리 사회에 쳐져 있는 유리천장이다. 그래서 고아인이 저 임원 회의에서 저격하는 라인은 단지 남성들이라서만은 아니다. 금수저거나 명문대 출신으로 엮어진 저들만의 네트워크도 그 중 하나다.

<대행사>가 흥미로운 건 우리 사회에서 갑을 관계로 선이 그어져 있는 그 틀 속에서 을들의 연대 속에 여성들은 물론이고 스펙 없는 흙수저 출신 같은 다양한 이들을 겹쳐 놓았다는 점이다. 금수저로 태어나서 자기 아버지의 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오기 뭐해 해외 유학이랍시고 나가 있다가 때 되어 돌아와 떡하니 그 유리천장 위에 앉는 이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게 우리네 사회의 안타까운 시스템이다.

실제로는 고아인이나 그 밑에서 일하는 한병수(이창훈) 부장, 워킹맘 조은정(전혜진) 차장, 서장우(이경민) 대리 혹은 배원희(정운선) 수석 카피라이터 같은 이들이 진짜 일을 하는 주인들이지만 이들은 ‘얼굴마담’ 취급을 하거나 아무 때나 쓰고 버려도 되는 소모품 취급을 한다. <대행사>는 결국 저들의 휴지조각처럼 쓰다 버리려 했던 이 땅의 무수한 고아인들의 반격을 보여준다. 그래서 보는 내내 속이 시원해진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이 드라마의 제목이 <대행사>이고, 하필이면 그 직업군으로서 광고대행사를 내세웠는가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대행’한다는 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누군가를 대신한다는 뜻이다. 결국 일은 이들이 하고 있지만 이들은 허수아비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만일 이 허수아비 취급을 받는 이들이 실제로는 자신들이 주인이라는 걸 자각하고 저들이 ‘돈만 많은’ 허수아비라는 걸 증명한다면? <대행사>에서 고아인이 하는 하나하나의 행보들과 쏟아내는 사이다 일갈이 왜 그토록 시원한지 공감할 수 있을 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