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 백미경 작가가 남긴 어마어마한 성취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백미경 작가의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 대한 내 의견은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었던 <비밀의 숲>보다 훨씬 추리물의 도구를 잘 쓴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도구로도 좋았지만, 전통 장르팬들만이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반전도 있었다. 이 드라마의 범인 숨기기는 S. S. 반 다인의 추리소설 작법 규칙 10번을 경쾌하게 놀려댄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분명 페어플레이이고 오직 드라마와 같은 영상매체에서만 먹히는 농담이다.
막 종영된 <마인>도 <품위있는 그녀>와 비슷한 구조의 추리물이다. 재벌 저택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액자를 통해 보여준 다음 이를 스토리와 엮어가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단지 이번에는 피해자가 누군지도 중반까지 감춘다. 진상이 드러나면서 고전 추리소설에 나올 법한 상황과 트릭과 반전이 이어진다. 예를 들어 쓰러진 두 번째 사람과 이층에 있었던 사람의 정체, 두 주인공이 누구를 지키려 하고 있었는가와 같은 것들. 밀실추리물은 아니지만 진상은 약간 존 딕슨 카의 소설을 연상시킨다. 우연과 오해가 어쩌다 연달아 겹쳐 만들어진 수수께끼다.

단지 치밀하지는 않다. 일단 살인사건일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 너무 건성으로 다루어진다. 살인과 관련된 음모 일부는 어떻게 뒷감당을 할 생각이었는지 감이 안 온다. 액자를 구성하는 증인 엠마 수녀의 진술은 끝까지 정리가 안 되어 있다. 설정상 난장판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긴 한데, 그래도 전능한 재벌 권력의 개입이라는 핑계없이 조금 더 사실적이고 정직한 설정을 넣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치밀하지 않은 건 재벌 묘사도 마찬가지다. 한국 드라마에서 치밀한 재벌 묘사 같은 건 나온 적이 없다. 아무리 열심히 사전 조사를 해도 닫혀 있는 세계이고 이미 장르화된 재벌 드라마의 망상에 끌려가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아무리 비판적이 되려고 노력해도 이 세계에 대한 선망이 이를 가로 막는다. <마인>에서도 재벌 세계를 비판하려는 시도는 있지만 이 세계의 일부인 두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너무 커서 객관적이 되지는 못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결과물의 일부는 우스꽝스럽다.

아무래도 김서형이 연기한 주인공 ‘재벌 성골’ 정서현의 묘사 일부는 풍자처럼 보인다. 적어도 풍자여야 한다. 하지만 작가가 그걸 풍자로 썼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은 것 같다. 이 세계의 계급의식과 차별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는 건 저택의 메이드인 김유연과 그 집 장손인 한수혁의 로맨스인데,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면 주인공이었을 이들의 이야기는 신기할 정도로 건성이고 심지어 후반엔 모두의 관심을 잃은 채 은근슬쩍 사라져 버린다. 이는 의도였을 거 같은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드라마가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다. <마인>이 집중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재벌 내의 가부장적 권력 구조이다. 평생 재벌 세계 사람이었던 주인공이 재벌 회장이 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전개지만, 그 재벌 세계 사람이 집안의 며느리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마인>의 재벌가는 부계 혈통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가부장적인 세계이고 주인공들은 이 구조 안에서 착취당하거나 이용당하거나 무시당하던 여자들이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 이들은 이 세계의 시스템이 당연한 듯 빼앗았던 자기 것을 찾는다. 시스템 자체는 굳건하기에 세계 자체는 크게 바뀐 게 없고 여전히 ‘모성’이 이야기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개인적 성취의 의미는 크다.

모성 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논리적이다. 이 드라마에서 갈등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둘째 아들이고 또다른 주인공인 배우 서희수(이보영)의 남편인 한지용(이현욱)과 승마교사인 이혜진(옥자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한하진이다. 서희수는 이 이야기를 자기 아들이라 여기며 키우고 있는데, 아들을 되찾으려는 이혜진은 강자경이라는 튜터로 신분을 위장해 저택으로 들어온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공식, 그러니까 가부장제도에 의해 아들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여자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를 다른 식으로 푼다. 이들은 자신을 희생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에서 멈추는 대신 대놓고 연대하고 초반 이후 대놓고 악역으로 그려지는 한지용에 맞선다. 이를 위해 드라마가 사용하는 것은 동성애에 가까운 유사 연애 감정인데, 분명 의도이겠지만 종종 화면에 드러나는 성적 긴장감이 강해서 오히려 종종 제동을 걸어야 할 정도이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엔 이들은 죽은 남편을 대충 치우고 아들의 공동양육자, 그러니까 두 엄마가 되는데, 이는 대놓고 퀴어스러운 결말이다.

두 주인공인 정서현과 서희수의 관계도 유사 동성애로 그려진다. 같은 공간에 사는 두 여자의 친근함과 연대 자체는 특별히 이상할 건 없는데, 드라마는 이들의 관계를 그리는 데에 로맨스의 관습적 어휘를 총동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빈도와 강도는 마지막회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높아진다. 시청자들은 이들의 관계에 ‘동서애’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최근 한국 드라마판에서 나온 말장난 중 최고가 아닌가 싶다.
이들은 모두 동성애 분위기로 시청자들을 자극하고 유혹하려는 퀴어 베이팅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퀴어 베이팅 자체는 한국 드라마에서 드문 편이 아니다. <마인>에서 특별한 건 다들 당연히 퀴어 베이팅의 도구로 쓰일 거라고 여겼던 (김서형의 팬들은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 배우의 캐릭터를 극중 모든 여자들과 엮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서현이 실제로 동성애자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 세계 여자들 중 가장 강자의 위치에 있는 정서현에게 의미 있는 핸디캡을 안겨준다는 기능적인 목적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 묘사가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다. 이 상황을 묘사하는 대사의 완곡어법은 뻣뻣했고 모든 장면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제작진이 <캐롤>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외의 다른 레퍼런스도 공부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인>은 퀴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고 이 캐릭터를 선정적인 미끼로 쓰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의 자연스러운 공감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는 한국 드라마의 환경을 고려해 보았을 때 어마어마한 성취이다.
끝난 뒤에 돌이켜 보면 <마인>의 불완전성은 그 자체가 드라마의 일부인 것 같다. 드라마와 이야기의 완성도 자체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도달하기 위한 타협의 과정도 무시할 수 없다. <마인>은 한국 드라마 세계에서 아직도 금기시되고 시기상조라고 여겨지는 주제에 자연스러움과 당연함의 기반을 부여했다. 이 뒤를 잇는 작품들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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