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마인’·‘결사곡’이 멸망 않고 성공한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MBN <보쌈>과 tvN <마인>,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공통점은 익숙한 정극이라는 점이다. <보쌈>은 조선시대의 로맨스와 권력다툼을 그린 기존의 사극과 접점이 많다. <마인>은 소위 ‘막장’ 주말극의 흔한 소재인 재벌가의 사생활을 다룬다.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일일드라마에서 수없이 변주되어 중년 남녀의 불륜과 사랑, 일상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작품은 굉장히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주중에서 방영되는 젊은 층을 노린 로맨스물들이 줄줄이 시청률에서 멸망한 것과는 비교가 된다.

물론 TV 시청층이 젊은 층에서 장년층으로 옮겨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보쌈>과 <마인>, <결사곡> 모두 익숙한 설정이라 중간 유입이 굉장히 쉬운 작품들이다. 물론 연출의 특성상 <마인>은 중간 유입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 작품 모두 익숙한 패턴의 반복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들은 과거 정극의 스토리를 가져가면서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주는 요소들을 적절하게 집어넣었다. 그저 인기 웹툰의 핵심코드를 제대로 버무리지도 못한 드라마, 달달한 로맨스를 원했더니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는 지루한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일단 <보쌈>은 보쌈꾼 바우(정일우)와 수경옹주(권유리)의 로맨스, 여기에 옹주를 짝사랑하다 결국에 그녀를 뒤에서 지켜주는 이대엽(신현수)의 로맨스가 있다. <보쌈>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는 조선시대에서 이 로맨스를 절절하게 그려낸다. 아마도 올해 상반기 로맨스면에서는 가장 돋보였던 드라마가 <보쌈>이 아닐까 한다.

또한 <보쌈>은 익숙한 권력다툼의 중심에서 수경옹주를 섬세하지만 강단 있고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낸다. <보쌈>에서 수경옹주는 황당하게 당한 ‘보쌈’이지만 그 ‘보쌈’을 통해 처음으로 왕가와 시댁에서 벗어나 그녀만의 삶을 찾아가게 된다. 이 이야기의 설정이 굉장히 흥미로운 데다, 수경옹주를 연기하는 권유리의 연기력도 탄탄해서 <보쌈>은 오랜만에 보는 알찬 사극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마인>은 얼핏 보기에는 더 시청률을 뽑아낼 수 있는 데도 잔잔하고 고급스럽게 가라앉히는 느낌을 준다. 아무리 재벌가가 등장해도 ‘쌈마이’했던 과거 막장극과 달리 <마인>의 효원가의 배경은 그 자체로는 굉장히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그 우아함 안에서 천박함을 그리는 방식 또한 치고 박는 말싸움보다는 인물간의 두뇌싸움과 심리싸움에 가깝다.

이런 분위기에서 <마인>은 여성캐릭터가 치고 박는 머리끄덩이 막장을 벗어난 케이스다. 대신 동서 관계인 서희수(이보영)와 정서현(김서형)이 손을 잡고 문제들을 헤쳐 나간다. 특히 <마인>에서 정서현 캐릭터는 배우 김서형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기존에는 볼 수 없던 중년여성 인물을 정극 속에서 만들어냈다. 또 정서현 외에 악역들에 대해서 이들의 심리를 파헤치려는 시도들도 신선했다.

다만 매력적이고 신선한 캐릭터와 아름다운 미장센에 비해 깊이 있는 재벌가 비판 드라마까지 선이 닿지 않아 아쉽다. 주인공 서희수를 연기한 이보영의 연기도 곳곳에서 좀더 유니크했으면 하는 아쉬움들이 있다. 시도에 비해 전체적으로 극이 밍밍해진 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인>은 소위 ‘막장극’이 2021년에도 멸망하지 않고 진화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한편 <결사곡2>로 돌아온 피비(임성한) 작가는 일일극 패턴의 드라마를 시즌물로 엮어내는 솜씨를 보여준다. 시즌이 전개될수록 급히 먹은 밥이 체한 듯한 <펜트하우스>의 김순옥 작가와 달리 피비 작가는 시즌1에서 이미 모든 설정들을 꼼꼼하게 다져넣는 여유를 보인다. 그리고 꾹꾹 눌린 엉킨 갈등의 실타래를 시즌2에서 풀어낸다. 물론 피비 작가의 드라마는 여전히 보약보다는 독약 같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인간이 지닌 지독한 양면성을 이렇게 정극의 방식에 엇박을 섞어가며 흥미롭게 풀어내는 드라마 작가도 흔치는 않다.

결국 <보쌈>, <마인>, <결사곡>은 흔한 정극의 드라마가 얼마나 흥미롭게 변주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례이다. 조선시대와 재벌가와 남녀상열지사만 가지고도 이만큼의 재미와 시청률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그렇다, 때론 평범한 사신이나 구미호가 속내를 도통 알 수 없는 인간들보다 더 시시할 때가 있다. 웹툰 같은 캐릭터들이 배우들이 연기하는 드라마로 오려면 좀 더 인간의 구정물을 뒤집어쓰고 나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N, tvN, TV조선]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