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 김서형과 박혁권, 성소수자에 이토록 쿨한 면모라니
‘마인’ 제작진이 김서형의 성소수자 설정에 담은 진심

[엔터미디어=정덕현] “나 성소수자예요. 잊지 못하는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여자예요. 미안해요. 미리 얘기하지 않은 거. 원하면 이혼해줄게요. 하지만 지금은 시기적으로 좋지 않아요. 내가 한지용(이현욱)을 끌어내릴 때까지 기다려줘요.” 그 말을 꺼내는 일이 어찌 쉬웠을까. tvN 토일드라마 <마인>에서 정서현(김서형)은 남편 한진호(박혁권)에게 오랜만의 외식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커밍아웃을 한다.

물론 그 조심스러움은 성소수자라는 사실에 대해 정서현이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해 하는 조심스러움이 아니다. 그건 부부로 살아오며 그다지 부부의 정을 나눠본 적도 없지만, 최소한 부부라는 관계로 묶여있는 한진호에 대한 예의와 배려 때문에 나오는 조심스러움이다. 정서현은 그 어느 것에도 부끄럽거나 잘못했다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한진호를 속이고 결혼했다는 사실만큼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한진호의 반응이 의외다. “결혼 생활 내내 그 여자 만났어?” “나랑 살면서 그 여자랑 잤어?”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런 적이 없다는 정서현의 말에 “그럼 불륜은 아니라는 소리네.”라고 툭 내뱉는다. 워낙 정서현에 대한 애틋한 부부의 정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일 수 있지만, 한진호는 놀랍게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아내가 성소수자였다는 사실에 놀라기보다 불륜을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러면서 (불륜을 저질러 왔던) 자신보다 낫다고 툭 던진다.

정서현 역시 남편에 대한 정은 그다지 없지만, 적어도 예의를 지키려 한다. 이것이 이혼사유가 되기에 충분하며 그래서 한진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는 재차 남편에게 그를 속인 것에 대해 사과하면서 “내 정체성을 그 누구한테도 사과할 이유는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마인>의 이 장면은 사실 그간 이 드라마가 정서현이라는 인물을 다루면서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어떤 굉장한 사건(?)으로 다룸으로써 혹여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일부의 의견들을 일거에 뒤집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서현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한지용이 알게 되고 이를 약점으로 이용하려 하는 이야기가 전개된 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편견을 드러내려던 것이었다는 것이었다. 실상은 정서현이 한진호에게 하는 커밍아웃과 이를 세상 쿨하게 받아들이는 남편의 모습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성소수자에 갖는 진심이라는 것.

그렇게 그의 정체성을 속이고 결혼한 사실에 대해 사과하는 정서현에게 한진호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 재벌가의 현실을 공감해준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재차 말하는 정서현에게 “살면서” 그런 소리를 다 듣는 것에 대해 “프레쉬하다”고 말한다. 떳떳하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고 시작하고 싶다는 정서현은 자신이 대표이사 자리에 앉아 한지용을 밀어내겠다고 말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한진호는 의외로 쿨하게 답한다.

“당신이 해. 나도 밀어줄게. 근데 남편인 내가 상관없다는데 그걸 꼭 세상에 알려야겠어? 대표이사 능력이랑 당신 성정체성이랑 무슨 상관이야? 나 이혼은 안 할 거야. 쪽팔리잖아. 먹자. 한번 잘 먹어보자. 모처럼 부부 외식인데.” 세상 쿨하게 커밍아웃을 받아주고, 성정체성을 이용해 정서현을 무너뜨리고 대표이사 자리에 앉으려는 한지용을 염두에 두고 대표이사 능력과 성정체성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것. 시청자들에게 이 장면이 심지어 감동적으로까지 느껴지게 된 건, 거기에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박살내는 이 드라마의 속시원한 진심이 담겨 있어서다.

김서형과 이보영의 불꽃 튀는 열연 속에 강한 자극과 더불어 철학적 성찰을 던지는 수작 ‘마인’에 대해 엔터미디어 채널 싸우나 정덕현 평론가가 헐크지수를 매겼습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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