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시장이 되다’, 백종원의 상상초월 지역 살리기 프로젝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진짜 시장 자리라도 줘야 되는 거 아녀? 지금 예산시장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슬슬 돌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주말에 잠깐 손님들이 왔다가 주중이면 텅텅 비던 시장에 인파가 몰려들고 있어서다. 백종원이 시장을 리모델링하고 점포 5곳을 오픈한 후 보름 동안 약 3만 명이 시장을 찾았다고 한다. 특히 지난 설에는 가게마다 긴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백종원이 연 음식점들은 일찌감치 재료 소진으로 문을 닫기도 했다. 예산시장 사람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 변화를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실 백종원이 유튜브 개인채널을 통해 ‘님아 그 시장을 가오’라는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도 tvN <백패커>를 방송하고 있었지만, 백종원은 개인방송에 공을 들이는 티가 역력했다. 방송가에서도 블루칩으로 불리는 백종원은 왜 굳이 개인방송에 이런 공을 들였을까. 그건 기성 방송사들에서 하던 프로그램들을 통해 그가 느꼈던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일 터였다. 특히 큰 성공을 거뒀던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은 매주 반복을 거듭하면서 일종의 패턴이 만들어졌고, ‘빌런’ 논란이 생겨나는 등 의도에서 벗어난 결과들이 나오기도 했다.

또 <맛남의 광장> 같은 프로그램도 지역 특산물을 활성화하기 위해 해당 재료들을 갖고 레시피를 만들어 맛을 선보이는 야심찬 기획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상당한 방향 수정이 불가피했다. 당시 대형 유통업체와도 연결해 창고에 쌓여 있던 지역 특산물들을 도시 소비자들이 소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선한 영향력을 만들기도 했지만 결국 프로그램은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백종원이 유튜브 개인채널을 선택한 건, 기성 방송사들의 프로그램들이 갖는 한계점을 넘고 싶어서였다. 그는 이미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제주도 금악마을’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경제 살리기에 대한 관심을 내보인 바 있다. 양돈장으로 인한 악취 때문에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금악마을에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과 함께 몇몇 음식점들을 열어 지역을 활성화하고자 했던 프로젝트. 야심차게 시도됐지만 이 프로젝트가 미완에 이른 건, 지역 살리기와 더불어 방송 프로그램도 살아야 하는 방송사의 입장이 겹쳐지면서였다. 하지만 개인채널이라면 말이 다르다. 백종원이 원하는 만큼(물론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도전할 수 있고 그걸 끝까지 영상으로 담아내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백종원 시장이 되다’라는 코너가 시리즈로 올라왔다. 백종원이 시장 출마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실은 자신의 고향인 예산에서 시장 살리기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어느 날 갑자기’라고 했지만, 실상은 이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하기 전단계로서 ‘님아 그 시장을 가오’를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전국의 시장들을 돌아보며 그곳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점점 찾는 이들이 사라져 황량해져가는 시장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예산시장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슬쩍 보여준 건 방탄소년단 진이 백종원과 함께 시도했던 ‘취중진담’이라는 전통주 만들기 영상에서였다. 진이 백종원이 만든 ‘백걸리’를 마시다가 생각난 듯 전화를 해 전통주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하는데, 슬쩍 백종원이 전화를 받는 곳의 배경으로 정육점이 보였다. 다분히 의도된 듯(?) 보이는 그 장면에서 백종원은 “지역 살리기”를 위해 지방에 내려와 있고 정육점을 한다고 말했고, 거기에 진은 농담으로 “고기 공짜로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조금 넘게 지난 후 ‘백종원 시장이 되다’는 백종원의 개인채널을 통해 소개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에 대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세세하게 그 과정을 설명하고 예산군과 함께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선투자를 했던 사실도 밝혔다. 단순히 음식점 몇 개 오픈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시장 전체의 이미지와 콘셉트를 새롭게 심는 대규모 공사가 이어졌다. 너무 밝은 천장을 일부러 가려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고, 들어가는 입구에 장터 마당 같은 공간을 만들어 시장에서 사온 고기 등을 그 곳에서 둘러앉아 구워먹을 수 있게 했다. 야시장 같은 분위기가 생겼다.

반대하는 시장 상인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전통시장을 오래도록 해온 상인들은 시장을 어둡게 하는 것에 반대했다. 물건이 잘 보여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백종원은 만일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면 모든 손실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공언했고, 단지 식재료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걸 이용해 음식으로 파는 것으로 더 나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백종원 시장이 되다’는 이제 3화까지 공개되었지만, 벌써부터 언론에서 예산시장에 나타난 기적 같은 변화를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인파가 길게 늘어선 음식점 사진이 올라왔고, 서서히 관광객들이 몰려와 시장만이 아닌 인근 상권까지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기사들이 덧붙여졌다. 나아가 지역 청년들이 아이디어들을 모아 지역을 살리는 이 프로젝트와 함께 하려는 활력이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더해졌다.

‘백종원 시장이 되다’는 백종원이 예산시장을 통해 보여주는 지역 살리기 프로젝트이지만, 동시에 콘텐츠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콘텐츠가 콘텐츠에 머물지 않고 실제 현실을 바꾸는 그 변화는 이미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일부 보인 바 있지만, ‘백종원 시장이 되다’는 한 시장을 변화시켜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차원이 다른 프로젝트다. 그 과정을 온전히 담았다는 건 이 콘텐츠가 가진 가치를 새롭게 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소멸 위기를 맞은 지역에 하나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아카이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의 타 지역에서도 롤 모델 삼을 만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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