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커’, 백종원 브랜드는 다시 흥행 보증수표로 돌아올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1년은 백종원이 본격적으로 예능을 시작한 이래 가장 뼈아픈 한 해였다. 무려 4개가 넘는 신규 프로그램을 각기 다른 채널에서 런칭하면서 지상파, 케이블, OTT, 유튜브를 가리지 않고 백종원 이름을 단 콘텐츠를 일주일에 7편이나 쏟아냈지만, 신규 프로그램의 반응은 하나같이 소소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2월 29일을 끝으로 2010년대 중후반 가장 빛나던 예능 프로그램이자 백종원 브랜드의 핵심 콘텐츠인 SBS <골목식당>이 지속되는 시청률 하락 속에 초라한 마침표를 찍었다.
백종원은 흥행 보증수표였다. 요리라는 원천 콘텐츠와 진정성이 바탕이 된 인간적 매력으로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하고 사랑받았다. 게다가 그의 콘텐츠는 방송을 넘어선 영향력이 있었다. 집밥을 살림이 아닌 문화의 영역으로 이끌어냈고, 자신의 인지도와 노하우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우리나라 요식업계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의미와 재미가 함께하면서 유통업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대중의 지지와 환호는 더욱 높아졌다. 그러다 지난해 처음으로 삐끗했다. 새롭게 뽑아 든 한식의 세계화는 시청자들의 피부로 와 닿지 않는 데다 공급과잉까지 겹쳐 시청률이나 영향력, 새로움 모든 면에서 기대에 못 미치고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잠시 쉬어가는가 싶더니, 지난달 다시 백종원의 이름을 내건 또 한편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tvN <백패커>는 의뢰서를 받아 든 극한의 출장 요리단(백종원, 오대환, 안보현, 딘딘)이 요리할 짐을 짊어지고, 의뢰자를 찾아가 즉석 출장 요리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백팩을 메고 도시를 벗어나기는 하지만 성씨 ‘백’과 영문 bag의 한글표기 ‘백’이 동음이의어라는 데서 착안한 것이지 유행하는 백패킹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 2회에서는 모든 재료를 장비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곤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이미 대부분의 식재료는 제작진이 미리 구비해놓았고, 주방과 조리설비는 아웃도어 콘셉트와는 무관하게 잘 갖춰져 있다.
<백패커>의 가장 흥미롭고 새로운 지점은 백종원이 너무나도 익숙한 예능 기획 안으로 들어왔다는 데 있다. 그간 백종원 예능은 캐스팅이 곧 기획이었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가 곧 기획이자 볼거리였으며, 메시지는 재미에 가치를 더했다. 그런데 이번엔 백종원이 아니라도 이미 존재해온, 아니 너무나도 많이 봐온 팝업스토어 예능으로 돌아왔다.

특유의 푸근한 인간적 매력과 안 되는 게 없는 마술사 같은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도움을 주는 목적을 내세운 콘텐츠들과 달리 1회에서 딘딘과 나눈 대화에서 백종원이 말했듯 <백패커>는 정말 말 그대로 방송을 위한 예능이다. 백팩이란 장치를 더하고, 출장이란 변주를 가하긴 했으나 연예인으로 구성된 초보 주방 일꾼을 데리고 단시간에 주문을 쳐내는 쿡방 미션은 굳이 예를 들자면 이연복 셰프의 tvN <현지에서 먹힐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함께하는 선수들도 완전히 물갈이 됐다. 안보현과 오대환, 딘딘 모두 백종원과 각기 다른 프로그램에서 짧은 연을 맺긴 했지만 뜻밖의 조합이다. 심지어 이 셋은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난 사이다. 그런데 조합은 신선하지만 배역은 낯익다. 딘딘을 링커 역할을 하는 예능 선수로 쓰고, 안보현은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성장 캐릭터, 오대환은 듬직하고 성실한 일꾼이라는 포지션이 1회부터 갖춰진다. 어디선가 본듯한 설정은 MBC <백파더>에서 노라조가 고생했던 것처럼 어떻게든 새로운 변주를 추구하던 백종원 브랜드에는 없던 기류 변화다.

특유의 푸근한 리더십 아래로 똘똘 뭉쳐서 하나의 팀으로 성장하는 서사는 너무나 뻔하지만 익숙한 맛이 주는 재미가 있다. 요식업계의 왕답게 백종원은 장사할 때 가장 빛나기 때문이다. 다른 출연자들이 난관에 봉착하면 언제든 무슨 일이든 길을 찾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인다. 탄 기름에다 물을 부어 온도를 낮추고, 실패한 감자튀김은 크로켓으로 되살린다. 준비한 음식이 부족한 위기의 순간에 주변의 남은 재료를 스캔해서 어떻게든 뭐라도 만들어낸다.
그래서 <백패커>는 재정비 차원의 숨고르기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져서 느끼지 못한 백종원의 매력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백종원이 갖는 인간적 매력은 푸근함만이 아니라 결과가 훌륭하다는 데서 완성된다. 짠맛을 단맛으로 잡아내는 것처럼, 식상함을 상쇄하기 위해 익숙한 맛의 클리셰를 가져왔고 그 결과 딘딘은 ‘멋있다’ ‘섹시하다’고 평했다.

<백패커>는 많이 봐온 이야기인데다 음식 하는 과정 자체가 딱히 새롭지 않다보니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다. 그런데 백종원이란 너무나도 친숙한 캐릭터가 익숙한 그림 속에서,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펼치면서 백종원 특유의 장점과 매력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어떤 형태, 메시지, 구성이든 백종원과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은 백종원 콘텐츠의 핵심 정서다.
실제로 백종원은 주어진 미션을 늘 놀랍도록 뛰어난 노하우와 감각으로 해결해왔다. <백패커>는 바로 이런 백종원의 특장점을 다시 한 번 내세운 플레이팅이다. <백패커>는 이런 환기가 주춤하고 있는 백종원 브랜드에 어떤 전환점으로 작용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과연 다시 터닝포인트가 될지, 조금은 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간으로 남을지, 혹은 과소비의 후유증이 이어질지 가장 영민한 방송인 백종원의 선택에 따를 결과가 궁금해진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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