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딘도 홀딱 반한 백종원의 척척 즉흥 요리(‘백패커’)

[엔터미디어=정덕현] 산사에서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는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지만 tvN 예능 <백패커>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돼지고기를 쓸 수도 없고, 오신채에 해당하는 양파도 넣을 수 없는 상황. 고기와 양파가 빠진 짜장면이 짜장면일까? 게다가 역시 고기 없이 만든 탕수육이라니.
<백패커>의 두 번째 출장지는 변산의 월명암으로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산 위에 있는 절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찾아오는 불자님들과 내방객들에게 점심 공양을 의뢰받은 것. 당연히 제약들이 많다. 먼저 산사라 식재료가 없거나 해도 사러 내려갔다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또 고기나 오신채 같은 재료를 못 쓴다. 그래서 애초 계획을 잘 짜서 산 위까지 식재료들을 배낭에 지고 올라가야 하고, 그것으로 제한된 시간 안에 요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비건 중식이지만, 두부를 으깨 한번 튀김으로써 고기 식감을 내고 양파 대신 양배추로 고소한 맛을 낸다. 게다가 탕수육은 두부와 전분, 표고버섯 가루 등을 반죽해 꿔바로우식으로 튀겨냄으로써 그 맛을 냈다. 여기에 채식으로 만든 만두까지 곁들여 점심 공양을 위한 3종세트가 구성됐다.
미션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산사에서 그걸 만드는 광경 자체가 색다르기도 했지만, 그보다 <백패커>가 흥미진진해진 건 예상치 못한 변수들과 그에 백종원이 즉흥적으로 대처해가는 과정이 담긴 것이었다. 탕수육을 튀기는 과정에서 기름 자체가 너무 열이 올라 금세 타버리는 위기상황이 발생하자, 백종원은 기름을 식히기 위해 전분 반죽을 넣어 온도를 내리고 또 물을 조금씩 부어 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잠시 기름을 살리는데 신경을 쓰다가 딘딘에게 맡겨버린 짜장소스가 바닥에서 타버리자 그것 역시 하나씩 탄 부분을 골라낸 후 ‘심폐소생’을 해내기도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애초 스님이 2,30명 정도 올 거로 예상했던 손님들(?)이 더 많이 몰려 와 음식이 부족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시간에 맞춰 요리를 내놓고 남은 재료를 가지고 즉석에서 백종원은 ‘짜장범벅’을 만들어내 내놨다. 부처님 오신 날의 취지에 맞게 모든 분들이 나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
그리고 마지막까지 백종원은 즉흥 요리로 ‘발우고양’을 하듯 남은 것들을 통통 털어 배고파하는 출연자들을 위한 두부고기 짜장밥을 즉석에서 제공했다. 그 모습에 딘딘은 “멋있다”며 “백패커가 아니라 섹시백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툭툭 털어 뚝딱뚝딱 해내는 백종원의 요리 모습이 섹시하게 느껴졌다는 것.

필자에게 <백패커>는 마치 <맥가이버>의 요리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 보통의 평범한 상황에서의 요리가 아니라,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 때 그 때 변수가 생겨도 즉흥적으로 맞춰가는 요리. 게다가 다음 회 예고를 보면 이제 바다 한 가운데 배 위에서 하는 요리를 선보인다. 일종의 ‘극한요리’라고나 할까.
쿡방이나 먹방은 이제 너무 많이 나와서 더 이상 새로운 게 있을까 싶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백패커>도 첫 방송에서는 어딘가 도시 요리를 먹기 힘든 오지를 찾아가 요리를 해주는 식의 과거 <1박2일>에서도 시도했던 방식이 아닌가 싶은 느낌을 줬다. 하지만 이번 편 등산을 하다시피 식재료를 바리바리 배낭에 짊어지고 올라고 산사에서 중식을 선보이는 모습은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것이 좀더 ‘날 것’에 가깝다는 걸 보여줬다.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보여줄 것인지 미리 예측할 수는 없어도, 백종원이 하는 요리 서바이벌 같은 느낌이랄까. 갑작스레 생겨나는 위기와 돌발 상황 속에서 즉흥적으로 그 곳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 대처해가는 모습은 맥가이버식의 재미요소를 만들어낸다. <백패커>라 쓰고 ‘요리 백가이버’로 읽히는 이 포인트를 잘 살려낸다면 색다른 백종원식의 쿡방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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