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의 리마인드, 장항준의 리바운드(‘아주 사적인 동남아’)
‘아주 사적인 동남아’, 너무 사적이라 보게 되는 찐 여행기

[엔터미디어=정덕현] “시청자는 안중에도 두지 마. 오로지 너의 행복. 오로지 남희의 행복. 도현이의 행복. 성균이의 행복, 항준이 행복, 이렇게 해야 돼.” tvN 예능 <아주 사적인 동남아>에서 여행 떠나기 전 사전 미팅 자리에서 장항준은 이 여행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김남희가 이 여행의 목적이 무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지극히 사적인 행복을 위한 동남아 여행. 아마도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아주 사적인 동남아>일 게다. 그래서 방송으로 전파를 탈 그 여행의 목적이 불순(?)해 보이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사실 사적이지 않은 여행이 있을까 싶다. 거꾸로 말해 공적인 것이 여행이 될 수 있을까. 거기에 진짜 여행의 맛이 담길 수 있을까.

이선균이 제안한 여행을 장항준이 받아들이고 여기에 김도현과 김남희가 합류했다. 이선균의 ‘사적인 목적’은 한 마디로 말해 ‘리마인드’다. 19년 전 그가 처음 해외여행을 간 나라가 바로 이들이 가게 된 캄보디아다. 그는 당시 영화 <알 포인트>를 찍으며 머물렀던 곳. 군대보다 더 힘들었다는 그곳에서 집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어야(?)’ 가능했다고 한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그리워지기 마련. 이선균은 19년 전의 기억을 거슬러 추억여행을 하고 싶은 거였다.

장항준은 동남아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고 김남희는 동남아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이 여행은 전적으로 캄보디아에 대한 사적인 목적을 가진 이선균에게 달려 있다 싶지만, 막상 그곳에 내린 그는 너무나 달라진 풍경에 당황해한다. 도착하자마자 앙코르와트 안에 있는 숙소를 가기 위해 입장권을 사야 하는 미션이 떨어졌는데, 이를 제대로 수행해내게 한 건 이들 중 유일하게 프로계획러에 캠핑 마니아인 김도현이었다. 유창한 영어와 남다른 실행력 그리고 준비성으로 그는 이들의 다소 허술한 구석들을 채워주었다.

여행의 맛이라는 것이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아무런 목적도 없어 보였고 오히려 곧 개봉할 자신의 영화 <리바운드>를 때때로 리마인드시키는 걸로 웃음을 주곤 했던 장항준이 2회에서 던진 말은 그는 물론이고 이 여행이 왜 재미있는가를 알게 해줬다. “진짜 좋았던 시절엔 못 느꼈던 것 같아. 어느 순간에 깨달았어. 매사에 즐기지 않으면 행복이 와도 온 줄 모른다.”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 하고 웃는 장항준이 가진 삶에 대한 태도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 여행이 가진 흥미로움의 실체이기도 했다. 밤새 닭 울음소리에 잠을 설쳤지만 아침에 일어나 낯선 곳을 산책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나, 스쿠터를 타고 앙코르와트 사원을 찾아가 한국어가 유창한 가이드를 만나 농담을 하고, 사원 곳곳을 다니며 그 신비로움에 빠져들고, 너무 애써 힘들게 다 돌아보거나 사진을 찍으려 하지도 않고 배가 고프면 현지 음식점을 찾아가 그곳의 음식을 먹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남다르게 다가온 건 그 순간들을 즐기려는 자세 때문이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함께 연기를 했던 김도현과 김남희가 자신들의 ‘얼굴 타령’을 늘어놓으며 “항상 연기를 열심히 잘 해줘야 한다”고 억울함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툭툭을 타고 시내로 가는 길에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애들이 보고 싶다고 이선균이 말하는 장면도 너무 사적인 이야기들이라 오히려 진심이 느껴진다.

툭툭을 타고 이동 중에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냐는 이선균의 질문에 장항준은 그가 걸어왔던 길들을 죽 늘어놓았다. 영화연출부 조감독으로 시작해 방송국 예능 FD를 하다가 예능 작가, 시나리오 작가를 하고 영화감독이 됐다는 것. 하지만 거기서 마지막에 빼놓지 않은 건 이 말이었다. “그리고 예능인이 되었지.” 흔히 영화감독이라면 과거 예능 FD 시절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테지만, 그는 현재 예능인이 됐다는 걸 즐겁게 꺼내놓는다. 어느 위치, 어떤 역할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자세를 드러낸 것.

<아주 사적인 동남아>는 그래서 이선균의 리마인드 여행이지만 동시에 장항준의 ‘리바운드’ 같은 삶의 태도가 느껴지는 여행이기도 하다. 매순간을 즐길 수 있는 삶의 태도는 어쩌면 바로 골로 이어지지 않는 삶이라 해도 다시 골을 잡아 다음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 수 있어서다. 그러고 보면 이선균이 19년 전 신인시절의 그 어려웠던 시기를 넘어 이제 다시 그곳을 찾아 그때를 추억하는 이 여행 역시 때론 좌절하면서도 리바운드를 계속 해온 배우의 길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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