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공자’, 김선호의 가능성 끌어낸 딱 어울리는 캐릭터 입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김선호가 박훈정 감독의 신작영화 <귀공자>로 돌아왔다. 2021년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큰 인기를 끌었지만, 곧 불거져 나온 사생활 논란으로 고개를 숙였던 그였다. 논란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히 남았지만, 적어도 <귀공자>로 돌아온 김선호는 제대로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난 느낌이다. 웃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광기 같은 것이, 선악을 훌쩍 뛰어넘어 마치 아이 같은 천진함으로 다가오는 그런 서늘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인물이다.

영화 <귀공자>는 필리핀인과 한국인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코피노’라 불리는 마르코(강태주)를 두고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재벌2세 한이사(김강우), 미스터리한 인물 윤주(고아라) 그리고 귀공자(김선호)가 벌이는 대결을 담고 있다. 돈이 없이 수술도 못한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불법 복싱시합에 나가 생계를 이어가는 마르코에게 어느 날 그가 그토록 찾고 있던 한국인 아버지가 보냈다는 변호사가 찾아온다. 다짜고짜 어머니가 수술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한국행을 강권하는 그 변호사를 따라 마르코는 한국에 들어오는데 그의 뒤에는 귀공자(김선호)라는 청부업자가 따라붙는다.

마르코를 데려온 이는 그의 형이라는 재벌2세 한이사(김강우)다. 그는 무슨 목적 때문인지 마르코를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오려 하는데, 이를 막으려는 윤주가 등장하고, 그들이 치열한 추격전을 벌일 때 귀공자 역시 마르코를 좇는다. 과연 이들이 무슨 목적을 갖고 이렇게 대결하는지는 후에 밝혀지지만, 사실 그런 이유보다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끌고 가는 건 다름 아닌 귀공자라는 독특한 프로 살인청부업자의 캐릭터다.

귀공자라 불리는 닉네임에 걸맞게 늘 말쑥한 양복차림을 하고 최고급 승용차를 모는 그는 치열한 추격을 하다가도 비가 오면 빗속으로 뛰어드는 걸 주저한다. 엄청나게 높은 곳에서도 쉽게 뛰어내리고 도망치는 마르코를 집 옥상을 넘어 다니며 추격하는 ‘야마카시’ 능력을 보이는 이 인물은 권총은 물론이고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살상무기가 되는 무시무시한 살인자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아이 같은 천진함이 묻어나 어딘가 ‘광인’ 같은 느낌을 준다.

엄청나게 체력소모가 심한 액션 신처럼 보이지만, 늘 해맑게 웃으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얼굴을 보여주는 이 귀공자라는 인물은 그래서 관객에게 살벌함과 시원함 그러면서도 유쾌함과 코믹함까지 이질적인 감정들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귀공자>라는 작품은 제목에도 담겨 있듯이 사실상 이 캐릭터의 매력이 중심이 되는데, 거기에는 김선호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하나의 오락물로서 액션과 느와르가 만들어내는 짜릿한 쾌감을 주는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박훈정 감독이 숨겨놓은 풍자적인 시선도 담겨있다. 작중에서 귀공자는 살인청부업자의 닉네임이지만, 이 영화 속에는 재벌2세 같은 진짜 귀공자의 조건을 가진 인물 한이사가 등장한다. 또 마르코 역시 회장의 아들이자 한이사의 배다른 동생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귀공자의 조건을 가진 인물이다. 즉 <귀공자>에서 귀공자는 살인청부업자 하나가 아니라 세 명이 되는 셈이다.

흔히 귀공자라고 하면 태생적으로 그런 핏줄과 환경을 타고난 인물로서 부유하면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할 것 같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영화는 이런 선입견을 철저히 부숴버린다. 귀공자처럼 생각됐던 인물이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전혀 그런 배경과 상관없는 인물이 오히려 귀공자처럼 보이는 반전이 주는 풍자적 쾌감이 밑그림으로 깔려 있는 것.

일단 <귀공자>를 만난 김선호의 연기는 합격점을 넘어 독보적이다. 다른 배우가 이런 역할을 이렇게 잘 소화하기 어렵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다. 다만 두 가지가 아쉬움 혹은 우려로 남는다. 하나는 좋은 캐릭터를 세웠고 액션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끝부분까지 가서야 비로소 서사의 묘미가 생겨나는 아쉬움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토록 좋은 역할을 잘 소화해낸 김선호에게 여전히 드리워 있는 논란의 그림자다. 과연 김선호는 이 <귀공자>를 통해 부활할 수 있을까.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기에 그 귀추가 더욱 궁금해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귀공자>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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