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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박훈정 감독이 시대적 요청에 부응했다는 건
기사입력 :[ 2018-07-06 14:40 ]
‘마녀’, 2편에서는 이 두 가지를 꼭 유의해주기 바란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마녀>는 박훈정 감독의 신작으로, 신예 김다미와 조민수가 주연을 맡은 액션물이다. 영화는 인트로부터 생체실험에 대한 자료 화면을 주르륵 보여준다. 뮤턴트(돌연변이) 액션물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시도된 적이 거의 없던 장르인데다 시리즈를 암시하는 영문 제목은 새로운 연작의 출발을 예고한다.



◆ <힘센 여자 도봉순>, <경성학교>, <악녀>의 결합?

영화 <마녀>는 의문의 장소에서 한 아이가 도망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무참한 살육이 벌어진 듯 한 건물에서 8살 소녀가 탈출하고, 아이는 그 후 목장을 하는 노부부의 딸 자윤(김다미)로 살아간다. 십년 뒤 평범한 고등학생이 된 자윤은 어려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다. 그를 TV에서 본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자윤 앞에 나타나고, 결국 집까지 찾아온 이들로 인해 자윤은 큰 혼란과 위협을 느낀다.

영화는 전반부의 느린 전개를 이어나가다, 중반 이후 폭풍 서사와 액션을 펼쳐 보인다. 자윤이 잊고 있던 몸의 기억을 소환하고, 생체실험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낸 존재와 대적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롱키스 굿나잇>이나 <니키타> 같은 외국의 여성 원톱의 액션 영화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최근의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깔아놓은 포석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작고 여린 여자가 괴력으로 상대를 무찌르는데서 오는 쾌감을 지닌 <힘센 여자 도봉순>, 생체실험으로 길러진 소녀와 미친 여성과학자의 대결을 그린 <경성학교>, 인간병기가 된 여성이 펼치는 잔혹하고 처절한 액션을 보여주는 <악녀>가 가장 대중적인 접점에서 만나 <마녀>가 된 듯하다.



<마녀>는 주인공 자윤은 물론이고, 악당인 닥터 백(조민수), 친구 명희(고민시), 또 다른 여성병기 긴머리(다은) 등 강렬한 여성 캐릭터가 주축을 이룬다. 이런 영화가 박훈정 감독의 작품이라니, 다소 의외다. <신세계><대호><브이아이피> 등 주로 남성들 사이의 강렬한 액션과 흥건한 정념을 그려온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녀>가 <브이아이피> 개봉 직후 쏟아진 ‘여혐’ 비판이 만들어낸 조악한 반명제는 아니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신인여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운 슈퍼히어로물의 기획은 <대호> 촬영 전부터 준비됐다.

다만 ‘여혐’ 비판이 <마녀>의 만듦새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인 듯하다. 애초에 남성이었던 악당 캐릭터가 여성으로 바뀌었으며, 영화 전체가 여성 캐릭터들로 가득 차 있음에도 이들이 여성이라는 점이 특별한 서사를 만들지 않는다. 이는 <악녀>나 <미옥>의 주인공들이 모성애를 주된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것과 차별되는 대목이다. 자윤이 여성이라는 점이 의식되는 순간은 “이X 저X", “씨발X" 등의 욕이 등장할 때뿐이다.



◆ 영웅적이고 윤리적인 주체

영화 <마녀>의 서사는 독창적이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보았던 슈퍼히어로물의 번안에 가깝다. 사실 완전히 독창적인 서사는 굳이 필요치 않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극영화로 번안되었을 때, 어떤 효과와 질감을 지니는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녀 슈퍼히어로물의 전복성이 시대적으로 잘 조응되며, 이질감이 크지 않다. 이는 그동안 성애적인 대상이자 무력한 존재로 취급되었던 소녀를 탈성애적이고 강인한 주체로 보고자하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다.

또한 <힘센 여자 도봉순><경성학교><악녀> 등을 통해 괴력을 지닌 소녀, 생체실험, 여성액션 등에 대한 생소함이 이미 상쇄되어 있다. 그 결과 영화 중반까지 낯선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듯 보였던 소녀가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여 단숨에 상황을 역전시킬 때 상당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마녀>의 자윤이 여느 소녀전사보다 빛나는 대목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점이다. 가령 우연한 계기로 굉장한 힘을 갖게 되거나,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살다가 자신의 정체를 깨닫게 된다거나, 자신은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전사의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니다. 자윤은 한 번도 자신이 누구인지 잊은 적이 없으며, 매순간 자신이 선택한데로 살아간다. 그는 불과 8살에 시설을 탈출한다. 그때까지 자신이 접한 세계의 전부였을 것이며 최고의 능력자로 인정받으며 살았던 그곳을 박차고 나간 것인데, 이는 굉장한 주체적 결단이다. 만년 2등이던 귀공자(최우식)는 자윤의 탁월함을 부러워하다가 탈출한 그를 잡으러 쫓아갔었다. “너는 진짜 회사에게 고마워해야 돼”라 말하는 귀공자는 탁월한 능력과 경쟁이라는 우생학의 논리를 내면화했을 뿐 자기 존재에 관한 성찰을 갖지 못한다. 반면 자윤은 실험동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위해 도망친다.

자윤이 목장 노부부의 딸로 살게 된 것도 면밀한 그의 선택이었고, 본성에 심어진 힘과 공격성을 자제해가며 평범한 소녀로 살아가는 과정도 그의 선택이었다. 스스로 자기 신체의 결함을 탐구하고, 죽음에 맞서 모험을 감행한 것도 그의 결단이었다. 자윤은 자신을 찾아온 귀공자에게 당혹감을 표할 때조차 놀라운 자제력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는 처절한 살육을 마친 뒤, 자기 운명을 책임지기 위해 마지막 길을 나선다. 그는 힘과 의지의 측면에서도 영웅의 면모를 지니지만, 자기배려와 윤리의 측면에서도 영웅의 면모를 지닌다. 살인병기로 태어났고 길러졌지만, 이를 거부한 채 욕망을 제어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화이>의 뒤집힌 버전, 혹은 <옥자>의 장르적 변환

자윤의 윤리적인 고뇌는 <화이>의 소년을 생각나게 한다. 화이는 나쁜 아버지들에 의해 범죄자로 키워졌지만, 자신이 선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났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을 길러준 나쁜 아버지들을 죽이고, 자신이 속해있던 세계를 부수고 나온다. 그리고 그 모든 악의 근원인 인물을 처단함으로써, 살부의 서사를 완성한다. <마녀>의 자윤은 자신의 정체는 물론이고 자신이 속한 세계의 원리도 일찌감치 알아버린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탈출하여 다른 삶을 살고자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닥쳐오는 죽음을 막기 위해, 그는 자신을 건 도박을 감행하며 자신을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 근원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 <마녀>는 에필로그처럼 배치된 결말을 통해, 2부를 예고한다. 조민수의 1인 2역이 암시하는 것은 흥미롭다. 1편의 서사보다 더욱 근원적인 곳에 또 다른 조민수가 존재하는 것이다. 즉 두 명의 쌍둥이 자매가 뮤턴트들을 탄생시키고 각자 다른 길을 간 셈인데, 이는 페미니즘의 측면에서나 퀴어리즘의 측면에서나 시사점을 갖는다. 1편에서 명희와 자윤의 우정이 특별하게 강조된 것도 곱씹을 만하다. 명희는 자윤이 벌이는 살육을 보고도 그가 친구임을 부인하지 않으며 자윤에게 공포심을 갖지 않는다. 영화에서 자윤을 해치려하다가 나가떨어지는 악당이 미스터 최(박희순)와 귀공자인 것도 적절한 배치이다. 이들은 자윤보다 열등한 뮤턴트들로 ‘아저씨’이거나 깐죽거리는 ‘오빠’의 형상을 지닌다. 여리고 겁 많아 보이는 소녀가 ‘아저씨’와 ‘오빠’를 때려눕히고, 자신의 근원과 대적하기 위해 운명의 길을 떠나는 결말은 호쾌하다.



영화 <옥자>에는 산골에서 슈퍼돼지를 기르며 살아가던 미자가 비범한 용기와 총기를 발휘하여 미국 본사로 찾아가 옥자를 만들어낸 1인 2역의 자매들과 담판을 짓고 옥자를 데려온다. 시골 목장에서 살던 자윤도 미국 본사로 찾아가 자신을 만들어낸 1인 2역의 자매와 담판을 짓고 자기 삶을 찾아올 수 있을까. 프리퀄에 해당되는 1편보다 본격적인 서사가 펼쳐질 2편이 더욱 기대된다.

다만 2편에서는 두 가지를 유의해주기 바란다. 첫째, 액션 영화답지 않게 너무 대사가 많은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 둘째, 1편의 전반부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던 것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1편의 성공으로 여성 원톱의 액션 영화가 시리즈로 이어나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마녀>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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