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과 ‘낙원의 밤’, 호불호 갈리는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과 이용주 감독의 <서복>은 여러모로 비교대상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고, 각각 넷플릭스와 티빙이라는 OTT를 통해서 서비스 됐기 때문이다. 물론 두 영화의 서비스 방식은 사뭇 다르다. <낙원의 밤>은 넷플릭스를 통해 독점 방영됐지만, <서복>은 영화관과 동시에 티빙에서 방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두 작품의 이런 서비스 방식은 모두 코로나19 시국이 가진 특수한 상황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는 극장 상영을 목표로 만들어진 영화들의 OTT행을 본격화하게 만들었다. <서복>의 경우는 어떤 의미에서는 티빙이 자체 OTT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공격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극장과 동시 개봉을 선택한 면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두 작품은 또 한 가지가 유사하다. 그것은 애초 영화의 겉면으로 채용하고 있는 장르가 각각 있지만, 실상 영화는 그 장르가 주는 쾌감에서 슬쩍 벗어나 삶에 대한 은유나 메시지를 담으려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낙원의 밤>은 박훈정 감독 특유의 느와르 장르를 가져왔지만, 의외로 멜로와 휴먼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 <서복>도 마찬가지다.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이 만들어져 놀라운 초능력을 보여주는 SF 판타지 장르를 가져왔지만 영원한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던져진 브로맨스 가득한 버디무비의 성격이 강하다.

당연히 두 작품 모두 호불호는 갈릴 수밖에 없다. 본래 기대했던 장르물이 주는 재미요소들이 살짝 기대에서 벗어나는 지점들이 있어서다. 만일 액션이나 판타지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본 관객이라면 갑갑해질 수 있다. 거두절미한 액션의 쾌감보다는 영화가 자꾸만 생각하게 만드는 여백을 세워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물의 변주나 새로운 해석을 흥미롭게 보는 관객이라면 나름 괜찮은 반응이 나올 수 있다. 특히 두 영화가 순간영원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흥미롭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칼부림이 난무하며, 피와 살이 튀는 느와르가 보여주는 지옥도 속에서 <낙원의 밤>이 역설적으로 꺼내놓는 순간의 낙원은 엄태구와 전여빈의 멜로, 액션 연기에 의해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반면 <서복>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원의 삶을 얻게 된 복제인간 서복(박보검)과 뇌종양이 자라고 있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기헌(공유)이 함께 끝을 향해 걸어가는 이야기는 영원의 지옥을 보여준다.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이 잠들 수 없는삶의 지옥을 만든다는 걸 서복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것.

순간의 낙원과 영원의 지옥. <낙원의 밤><서복>은 각기 느와르와 SF 장르를 차용해 우리네 삶의 의미에 대해 묻고 있다. 삶은 지옥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짧은 순간의 낙원이 존재하고, 영원한 삶을 욕망하지만 그것은 쉴 수 없는 지옥이라는 걸 두 작품은 담아낸다. 그래서 장르물로만 보면 어딘가 갑갑하지만, 우리네 삶에 대한 은유로 들여다보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영화가 끝나고도 그 여운이 한동안 지속될 정도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서복><낙원의 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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