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의 진짜 문제는 액션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서복>을 보기 전에는 영화의 재미에 대한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다. 이 영화의 감독 이용주는 지금까지 재미없는 영화를 만든 적이 없었다. 관객들은 이 감독의 전작인 <불신지옥>이나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를 미심쩍게 보고, 불쾌하게 여기고, 싫어할 수는 있지만 재미없거나 못 만든 영화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슬프게도 <서복>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재미없고 지루한 영화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심심한 영화가 만들어졌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하긴 영화는 설정부터 밋밋하게 보였다. 설정이 전부가 아니기에 뭔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보았던 것인데, 뭔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이야기는 민기헌(공유)이라는 남자 주인공으로부터 시작한다. 뇌종양으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고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한 죄의식에 신음하는 전직 요원이다. 그러니까 표준적인 하드보일드 주인공이다. 기헌은 전직 상사로부터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실험체인 서복(박보검)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서복은 적절한 조건 안에서는 불사하는 존재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혜택을 나누어줄 수 있다. 기헌은 자신의 병이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임무를 받아들이는데, 그만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들의 습격을 받고 중간에 탈출하게 된다.

이는 영화의 재미나 깊이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건 심지어 줄거리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그냥 장르 설정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 설정을 고르더라도 차별성이 있는 무언가를 더 넣는다. <서복>에는 그게 없다. 그나마 차별성이 있는 건 보호대상인 서복이 남자라는 것인데, 이런 이야기에서 서복은 여성적인 캐릭터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인 경우가 드문 것도 아니고, 보호자인 기헌이 여전히 남자라면 서복을 연기한 박보검의 전작 <차이나타운>처럼 성역할 전복의 효과는 없다. 그냥 흔해빠진 브로맨스로 빠질 뿐이다.

영화의 심심함은 액션의 결여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보디가드 영화치고 <서복>은 액션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깔끔하게 연출되긴 했는데, 열의도, 아이디어도 없다. 그나마 보이는 건 서양 배우들을 데려와 할리우드 액션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노력뿐이다. , 서복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불사가 존재이유인 캐릭터에게 슈퍼 히어로 액션을 주기 위해 총알을 막고 금속을 구부릴 수 있는 능력을 억지로 넣어준 것이다. 당연히 여기에도 열의는 없고 대부분은 어디서 본 코믹북 원작 영화의 아류처럼 보인다.

이는 감독 자신도 의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는 중요하지 않다. <서복>은 액션 영화가 아니라 삶의 유한성과 고통과 희생에 대해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로드 무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마블 히어로물스러운 영화에 대한 기대는 품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문제는 액션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영화가 포인트로 세운 철학과 고민이 비정상적으로 얄팍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불사와 장수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갈망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이는 몇천 년 전에 나온 수메르 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제이기도 하다. 당연히 SF에서는 장르가 굳어지기도 전부터 수많은 작품들이 이를 다루었다. 최근 장수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이 주제는 현실세계에서도 진지한 철학적 토론의 대상이 되었고 이들 중 일부는 무척 현실적이라 이야기에 반영할 구석도 많다. 하지만 영화 <서복>은 가장 기초적인 원론만 간신히 읊는다. 죽음이 없는 삶은 의미가 있는가, 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화 되는가, 권력자에게 독점된 기술은 기타등등... 이들은 영화에서 아무런 발전이나 새로운 생각의 추가 없이 그냥 나열만 될 뿐이다. 마치 전엔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특히 이 영화에서 미친 과학자로 나오는 신학선(박병은)이 읊는 대사들은 구닥다리 SF 영화의 클리셰들만 모아놓은 것 같아 어리둥절하다. 요새는 심지어 미친 과학자들도 인간이 아니라 실험체에 불과합니다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잔인한 말이기도 하지만 일단 진부하기 때문에. 당연히 영화는 지루해진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기성품 재료의 열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감독의 인터뷰에서 답을 찾았다. 이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복제인간을 내세운 SF란 소재는 그저 장치일 뿐, 영화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드라마였던 것이다.

그는 “<서복>을 에스에프영화로 오해하는 것이 안타깝다앞으로도 (인간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영화를 알릴 때도 에스에프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는데, 복제인간이라는 소재가 그렇게 읽히도록 한 것 같습니다. 역시 단어의 힘이 센 거죠.”

이 문장들이 기사로 실릴 때까지 어느 누구도 일단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다. 일단 업계 종사자에게 무례하다. 둘째로 너무나도 쉽게 표적이 될 수 있는 진부한 생각이다.

SF 소재와 주제에 대해 가장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SF 작가와 독자들이다. 당연하지만 가장 심도 높은 고민의 결정물은 장르내에 있다. 어떤 장르이건 무시해서는 안되는 규칙이 있다. 그건 내가 뭔가 멋지고 근사한 걸 생각해냈다면 그건 이미 오래 전에 나보다 더 똑똑한 누군가가 먼저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전 장르 작품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사람의 작업물은 이전에 나온 작품들의 열화된 버전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SF를 만들지 않았다는 발언은 철저하게 무의미하다. <서복>은 이미 SF이며 그 중에서도 장르의 박제된 관습을 힘없이 반복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SF의 도구를 빌렸다는 발언은 더 나쁘다. 아무도 비전문가가 업계 전문가보다 그 도구를 더 잘 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장르 영화에서는 이런 발언들이 당연하다고 나오는 것일까? 창작가가 이런 말을 하는 작품 중 좋은 게 없다는 건 이제 모두가 알 법도 한데?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서복>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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