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 예측 가능한 사이다라도 간절한 시대에 도착한 쾌감
뻔한 전개와 알 만한 반전 뒤, 비로소 흥미로워진 ‘빈센조’의 세계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이탈리아 마피아 카사노 파밀리아의 콘실리에리(고문 변호사)로 활약하던 한국계 이탈리아인 빈센조 카사노(송중기), 다 무너져가는 상가건물 지하에 숨겨둔 금괴만 찾아서 몰타로 가기 위해 잠깐 들렀던 한국에서 본의 아니게 거악과 싸우게 된다는 tvN 드라마 <빈센조>의 스토리 라인은 사실 굉장히 익숙한 서사다.

마피아라는 설정이 낯설어서 그렇지, 말도 안 되게 유능한 주인공의 통쾌한 정의구현이란 점에서 <빈센조>는 박재범 작가의 전작 KBS <김과장>SBS <열혈사제>의 뒤를 충실히 따른다. 마피아라는 설정도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요소다. 조폭이 본의 아니게 자신들보다 더 악랄한 학교 재단이나 대기업과 싸우기 위해 자신들의 방식을 동원한다는 <두사부일체> 시리즈를 생각해보면, <빈센조>가 마피아라는 낯선 설정에도 빠른 시간 안에 시청자들을 설득한 비결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사회를 향해 환멸을 느끼는 일조차 지친 시청자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마피아 빈센조가 부패한 검찰과 대기업, 로펌을 조지는 블랙코미디 <빈센조>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TV삼분지계]도 그 사이에 끼어서 빈센조 카사노의 활약을 지켜봤다. 남지우 평론가는 최근 뉴스란을 수놓는 LH의 집단적인 부동산 투기 사건부터 시작한 한국의 모럴헤저드 현상이야말로 <빈센조>를 향한 인기의 비결이라 분석하며, 입체적인 빌런 최명희를 연기하는 김여진과 장한서를 연기하는 곽동연의 연기를 칭찬했다.

정석희 평론가는 소소한 분량 안에서도 빛을 발하는 조연들의 연기를 칭찬하는 동시에, 권위적인 법정 장면에서 젠더 위계를 뒤집어엎는 장면이나, 승소 인센티브로 새 옷을 사주는 뻔한 클리셰에서 남녀 성별이 역전되는 장면이 주는 쾌감을 언급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빈센조가 자신의 유능함을 발휘하는 정극의 순간들보다, 빈센조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터지는 순간들의 코미디가 더 서사적으로 긴장감을 준다는 점을 지적하며 빈센조가 지금보다 더 고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빈센조가 왔다 간 자리엔 불이 난다

한국토지주택공사 LH가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집단적인 부동산 투기를 해온 사건. 왜 하필 우리가 집포세대가 되었나 했더니 다 이런 거였나, 속상하고 절망스럽다. 수사가 시작되자 이틀 연속으로 직원들이 사망하고, 국토부 장관이 사임했다. 이 초대형 규모의 모럴헤저드 사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 그 뒤에 어떤 진실들이 숨어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 도대체 어떻게?, 도대체 왜? 국가수사본부를 출범시킨 문재인 정부가 이번엔 부디, 범죄자들을 순진하게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tvN <빈센조> 홍차영(전여빈)은 한국형 카르텔의 주범으로 악덕 기업, 구라 병원, 쓰레기 언론 그리고 깡패 로펌을 지목하고, 자신이 말한 그 깡패 로펌을 뛰쳐나온 변호사다. 그는 한국이란 나라의 사정을 잘 모르는 이탈리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에게 이 K-카르텔 현상을 설명하기 바쁘다. 한 사건을 두고 판사와 변호사, 경찰과 로펌, 검사와 기업이 한데 엉켜 사랑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결코 나쁘지 않은 빈센조는 이 나라의 작동 방식을 금세 이해하고, 유럽에서 배워온 자신의 방식으로 대응에 나선다. 협박을 하고, 불을 지르며, 필요할 땐 총으로 사람을 쏜다. 필요할 때만, 아마 진짜로 필요할 때만.

한국 사회의 집단적 부정부패를 현실에서 보게 되니, 다소 폭력적이고 비논리적인 빈센조의 자경단적 방식이 왠지 모를 위로다. 예측 가능하고 단순하기도 한 이 드라마의 플롯에 위로를 받는다는 게 약간 자존심이 상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빈센조>의 이 높은 시청률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빈센조>LH의 비윤리적인 불법 투기사태를 비롯, 부정의가 넘쳐나는 현실의 덕을 보아 시청자를 집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김여진과 곽동연의 연기에도 덕을 본 것이 확실하다. 남성 중심의 법조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최명희라는 인물의 입체성에 마음이 가는 한편, ‘장 회장곽동연의 선 굵은 얼굴에서는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빛이 난다. 느와르가 되고 싶다던 <빈센조>의 야심이 이 배우의 아우라 하나만으로 실현될 참이니 말이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jeewoo1119@gmail.com

◆ 젠더 위계가 파괴되고 역전되는 순간의 짜릿함

<빈센조>의 큰 줄기는 금가프라자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밀어버리려는 사람들의 대결이다. 여기에 각자의 이해타산이 얽혀 있다. 주인공 외에 금가프라자 사람들, 법무법인 우상, 바벨기업, 앤트 재무관리, 대외안보정보원, 여기에 판검사들까지, 등장인물이 지나치다 싶게 많다 보니 회당 한 두 마디에 그치는 배역도 수두룩하다. 사람들은 깎은 밤톨처럼 또랑또랑한, 그러다 한 순간 눈빛이 서늘해지는 송중기를 보려고 이 드라마를 본다지만 나는 금가프라자 사람들이며 앤트 재무관리 사람들을 보려고 본다. , 대외안보정보원 팀장 안기석(임철수)도 빼놓으면 안 된다.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이 드라마에서 이들은 모두 희극 소속이다. 신기한 건 다들 그 짧은 대사 몇 줄로 제 역할을 해낸다는 것. 분량이 성에 안 찰 법도 하건만 매회 최선을 다 하는 연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4회에 악의 축 장준우(옥택연)가 실체를 드러내면서 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옥택연이 주인공 홍차영(전여빈)이나 쫄래쫄래 따라다닐 리 없다고 짐작했던 바,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7회 법무법인 우상지푸라기의 법정 대결 장면에서 진정한 반전이 펼쳐졌다. 우상 측 증인 길종문 원장(홍서준)의 배우자이자 성인 백혈병 전문의 김영원이 지푸라기 측 증인으로 등장한 것. 죄과가 고스란히 담긴 메일과 남편이 소지하고 있던 마약을 증거자료로 제출하면서 승리는 지푸라기 차지! 법정에서 김영원이 불륜에 재산까지 빼돌린 남편을 직접 응징하는 장면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물론 법정 모욕죄가 적용되겠지만.

이어진 홍차영이 성과금 명목으로 빈센조에게 양복을 맞춰주는 장면도 신선했다. 여느 드라마라면 홍차영이 옷을 입고 나오고 빈센조가 좋니, 나쁘니, 평가했겠지? <빈센조>, 이제 볼만해졌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ㄱ.. 아, 아니, 빈센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내는 기상천외하고 악랄한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가 초반에 시청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꺼내 든 것은 빈센조 카사노(송중기)라는 캐릭터의 의외성이었다. 정의가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빌런이, 제 이익을 보호하려고 하다 보니 졸지에 자신보다 더 악랄한 한국의 권력 카르텔을 깨부순다는 아이러니한 설정이 <빈센조>가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작품의 재미였다.

문제는 빈센조가 그다지 악인으로도 안 보인다는 점이다. 알고 봤더니 슬픈 과거사가 있어서 영 안쓰러운 우리의 빈센조는, 빠른 시간 안에 법무법인 지푸라기의 일원이 되고, 선하디선한 인권변호사 홍유찬(유재명)에게 감화되어 진심으로 바벨그룹과 맞서 싸운다. 설상가상 말도 안 되게 유능한 사람이니, 바벨의 술수로 홍유찬 변호사가 사망하는 거대 사건이 터져도 크게 불안하지 않다. 말도 안 되게 유능한 빈센조가 다 알아서 사건을 해결하고 함께 사이다를 마셔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탓이다. 바벨화학과의 산업재해 소송도 너무 가뿐하게 이겨버리는 빈센조가 중심에서 활약하는 순간마다, 작품은 영 싱거워진다.

너무 쉽게만 흘러가 스토리의 탄력이 떨어질 때, 다시 탄력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것은 뻔한 빌런이나 금방 극복할 시련이 아니다. 빈센조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이다. 이를테면 한국으로 날아온 빈센조가 택시기사를 가장한 2인조 강도단(진선규, 이희준)에게 손목시계와 현금을 탈탈 털리는 순간이나, 빈센조가 철거 용역들의 비인간적인 폭력이라는 언론플레이 용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가짜 금가프라자 세입자로 섭외한 대타들이 코로나19 환자 밀접 접촉자 통보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지 못하는 대목이다.

앤트 재무관리 측 용역들에게 신나게 맞는 장면을 연출해야 했던 대타들이 다 함께 보건소로 간 사이, 진짜 금가프라자 세입자들은 앤트 재무관리 측 용역들을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제압해버린다. 법무법인 우상과의 싸움이나 바벨그룹과의 대결에서 얻지 못하는 텐션이, 코미디 용 돌발변수에서 생산된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빈센조는 지금보다 더 고생할 필요가 있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영상=tvN.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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