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 곽동연이 만드는 다채로운 악역의 얼굴

[엔터미디어=정덕현] 악당이 살아야 영웅도 사는 게 선악구도를 담는 이야기의 생리다. 악당이 제대로 세워져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내고, 처절하게 무너지는 모습이야말로, 영웅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는 것.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는 그래서 빈센조(송중기) 같은 영웅만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악당들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악당들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누굴까.

이 드라마에서 단연 악역의 정점은 장준우(옥택연) 바벨그룹 회장이다. 그는 홍차영(전여빈)이 법무법인 우상에 있을 때 그의 인턴으로 위장해 있던 인물이다. 그러다 빈센조가 원료 공장을 폭파시키고 불태워버리는 순간에 숨겼던 정체를 드러냈다. 순진하게 웃으며 선배하고 홍차영을 졸졸 따라다니던 순박한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악당의 면모를 드러낼 때 시청자들은 그 반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준우의 이렇게 대놓고 보이던 두 얼굴이 이제 바지회장으로 앉혀 놓았던 이복동생 장한서(곽동연)를 밀어내고 공식석상에서 회장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그에 대한 악역으로서의 긴장감은 사뭇 줄어들었다. 물론 빈센조와 홍차영이 팝콘 각으로 만들어낸 마피아식 돼지 피 세례를 받고 분노의 시선을 던지는 장준우의 섬뜩한 표정은 살아있지만, 그 순간 더욱 주목되는 건 장한서의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표정이었다.

엄청나게 당황하고, 벌벌 떠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피식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장한서의 표정이 그것이다. 이 표정은 <빈센조>에서 그가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지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는 장준우의 바지회장으로 그의 말대로 큰 사고를 쳤을 때 대신 감방에 가는 그런 인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어쩔 줄 모르고 벌벌 떠는 모습 이면에 숨겨진 생존본능과 권력욕을 어느 순간에 드러내는 반전을 보여줄까.

장한서 역할을 연기하는 곽동연은 그런 점에서 <빈센조>라는 작품을 좀 더 쫄깃하게 만드는 악역이 아닐 수 없다. 다소 단선적인 악역인 장준우 역할의 옥택연과 사뭇 비교되는 지점이다. 장준우가 섬뜩한 미소를 짓다가 고함을 치는 감정 기복으로 긴장감을 부여한다면, 장한서는 겉으로는 쩔쩔 매는 척 하면서 뒤에서는 장준우마저 제끼고픈 욕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긴장감을 부여한다.

생각해보면 장준우 역할의 옥택연이 반전 캐릭터로서의 악역을 세우는데 있어서도, 장한서를 연기하는 곽동연의 리액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장준우 앞에서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악당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리액션을 통해 강조해 줬던 것.

물론 옥택연 역시 그간 해왔던 역할에서 벗어나 악역을 통한 연기의 새 길을 열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옥택연이 <빈센조>에서 악역의 정점으로 우뚝 서게 한 데는 곽동연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걸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다채로운 감정들과, 그래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악역의 얼굴이 있어 <빈센조>의 통쾌한 카타르시스 서사가 힘을 얻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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