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플래닛999’, ‘새가수’, ‘라우드’ - 2021년 오디션 중간점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오디션 프로그램 홍수다. 예전처럼 어느 한 프로그램이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는 일은 드물어졌고, 오디션의 과정과 결과를 둘러싼 안팎의 잡음은 더 많아졌지만, 그래도 방송사들은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든다. “이렇게 좁은 땅덩이에서 어쩌면 이렇게도 계속 실력자들이 나올까”라는 말은, 이제 “이렇게 좁은 땅덩이에서 어쩌면 이렇게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을까”라고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도 비슷한 종류의 의문을 품고 2021년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도 이제 예전 같지 않은데, 대체 무슨 매력과 새로운 비전이 있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는 걸까?

이승한 평론가는 Mnet의 가장 전형적인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 위에 한중일 3개 에스닉 그룹 참가라는 요소를 얹은 <걸스플래닛 999>를, 정석희 평론가는 참가자들에게 7080의 정서를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하라는 요구를 던지는 KBS2 <우리가 사랑한 그 노래, 새가수>를, 남지우 평론가는 박진영과 싸이의 참여라는 카드에도 좀처럼 화제성이 올라오지 않고 있는 SBS <라우드>를 분석해 보았다.

각각 동북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K-POP의 글로벌화, 세대적 한계를 뛰어넘은 K-POP의 저변 확대, 새로운 세대의 K-POP 아티스트 육성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출사표를 던진 세 오디션 프로그램을 [TV삼분지계] 평론가들은 과연 어떻게 평가했을까?

◆ <걸스플래닛 999>: 보여야 할 참가자들의 얼굴이 잘 안 보인다

Mnet을 오디션 프로그램의 명가로 만들어 준 <슈퍼스타 K> 시리즈의 문법이 대체로 “탁월한 개인을 향한 환호”였던 것에 비해, <프로듀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Mnet표 아이돌 오디션의 문법은 다소 암울하다. 팬들에게 “산업 속에서 우리 애가 희생되지 않도록” 표를 던지게 유도하는 것이니까. 승자가 되어 데뷔조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보다는 ‘떨어지면 안 된다’는 공포가 쇼의 주된 정서이고, 그래서 ‘국민프로듀서’나 ‘플래닛 가디언’들에게 표를 행사해달라고 부탁하는 참가자들의 구애는 더욱 절박해진다. 그래서 참가자들이 얼마나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활기차게 춤을 추는가와 무관하게, 전체적인 공기는 여러 모로 침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공포 마케팅을 정당화해주는 단 하나의 명분은 ‘우리 애 얼굴이 조금이라도 더 알려졌으면’ 하는 팬들의 마음이다. 인기를 얻어서 데뷔조가 되면 제일 좋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쇼를 통해서 ‘우리 애’가 더 널리 알려지고 그 인지도를 발판으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런데 Mnet표 아이돌 오디션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그 지점에서 실패하고 있다. Mnet은 더 거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본선에 오르는 참가자 수를 늘리고, <걸스플래닛 999>에 와서는 동북아시아 3개 에스닉 그룹으로 그 참가 범위를 넓히며 ‘글로벌 오디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제한된 방송 시간 안에 참가자들의 매력을 다 담는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어쩔 수 없이 제작진의 눈이 더 많이 가 닿는 참가자들과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 사이의 위계가 발생한다.

방송 시간의 한계로 인한 이와 같은 편중은, 그 결정을 내린 방송사가 <프로듀스> 시리즈와 <아이돌학교> 등에서 투표조작을 했던 전력이 있는 Mnet이라는 지점에서 모두의 찜찜함을 낳는다. 아마도 Mnet은 – 앞선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본계와 중국계 참가자가 없었던 것이 아님에도 - 3개 에스닉 그룹이 참여하는 오디션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화제성을 만들고 동북아시아 시장에서의 설득력을 갖춰서 이와 같은 시선을 돌파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한중일 3개국 참가자들 간의 미묘한 경쟁심은 자꾸만 동북아시아의 갈등구도를 상기시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K그룹 참가자들이 J그룹 참가자들의 실력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C그룹 참가자들이 과거에 남긴 정치적인 발언들을 두고 한중 양국의 네티즌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구도 속에서, 이런 판을 벌린 Mnet의 진의를 믿기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러니, 정작 보여야 할 참가자들의 얼굴이 잘 안 보이지 않나.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새가수>: 새 감성을 옛 틀에 끼워 넣을 이유는 대체 뭔가?

KBS2 오디션 프로그램 <우리가 사랑한 그 노래, 새가수>를 중간에 본 시청자는 왜 젊은이들이 흘러간 가요만 부르는지 의아해한다. 배철수 씨가 보여서 <콘서트 7080> 재방송인 줄 알았다는 이도 있다. 이 프로그램이 옛 노래를 고집하는 이유는 ‘70~90년대 명곡들의 재탄생’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복고지향 드라마 안에서 사랑받는 그때 그 노래들, 아련한 추억으로 아예 판을 깐 것이다.

그래서 도전자들은 기억에도 없을 옛 노래를 요즘 감성으로 재해석하라는 주문을 받는다. 원곡을 부른 ‘레전드’들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제각기 다른 심사위원들의 입맛도 맞춰야 한다. 흠잡을 데 없는 가창력은 기본, 곡의 기조는 살리되 시대를 뛰어 넘는 세련된 변주를 바라는 심사위원들. 그들이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인인 건 맞다. 하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괜히 있겠나. 새로운 감성의 젊은 음악인들을 굳이 구식 틀 안에 끼워 넣을 필요가 있을까?

애초 JTBC <싱어게인>에서 이무진이 부른 한영애의 ‘누구 없소’와 이승윤이 부른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힌트를 얻었지 싶다. 그러나 <싱어게인>은 성공의 시작이 ‘누구 없소’이긴 해도 자작곡이며 다양한 시도 가능하게끔 문을 열어 두었지 않나. 반면 ‘70~90년대 명곡’이란 틀에 갇힌 <새가수> 도전자들은? ‘새바라기’(이동원X황인호)의 ’어서 말을 해'를 들으며 이 놀라운 경지의 음악인들에게 <새가수>가 어떤 길을 열어줄지 궁금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황인호 도전자는 탈락했다. 내내 커버곡만 부르다가.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라우드>: 전인적 대안교육 채널

시청률과 화제성 측면에서 고전하고 있는 SBS <라우드>가 오늘(21일) 밤, 첫 생방송을 앞두고 있다. 박진영과 싸이, 싸이와 박진영. 걸출한 스타이자 제작자인 이들이 서로의 색채를 담은 두 팀의 보이그룹을 탄생시킨다는 것이 <라우드>의 골자. 이 매력적인 착상에도 시청자의 관심이 이곳으로 모이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단순하지만 명백한 이유가 하나 떠오른다.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서의 <라우드>는 ‘재미’가 없다. 하지만 ‘재미’를 잃은 대신에 <라우드>가 얻은 그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누군가는 이 기획을 지지해야 마땅하다. “또 오디션이야?” 같은 반응은 잠시 제쳐두고 말이다.

지난 11주간의 방송을 보며 이런저런 메모를 해놓았다. ‘학교 수업 같아’, ‘선생님과 아이들같음’, ‘EBS에서 만들었어도 괜찮았을 듯’.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는 다소 가혹한 코멘트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라우드>의 두 심사위원은 무거운 공정성이나 살 떨리는 경쟁 구도엔 관심이 없었다. 이들의 패스 버튼을 받기까지는 시간제한이 없고, 참가자들은 정말이지 ‘될 때까지’ 기회를 받는다. 추가 선발 같은 제도도 별다른 설명 없이 자유롭게 사용되고, 경연에서 패배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탈락하는 것이 아닌 ‘탈락 후보’에 오르는 식이다. <라우드>가 시청자를 사로잡을만한 긴박감, 박진감 등의 요소를 포기하며 오디션치고는 다소 헐거운 제도를 운영하게 된 데에는, 제작자 박진영의 ‘교육관’이 크게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SBS <K팝스타>의 여섯 시즌을 거쳐온 그는, 경쟁과 평가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진영은 그 ‘무언가’를 바로 이 프로그램의 제목과 같은, ‘라우드’라고 호명한다. 그는 라우드를 ‘매력’ 혹은 ‘스타성’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마음’, ‘성격’, ‘소신’과 같은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이돌을 꿈꾸는 모든 참가자, 더 넓게 보면 모든 ‘아이’들 에게는 이 라우드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이는 실질적 교육 방송인 <라우드>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존재 이유와도 같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사진·영상=Mnet, KBS2, SBS.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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