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수’, 국뽕으로 괜한 바람만 잔뜩 넣기 전에 생각할 것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어차피 우승은 박창근’. 인터넷에는 이미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TV조선 오디션 <내일은 국민가수(이하 국민가수)>에서 박창근이 독보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도 <국민가수>가 찾아낸 숨은 보석은 ‘박창근’이 거의 유일한 수준이다. ‘1대1 데스매치’에 올라온 출연자들을 보면 <국민가수>가 발굴했다기보다는 타 오디션 프로그램 등에서 이미 발굴된 이들을 모아 무대에 세웠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 Mnet <슈퍼스타K> 울랄라세션의 박광선이나 JTBC <팬텀싱어>의 고은성, Mnet <보이스 코리아>의 김영흠 등이 그 사례들이다.

<국민가수>가 발굴한 출연자로 K소울을 들려주는 김희석이나 전직 역도 선수였지만 이제는 가수가 되기 위해 도전하고 있는 이병찬 같은 인물들이 눈에 띄지만, 그래도 박창근은 훨씬 도드라지는 면이 있다. 故 김광석의 분위기가 나는 포크 스타일의 음악을 오랫동안 다운타운 무대에서 쌓아온 공력으로 해석해 불러 ‘숨도 쉬지 못할’ 집중력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이다.

그런데 ‘어차피 우승은 박창근’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건, 그가 <국민가수>가 온전히 발굴한 가수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박창근은 <국민가수>라는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어서다. <국민가수>는 제목에 그 뉘앙스가 들어 있듯이 ‘국민 모두가 좋아할만한 가수’를 뽑는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1대1 데스매치’에서 박창근과 맞붙은 김영흠이 압도적인 표차로 패배한 것에 대해 심사위원인 김범수는 그의 목소리는 보석이지만 오디션 무대에서 너무 힘이 들어가 과하게 들린다고 말했다. 분명한 개성이 있지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은 <국민가수>라는 오디션에서는 약점이 된다.

박창근은 현 나이 50세로 <국민가수>의 주시청층일 수 있는 중장년층에도 가장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이다. <국민가수>의 선곡들 중 상당부분은 중장년층에 맞춰진 가요들이 많다. 박창근이 김영흠과의 맞대결에서 부른 곡도 장현의 ‘미련’이었다. 고은성이 부른 이성애의 ‘그 옛날처럼’은 카펜터스의 ‘Yesterday ones more’의 번안곡이고, 김희석이 부른 조덕배의 ‘꿈에’, 이병찬이 부른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 박광선이 부른 김장훈의 ‘난 남자다’ 등등 대부분이 중장년층의 향수와 추억을 자극하는 선곡들이다. 그 시대를 통과해왔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스타일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박창근이 <국민가수>에서 유리한 이유다.

하지만 ‘어차피 우승은 박창근’이라는 이야기 속에는 <국민가수>가 최근 K팝의 위상을 이야기하고, 이 오디션이 그런 글로벌한 ‘K팝가수’를 배출할 것이라 선언하며 나아가 모든 것에 ‘K’를 붙여 말놀이를 하는 프로그램의 기치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준다. 박창근은 확실히 독보적인 가창력을 갖고 있고, 듣는 이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가사 전달력의 소유자지만 2018년 종영한 KBS <콘서트 7080> 같은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에 더 어울리는 게 사실이다.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는 일이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닌 K팝의 위상이지만, 과연 박창근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같은 글로벌 시장에 어울릴까.

이 부분은 <국민가수>가 갖고 있는 한계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프로그램은 ‘국민’을 호명할 정도의 가수를 배출하고 나아가 K팝 글로벌 아티스트로까지 가능하다는 얘기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상은 중장년층의 향수와 추억을 자극하는 선곡을 가져와 약간의 재해석을 더한 커버 무대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글로벌 K팝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가창력만이 아니라 보다 아티스트적인 자신만의 곡과 스타일, 메시지 등이 담긴 음악을 선보여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은 <국민가수>가 ‘국민’과 ‘K팝’을 국뽕의 관점에서 호명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만든다.

그래서 차라리 글로벌 K팝과 더 가까워 보이는 건 <국민가수>보다는 국악 퓨전을 시도하고 있는 JTBC 오디션 <풍류대장>이다. 물론 출연자들과 무대에 따라 성취의 차이는 있지만 <풍류대장>은 적어도 출연가수들의 자기만의 해석을 더해 독창적이고 아티스틱한 무대를 지향한다는 걸 분명히 내세우고 있다. 과거의 음악을 똑같이 가져와도 이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현재화하는 <풍류대장>과 비교해보면, <국민가수>는 다분히 과거를 향수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더 강하다.

<국민가수>는 그 오프닝을 2002년 월드컵 시절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는 그 장면에서 따왔다. “대한민국-” 대신 “국민가수-”를 넣은 것. TV조선이 가진 주 시청층의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이런 추억과 향수의 소환이 필요했을 게다. 이것은 일련의 트로트 오디션 트렌드가 광풍을 일으키다 지나간 후, 이를 잇는 오디션으로 <국민가수>를 세우면서 음악적으로도 추억을 소환하는 선곡을 한 이유다.

그런데 <미스터 트롯> 같은 트로트 소재의 오디션에서도 이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과거의 향수만이 아닌 ‘트로트의 현재화’에 있었다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임영웅이나 김호중, 이찬원 등등의 트로트스타가 발굴되고 이들이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건 추억의 트로트 커버가 아닌 현재에도 충분히 소비될 수 있는 이들만의 재해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국민가수>는 그런 현재화를 보여주고 있을까. 헛된 글로벌 K팝을 과장되게 주장하며 호들갑스런 상찬을 해 괜한 바람만 잔뜩 넣기 전에, 우선 여기서 배출된 가수가 현재의 가요계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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