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수’의 애매한 정체성, 이러다 아류작 전락할라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좋게 보면 종합선물세트 오디션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비판적으로 보면 새로움 없이 이것저것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짬뽕 오디션처럼 보인다.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는 ‘나이, 장르, 국적, 성별을 불문하고 노래를 사랑하고 무대에 대한 갈망이 있는 대국민을 상대로 펼치는 초대형 프로젝트 오디션’이라고 공식적으로 소개됐다.

그래서 이 오디션에는 김광석의 ‘그날들’로 무려 23년 간 무명가수로 활동했던 그 공력을 가감 없이 드러낸 재야의 고수 박창근이나 매력적인 음색으로 ‘비밀’을 불러 반전 매력을 선사한 김동현 같은 인물도 있지만, 이미 타 방송사 프로그램이나 오디션에서 두각을 나타내 유명한 고은성, 유슬기, 김국헌, 박광선 같은 인물들도 있다.

아예 타오디션부라는 인물군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특히 <내일은 국민가수>는 다른 오디션 출신 가수들이 유독 눈에 띈다. Mnet <슈퍼스타K> 출신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울라라세션의 박광선이나, 시즌5의 준우승자였던 박시환, 2016년 우승자였던 지리산 소울 김영근이 출연했고, Mnet <프로듀스101>에서 조작 사태로 인해 피해를 입은 김국헌도 출연했다. 또 Mnet <보이스 코리아> 출신의 지세희, 김영흠, <팬텀싱어> 출신의 고은성, 유슬기도 보이고, MBN <보이스킹> 출신의 안율, <미스트롯2>에 나왔던 이소원도 있다.

타 오디션 출신 가수들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등장한 건 이미 JTBC <싱어게인>에서 선보인 바 있다. 그래서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내일은 국민가수>는 이런 가수들이 유독 눈에 띌 정도로 그 숫자가 많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색깔을 ‘나이, 장르, 국적, 성별 불문’으로 세워 놓고 있으니 타 오디션 출신 가수들이 대거 출연한 게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내일은 국민가수>만의 정체성이다.

예를 들어 <싱어게인>은 ‘다시 부른다’는 그 하나의 키워드로 ‘무명가수전’을 내세움으로써 프로와 아마추어를 망라한 다양한 가수들이 참여하면서도 이 오디션 프로그램만의 정체성을 확실히 세울 수 있었다. 슈가맨조처럼 한두 곡의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한 후 잊혔던 인물도 있고, OST조처럼 작품 뒤편에 서 있어 그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도 있으며, 오디션조처럼 오디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그 후 여러 이유로 활동이 이어지지 않아 존재감이 사라졌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은 ‘무명가수전’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질 수 있었다.

‘무명가수전’이라 카테고리를 분명히 하기 때문에 출연자들의 목적의식도 분명해지고 이들의 무대에 리액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심사위원 역할도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내일은 국민가수>라는 오디션은 어떤 정체성을 내세우고 있고 거기에 맞는 출연자들의 목적의식과 심사위원들의 역할은 분명히 드러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러한 하나의 오디션 콘셉트가 <내일은 국민가수>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가수’라는 단어 자체가 모호한데다, 참가자들도 어떤 하나의 일관된 기획의도에 의해 모여졌다기보다는 화제가 될 만한 인물들을 기성가수나 타 방송사 출연자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해온 무명가수까지 망라해 한 무대에 세워놓고 있는 느낌이다. 참가자들의 카테고리도 그래서 <미스트롯>이나 <미스터트롯>이 그랬던 것처럼 중등부, 고등부 같은 연령대로 나누기도 하고, ‘타오디션부’, ‘선수부’ 같은 특징으로 나누기도 하는 것처럼 일관된 구성의 스토리가 부여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형식도 TV조선이 해왔던 트롯 오디션 무대 방식을 거의 똑같이 활용하고 있고 심지어 심사위원 구성이나 활용까지도 똑같다. 이들 중에는 김범수나 박선주처럼 구체적인 디테일의 심사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리액션 담당의 붐붐이나 장영란, 신봉선도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심사보다는 리액션이 대부분이다. 오디션의 정체성이 분명하면 거기에 맞춘 심사나 조언이 가능할 텐데, <내일은 국민가수>는 “놀랍다”거나 “소름 돋았다” 같은 리액션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이렇게 확실한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게 되면 무대가 주는 감흥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울랄라세션의 김광선은 이미 KBS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에 자주 모습을 보일 정도로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추는 가수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 인물이 <내일은 국민가수>에 나오는 건 심사위원들도 의아해하듯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역시 잘 하는 무대를 보면서도 그게 새롭지는 않다. <불후의 명곡>의 한 무대를 떼어다 여기 붙여 놓은 그런 느낌이랄까.

목적의식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심사기준도 애매하게 다가온다. 고은성이 오디션부도 아닌 ‘직장부 참가자’로 출연해 ‘그 순간’을 레트로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 세련되게 불렀지만 올하트를 받지 못했을 때 그 이유로 내놓은 “무대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심사평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경실의 아들 손보승은 물론 첫 무대에서 잘 부른 게 맞지만 그렇다고 올하트를 받을 만큼이었나 싶은 점이 있다면, IT회사 CEO인 박수호의 ‘론리 나잇’이 반전무대에도 올하트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도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심사의 분명한 기준이 잘 보이지 않으면, 전문적이지 못한 심사진들이 분명한 기준 없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당락을 주는 듯한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정체성이 모호해지니 남는 건 ‘국민가수’라는 거창한 타이틀과 심사위원들이나 참가자들의 다소 호들갑스럽게 편집된 리액션들이다. 이런 오디션 연출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딘가 인위적인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출연가수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실력과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들을 보여주는 방식이 이를 잘 드러내주지 못하고 있어 생긴 결과다. 대국민 오디션이었던 <슈퍼스타K>를 잇는 것처럼 시작했지만 ‘새로운 얼굴들’보다는 이미 타 방송사에서 익숙한 인물들을 너무 많이 세워놓음으로써 신선함이 없고, <싱어게인> 같은 사연 있는 가수들을 세우려 했지만 차별화되는 분명한 스토리구성이 없어 아류작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방식으로 과연 ‘국민가수’가 탄생할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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