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대장’, 그 어떤 오디션보다 절실, 그래서 먹먹한 감동이 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JTBC 오디션 예능 <풍류대장>에서 2라운드 무대에 오른 이아진은 박효신의 ‘굿바이’를 국악 정가 특유의 분위기로 재해석해 불렀다. 그런데 전날 급체를 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그는 결국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심사위원들도 출연자들도 MC도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된 이아진은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이 옆에 와 있더라면서 어디까지 노래를 불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고, 그래서 누군가는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는 경쟁이 펼쳐지는 무대였다. 제 아무리 실력을 갖췄다고 해도 한 순간에 가사 실수를 하거나 음 이탈을 하는 것만으로도 탈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오디션 무대가 아닌가. 따라서 이 냉정한 오디션의 룰에 따른다면 이아진은 탈락한다 해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경쟁하는 다른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심사위원들도 모두 이아진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기를 바랐고 결국 다음 날 그는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다 부르지 못한 노래를 끝까지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절실함이 전해졌던 것일까. 마침 박효신의 ‘굿바이’라는 곡의 가사 또한 마치 이아진이 이 오디션에서의 마지막을 전하는 말처럼 전해졌고 노래를 듣는 출연자들 중에는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보였다.

이아진은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같이 경쟁하는 팀인 해음에 져 탈락자가 됐다. 하지만 그 순간 박정현이 손을 들고 “잠깐만요”를 외쳤다. 심사위원 한 명 당 한 장씩 쓸 수 있는 와일드카드를 쓰겠다는 거였다. 박정현의 와일드카드로 이아진은 생존할 수 있게 됐고 다른 심사위원들도 서로 자신들이 와일드카드를 쓰려했었다고 그 선택에 동의하는 마음을 전했다.

<풍류대장>의 이런 풍경은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는 사뭇 다르다. 첫 회에 나왔던 최예림의 사례에서도 이런 광경이 등장한 바 있다. 에미넴의 ‘Lose Yourself’를 자신의 스토리로 가사를 써서 부른 최예림은 너무나 멋진 국악 버전의 랩을 들려줬지만 “국악하면 먹고 살기 힘들고-”라는 가사에서 울컥하며 노래를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계속 하라는 사인을 보냈고 결국 최예림은 뒷부분을 더 강렬한 무대로 이어가며 노래를 마쳤다.

<6시 내고향> 리포터 출신이지만 국악을 하겠다는 그 절실함이 그가 개사한 가사에 묻어났고, 무엇보다 국악과 랩이 기막히게 어울려 그 퓨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노래 실수에도 합격을 한 그에게 이적 심사위원은 이런 말을 전했다. “시험이라고 치면 시험지가 7장 있는데 그 중에 한두 장 잃어버린 거예요. 근데 그 있는 시험지만 푼 걸로도 이미 커트라인 통과하기 충분했던 느낌..”

<풍류대장>이라는 크로스오버 오디션에서 이런 풍경이 가능한 건 그 분야가 국악이라는 점에서 공감대를 불러온다. 코로나19로 인해 설 무대가 사라진 가수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서도 국악 분야는 더더욱 설 자리가 없어진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해외 수백 개국에서 공연을 해온 팀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해외에서는 그 가치를 엄청나게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오히려 평가절하 돼 있거나 아예 설 무대자체가 없는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400회 이상 해외공연’이나 국내 최고의 국악 콩쿠르 같은 대회 수상자들이 줄줄이 무대에 나와 ‘전주 대사습놀이 수상’ 같은 타이틀이 <풍류대장>에는 너무 흔하게 느껴지는 상황은 그래서 먹먹한 감정마저 느끼게 만든다. 이들에게 <풍류대장> 같은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가 이처럼 실력자들이 대거 출연한 상황 그 자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커버곡을 국악과 퓨전해 만들어내는 절묘한 무대들도 흥미롭지만, 이러한 절실함 때문인지 <풍류대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로 가사를 만들어 꾸민 무대들이다. 에미넴의 랩을 자신의 처지에 빗댄 가사로 재해석한 최예림이 그렇고, 국악 싱어송라이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살이 차오른다”로 개사해 자신이 했던 다이어트 경험을 녹여내 부른 최재구의 무대가 그랬다.

특히 생계 때문에 판소리를 접으려 했다가 다시 소리판으로 돌아온 신동재가 리쌍의 ‘독기’와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에 자신의 사연을 담아 부른 무대나, 한연애의 ‘조율’에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어려운 현실을 위로하며 ‘함께’ 이겨나가자는 가사를 담은 무대는 국악 퓨전이 커버 그 이상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킨 원인 중 하나로 한국 사회가 갖는 치열한 경쟁적 현실을 꼽는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그토록 많고 또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게다. 하지만 <풍류대장>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패자에게 한 번의 실수도 용납지 않는 승자독식 게임인 <오징어 게임>의 경쟁과는 사뭇 달랐다. 실수를 한다고 해도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지고 때론 와일드카드를 통해 구제되는 오디션. 이것은 가능해진 건 이러한 오디션 무대조차 절실한 국악인들로서의 공감대가 경쟁만이 아닌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을 이끌어내기 때문일 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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