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타임’, JTBC 특유의 착한 서바이벌쇼인 건 알겠지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연초부터 ‘글로벌’ 아이돌을 내놓겠다는 방송사들의 선언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엠넷 <보이즈플래닛>과 JTBC <피크타임>이 2월 방송을 시작했고, 3월말 방영 예정으로 MBC <소년판타지>도 준비 중이다. 이 세 프로그램 모두 남자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다면 SBS는 <유니버스 티켓>이라 하여 올해를 목표로 여자 아이돌 그룹 서바이벌 준비에 나섰다. MZ세대가 떠났다는 TV 앞을 지키는 방송사들이 이른바 시청률 확보나 다양한 세대에 접근하기 어려운 아이돌 서바이벌쇼를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방송사의 생존전략, 즉 비즈니스 모델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젠 시청률이 높을 만한 좋은 프로그램을 잘 만들고 광고 수익을 기대하는 모델로는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TV광고 시장 자체가 위축된 데다 시청률이 높다고 광고가 붙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방송 편성은 사업구성상 포트폴리오 중 하나 정도로 지위가 변화했다. 특히나 아이돌 서바이벌은 시청률이 중한 것이 아니다. 글로벌IP를 확보한다는 목적성이 훨씬 강하다. 글로벌IP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며 여러 트로트 서바이벌 콘텐트가 증명했듯이 각종 공연, 음원, 음반, 굿즈, 행사 등 각종 부가 수익사업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이돌 서바이벌쇼는 K-컬쳐가 글로벌화된 오늘날, 방송사가 K-팝 시장에 참여해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럼에도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청률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엠넷은 채널 자체가 일반 대중보다는 팬덤을 지향하는 채널이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시청률 8~10%를 찍던 <싱어게인>의 아이돌 버전인 <피크타임> 또한 연속 편성했던 1,2회를 제외하면 5회까지 시청률 1%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서바이벌쇼의 특성상 본방사수는 필수이며, 아무리 10대, 3040세대 여성 팬덤 향한 콘텐츠라고 하지만 방송을 단순 이력으로만 활용한다는 것은 가성비 측면에서 완벽하게 납득하기 힘들다. 대중적 인지도가 커져야 팬덤의 확장성과 영향력도 커지는 법이다. 화제성이 높다고 하지만 아이돌 팬덤 커뮤니티를 넘어서면 <피크타임>이나 팀 11시에 대한 이야기를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것이 또 하나의 현실이다.
JTBC의 음악예능인 <싱어게인>이 무명 가수를, <두 번째 세계>가 아이돌 그룹에서 비교적 주목을 받지 못하는 포지션의 멤버에 스포트라이트를 건넸다면, <피크타임>은 데뷔는 했으나 불꽃도 되지 못하고 사그라질 위기에 놓인 아이돌에게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서바이벌쇼다. 이른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유행어를 서바이벌쇼에 꾸준히 접목해온 JTBC의 아이돌 버전이다.

<싱어게인>의 세계관을 잇는 오디션인 만큼, 특징적인 설정들을 가져왔다. 탈락하기 전까지 기존 팀명을 공개하지 않고, 피크타임이란 콘셉트에 맞게 팀1시~24시까지 시간으로 24개의 팀 이름으로 정했다. TOP 6에 들면 팀명을 동시에 오픈하고 본래 팀명으로 활동한다는 점도 유사하고, 참가자들의 특성에 따라 분류해 그룹을 짓는 구성도 닮았다. 라이벌전이나, 연합전 등 주어지는 미션 무대도 익히 봐온 장면이다.
서바이벌 예능 특유의 ‘악마의 편집’ 없이 각 팀의 매력을 최대한 무대로 평가할 수 있게 모든 팀의 무대를 편집이나 호흡의 차이 없이 비슷한 비중으로 보여준다. JTBC 특유의 착한 서바이벌쇼를 지향하는 것은 알겠지만, <싱어게인>의 설정과 의도를 아이돌 콘텐트에 그대로 접목한 점은 다소 아쉽다. 팬덤을 이끌어내야 하는 아이돌 콘텐트만의 스토리텔링과 특성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등장인물의 소개가 끝나고 서바이벌쇼라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가 본격 도약해야 하는 시점인 3회에서도 1,2회와 똑같이 별다른 서사 장치 없이 무대를 계속 이어서 보여준 점은 치명적이었다.

물론, 연합 미션을 위해 2박 3일간 합숙하는 과정을 보여준 5회부터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연습과정을 스케치하면서 무대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멤버별 개성과 매력이 두드러진다. 팀 단위의 서바이벌을 추구하지만 개인의 이름은 실명으로 노출하는 묘수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개인 MVP 선정이란 베네핏 조건을 내걸어 개인 참가자에게 몰입할 수 있는 여지 또한 공식화했다. 개별 인터뷰를 본격화해서 관계의 갈등과 성장 등을 보여주며 매력을 발췌하고 감정선을 담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리더십과 책임감을 보인 손준형과 D-1, 눈물의 성장서사를 쓴 시우 등 새로이 주목받는 출연자들이 생겼다. 하지만 서바이벌쇼는 중간에 끼어드는 것이 까다로운 단체 줄넘기와 같은 성질이 있다. 이미 절반가량 진행된 지금 시점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싱어게인>과는 무관한 <피크타임>이 가진 아이돌 콘텐트 특유의 재미와 신선함이 드러나지 못해 아쉽다. 많은 아이돌 오디션 중 최초로 ‘팀전’으로 펼쳐지는 서바이벌인 만큼 연습생 시절부터 고락을 함께해온 멤버들의 끈끈한 팀워크에서 나오는 시너지는 기존 아이돌 콘텐트에서 볼 수 없는 볼거리였다. 특히 이 프로그램이 초반에 보여준 가장 큰 매력은 착한 경연이 아니라, 그룹 멤버 사이의 끈끈함을 넘어서 객석을 가득 매운 경쟁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동료애다. 중소 기획사에서 연습생을 거쳐 데뷔를 하고, 이후 어려움을 맛본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절실함이 흔한 독기가 아닌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에너지가 되어 무대를 감싼다. 서로 경쟁하는 서바이벌쇼이지만 그 어떤 관객들보다 다른 팀의 무대를 진심으로 열렬하게 즐긴다. 무대를 마친 한 참가자들이 말했듯이 모니터를 위해 착용한 인이어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높은 데시벨의 함성과 에너지는 시청자의 마음도 분명, 움직이게 한다.

재능 발굴은 일상이 되었고, 간절함은 새롭지 않다. 오로지 무대 위의 실력으로만 평가를 하고, 균등한 기회를 주는 의도도 좋지만, 심사위원의 눈물을 쏟을 만한 사연을 드러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팀 11시가 화제성이나 투표수로나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은 착한 오디션이란 명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스토리텔링이 꼭 악마의 편집법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서사가 곧 자극인 것도, 착한 오디션과 간절함이 동의어인 것도 아니다. 아이돌 콘텐트는 생동하는 서사, 세계관이 핵심이다. 아이돌 문화를 적극 소비하는 팬덤을 넘어선 대중, 시청자들의 몰입을 보다 더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절실함을 내세우는 착한 서바이벌의 공식과 무대로 승부를 본다는 담백함을 넘어선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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