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사에 남을 ‘골목식당’ 문 닫은 백종원의 다음 스텝이 궁금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10년대 후반 한국 예능의 주인공은 유재석도 나영석도 아닌 백종원이다. 2015년 집밥 열풍을 일으킨 이래 의미와 재미, 원천 콘텐츠와 캐릭터, 개인적 효용과 사회적 영향력, 휴머니즘과 진정성을 보장하는 방송인은 백종원이 유일하다. 쿡방의 시대가 지나가고 나서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거의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호감도와 인지도를 쌓아올렸다. 김구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방송쟁이’가 또 없다.

넉넉하고 푸짐한 먹성 좋은 캐릭터가 풀어내는 놀랍도록 해박한 지식과 친서민적이면서도 유용한 음식 콘텐츠는 백종원만의 브랜드가 됐다. 무엇보다 방송이 끼치는 영향력이란 측면에서 동시대 나온 모든 예능 콘텐츠들을 압도한다. 백종원의 방송은 ‘먹방’과 ‘쿡방’을 넘어 우리나라 식탁 문화의 일부가 되었고, 위생관념 등 요식업자들이 가져야 하는 기본소양과 덕목을 정립하면서 외식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이번에 종영을 맞이한 <골목식당>은 이러한 백종원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 중 가장 백종원다운, 백종원이기에 가능했던 백종원 브랜드의 핵심 콘텐츠다. 업계 최고의 영향력을 가졌다고 해도 무방한 백종원이 간편한 차림으로 골목의 작은 가게에 찾아가 컨설팅과 마케팅을 한다. 방송의 힘과 인지도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심지어 너무 사정이 어려우면 제작비를 들여 고쳐준다! 사장님은 장사가 잘돼서 좋고, 손님은 맛 좋은 음식을 접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골목은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활기가 돈다.

<골목식당>은 어떤 상황에서도 답을 찾는 백종원의 척척 솔루션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의 해박함과 촌철살인의 솔루션을 보고 있노라면 짜릿하다. 무언가 변화하고 더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긍정 에너지의 전파다. 그런데 인간개조 프로젝트, 개과천선 스토리가 펼쳐진 ‘포방터 시장’편을 기점으로 이 에너지는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온 이들에게 ‘기회’가 있다는 교훈을 담은 우화 혹은 드라마로 진화했다. 여기서 핵심은 이 우화의 배경 무대가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공간이란 점이다. 시청자들은 단순히 TV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골목으로, 가게로 찾아감으로써 방송이 이뤄지는 공간과 이야기에 직접 들어가서 경험할 수가 있었다.

<골목식당>이 오랫동안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현실이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 자신을 투영해보는 대리만족 때문이며, 우리사회에 희망을 건네는 선한 영향력에 대한 지지에서 나온다. 따라서 “장사를 통해 삶을 알려준 스승”이란 홍탁집 사장의 말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다. 사람들은 메뉴 개발이 아니라 백종원이 막막한 현실을 뜯어고쳐나가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찌 보면 예능 프로그램 속 이야기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를 인생역전 스토리이며,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변화였다. 폐업을 고민하던 동네 골목 작은 식당에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출연한 사장님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돈가스 먹겠다고 제주도까지 가서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는 현상은 예능사에 기록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다.

사실상,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이 주장하는 바는 매우 단순하다.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요령을 피우지 않고, 정직하게, 감당할 수 있는 몫만 해내는 것이 느리고 답답해보여도 결국엔 성공하는 길이라는 복음이다. 따라서 이 기회를 얼마나 단단히 부여잡는지에 따라 ‘연돈’ 사장님이 될 수도, 6개월 후 아무도 기억 못하는 ‘빌런’이 될 수도 있다. 이 또한 실제로 갈린다. 천운을 받아낼 그릇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끈한 방송이 아닌 울퉁불퉁한 현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4년간 동일한 이야기가 반복되다보니 솔루션에 대한 기대치가 아무래도 줄어들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솔루션이 아니라 솔루션 과정, 즉 드라마가 익숙해졌다. 중간중간 긴급 점검 등을 통해 반가운 얼굴도 만나는 등 변화를 꾀하긴 했지만 권선징악처럼 뻔한 스토리가 기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매번 색다른 캐릭터와 스토리가 필요한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름다운 동화도 계속 보면 질리는 법이다. <골목식당>의 종영은 불가피했지만 아쉬운 건 백종원의 퇴장 방식이다. 진짜 장사꾼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판다고 한다. 소비자는 돈을 기꺼운 마음에 지불하게 되고, 쓰면서 기분이 좋다. 백종원은 누구보다 이런 생리를 잘 아는 사업가다. 아마도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큰 그림 위에서 방송 활동 이후 그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올해 지상파, 케이블, OTT에서 백종원 이름을 달고 방송된 프로그램만 무려 7편이었다. 모두 한식의 세계화, 전통주 소개 등등 각기 다른 의미부여와 선한 영향력을 내세웠으나 대부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백종원은 쌓인 기획을 떨이하듯 쏟아내면서 방송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확장하려고 했던 것일까. 백종원은 선한 의도를 담은 진정성과 인간적 매력을 통해 예능이란 무대 위에서도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마음을 얻었다. 안 그래도 반복되어온 와중에 백종원이란 브랜드의 공급 총량이 대폭 늘어나면서 그만큼 선한 영향력의 감동이 하락했다. <골목식당>은 백종원이란 브랜드를 정립했으며, 선한 영향력이란 새로운 예능 작법을 널리 선보였다.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바탕으로 예능에서 요구되는 진정성의 단계를 한 차원 더 이끌어낸 기념비적인 예능이다. 또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과 추억을 선사하고 교육을 담당했던 프로그램이다. 이런 그의 대표작이 긴 침체 끝에 어수선한 흐름 속에서 종영되어 아쉽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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