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힐’과 ‘서른, 아홉’, 희비교차 한 까닭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서른, 아홉>과 tvN <킬힐> 모두 여성들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하지만 두 드라마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서른, 아홉>은 차미조(손예진), 정찬영(전미도), 장주희(김지현) 세 친구의 우정을 중심으로, 정찬영의 시한부 판정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반면 <킬힐>은 홈쇼핑에서 벌어지는 쇼호스트 여성들 세계의 치열한 신경전을 그린다. 우현(김하늘), 모란(이혜영), 옥선(김성령)은 각자 꿍꿍이를 숨긴 채 서로를 바라본다.

일단 이야기 자체만 봤을 때는 <킬힐>이 훨씬 더 흥미롭고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시청률이나 호응도에서 <서른, 아홉>이 <킬힐>보다 앞선다. 그 이유는 뭘까? 사실 두 드라마 모두 만듦새가 빼어난 이야기는 아니다. 디테일이 풍성하지도 않고, 흥미롭거나 새로운 사건 전개도 없다. 둘 다 익숙한 방식을 답습해간다.

<서른, 아홉>의 경우 정찬영의 시한부와 입양아인 차미조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설정 외에 특별한 전개를 준비하지 않은 티가 난다. 그 때문에 이야기는 가끔 맥없이 끊어지고, 일상적인 장면들이 파편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대신에 <서른, 아홉>은 아무래도 자극적인 소스가 부족하다 느껴졌는지 지나가는 인물들을 과하게 자극적으로 만들어낸다. 그 결과 김선우(연우진)와 김소원(안소희)의 아버지는 쓸데없이 악랄한 대사를 길게 내뱉으며(중견배우의 연기도 어색해서 더 대사가 겉돈다), 장주희가 일하는 백화점의 진상 고객은 너무 과할 정도로 날을 세운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이 사건 전개와 맞물리는 게 아니라, 그냥 뜬금없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뭔가 드라마의 전체 구조가 삐걱대는 것처럼 다가온다.

또한 <서른, 아홉>은 시한부와 여자들의 우정, 거기에 불륜 이야기라는 흔한 소재를 흔한 방식으로 펼쳐놓는다. 물론 행복한 시한부를 위한 친구들의 우정이라는 방식은 눈에 띈다. 다만 그 소재를 새롭거나 깊이 있게 보여줬는가는 의문이 드는 지점 있다.

<킬힐>은 홈쇼핑을 세계로 한 소비와 욕망의 거대한 세계를 그리려는 욕심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격이랄까? 전개되는 이야기는 딱히 흥미롭지 않다. 홈쇼핑의 세계를 밀도 있게 다룬 것도 아니고, 세 여주인공이 벌이는 신경전 속의 사건이 흥미롭지도 않다. 그냥 기싸움의 수준에서 멈춰버리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여기에 주인공들 외에 영화감독 지망생이던 PD 성우(문지인)의 이야기 같은 딱히 재미도 없고, 드라마의 흐름도 깨는 캐릭터의 서사까지 신경을 써준다. 이렇게 자극적인 드라마가 이렇게 지루하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킬힐>은 막장 드라마의 세계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티가 난다. 여성 캐릭터들의 말싸움이란, 사뭇 김수현 작가에서부터 임성한 작가에 이르기까지 부드럽게 시작해 매섭게 쏘아붙이며 서로 간에 감정의 앙금이 폭죽처럼 터지는 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킬힐>의 기싸움은 너무 드라이하고 시시하고 따분하다. 머리끄덩이를 잡을 필요는 없다. 날선 말의 화려한 향연이 펼쳐지거나, 그게 아니라면 사건의 전개를 암시하는 의미 있는 대사로라도 말싸움을 해야 한다. 하지만 <킬힐>의 말싸움은 그냥 센 척하다 피시식 꺼져버린다.

이처럼 두 드라마 모두 아쉬운 지점들이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킬힐>에는 없고 <서른, 아홉>에는 있는 것이 있다. <킬힐>은 감정 이입을 할 지점이 거의 없다. 이 부분은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인지 김하늘과 김성령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모두 맥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혜영만이 본인의 카리스마로 심심한 대사들을 멋지게 디렉팅한다. 허나 캐릭터 자체가 진행될수록 재미없어지는데 배우가 멋있게 포장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반면 <서른, 아홉>은 로맨스, 우정, 시한부, 고아의 설정 모두 진부하지만, 배우들이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이야기에 넘실거린다. 또 <서른, 아홉>은 비록 은근히 삶과 죽음, 우정과 사랑에 대한 통찰이 희미하게 드러나기는 한다. 거기에 세 여주인공의 성격 역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성격이어서 시청자와 배우 모두 감정이입이 쉽다.

그렇기에 <서른, 아홉>은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 세 배우들이 시청자가 공감할 감정 연기를 풍성하게 보여줄 지점들이 많다. 그 때문에 그리 흥미롭지 않은 전개에도 불구하고 시시껄렁하고 소소한 우정 장면에서도 울고, 웃으며 볼 수 있으며, 감정이 치솟는 장면에서 눈물샘을 터뜨리는 순간들도 굉장히 많다. 여기에 정찬영의 상대역인 김진석 역의 이무생이 보여주는 연기도 상당하다. 언뜻 보기엔 무뚝뚝한 남자가 이렇게 눈물로 슬픔을 그려내는 지점은 한국드라마에서 흔히 보기 힘든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이처럼 <서른, 아홉>은 이야기의 탄탄함과는 별개로 안정적인 인기를 끌어갈 감성 공감대의 흡인력은 존재했던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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