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힐’, 이런 대본과 연출로 시청자 마음 살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수목드라마 <킬힐>은 캐스팅만 봐도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멜로 퀸 김하늘에 카리스마 이혜영 게다가 워너비 김성령까지 캐스팅한 드라마니 말이다. 하지만 첫 회를 본 후 시청자들 마음은 오락가락했을 게다. 과연 이 드라마를 계속 봐야할까 말까.

홈쇼핑업체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의 성공을 위한 끝없는 욕망의 질주. 우현(김하늘)은 그 질주 직전, 위기에 처한 인물이다. 등장부터 누구를 따라 호텔에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남자와 함께 복도를 걷는 우현은 맨발이다. 아마도 비를 맞고 있었던 듯, 머리가 젖어있고 남자의 양복 상의를 어깨에 걸치고 있다. 그리고 우현의 하이힐을 남자가 들고 걸어간다.

이 장면은 <킬힐>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어느 정도 예고해준다. 우현은 바닥으로 추락중이고 그래서 어떻게든 일어서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함께 호텔로 걸어간 그 남자가 동아줄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우현은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망설인다. 손에 끼워져 있는 결혼반지를 의식하며. 그러다 욕실에서 나와 그 남자를 향해 다가간다. 그건 이제 우현이 지켜야할 것들을 참아내며 지키기 보다는 욕망을 향해 나갈 것이라는 예고다.

한 때 잘 나갔던 쇼호스트지만 이제 상품이 조기매진 되면 남는 시간을 때우는 이른바 ‘도깨비방송’에서 화장지를 파는 입장이 됐다. 별 실력도 없는 후배 쇼호스트 은나라(신주아)에게 ‘거품’이라는 소리를 듣고, 상품기획 MD인 안나(김효선)에게도 대놓고 무시당한다. 심지어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원했지만, 이마저 그 회사 측에서 ‘한물 간 쇼호스트’ 취급을 받으며 거절당한다.

집구석도 바닥이다. 남편 도일(김진우)은 일자리도 없어 친구 식당에서 간간이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는 처지고, 시어머니는 큰 아들의 사업 투자에 밑 빠진 독 물붓기로 도와달라며 돈을 요구한다. 결국 참다 참다 “이 거지같은 호구짓”이라는 말까지 하며 남편에 대한 울분을 터트린 우현은 시어머니에게 뺨까지 맞는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우현은 안나와 한바탕 싸운 후 걸어 나오며 쓰러진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쓰러진 우현을 보며 UNI의 전무 모란(이혜영)이 다가와 묘한 웃음을 짓는다. 그가 누군가를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살짝 들어간 회상 신에는 UNI 사장 현욱(김재철)이 누군가 실려가는 것을 보며 오열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아마도 모란은 현욱이 오열했던 그 대상과 우현이 닮았다고 생각했을 게다. 그가 우현에게 손을 내미는 건 그래서 그를 도우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를 이용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을 두고 유추해보면 첫 장면에 호텔에 우현과 함께 들어간 남자는 바로 현욱이 아닐까. 그런 선택으로 이끈 인물은 모란일 가능성이 높고.

<킬힐> 첫 회는 추락하다 모란의 유혹적인 손을 잡는 우현과, 현욱의 어린 아내 신애(한수연)에게도 불려 다니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영 불만인데다 어딘가 더 큰 야심을 숨기고 있는 모란을 보여줬다. 그리고 향후에는 모란과 친한 언니 동생 사이인 옥선(김성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남편까지 둔 남 부러울 것 없는 인물이지만 그래도 계속 쇼호스트로서의 일을 하고픈 그 역시 어떤 문제를 마주하게 될 것이고.

일의 영역에 있어서 저마다의 야심과 욕망을 두고 이전투구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사실 그리 새롭게 느껴지진 않는 대본이다. 가족까지 박차고 나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선을 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짜릿하긴 하지만, 자칫 너무 틀에 박힌 스토리로 보이는 면이 있어서다. 하지만 대본보다 더 아쉬운 건 연출이다. 이 세 여성들이 어떤 성공을 위해 맞붙는 이야기라면, 첫 회에 이들이 일하는 공간이나 그 성공에 대한 선망 같은 것들이 충분히 연출을 통해 보여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아쉽게도 첫 회의 연출은 그런 선망을 만들어낼 만큼 유혹적으로 그려지지 못했다.

너무 평범해 보이는 직장의 모습을 그 곳에서 일하는 인물들이 걸어가는 장면이나 이들이 나누는 대사들이 너무 평이하게 느껴진다. 특히 김하늘, 이혜영, 김성령 같은 배우들이 치고나가는 연기를 받쳐주는 주변인물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서준범 PD 역할의 정의제나, 현욱 대표의 만만찮은 어린 아내인 신애 역할의 한수연, 우현의 남편 도일 역할의 김진우, 그밖에도 은나라 역할의 신주아 등등 주변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너무 약하게 느껴진다. 드라마의 질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들이 만들어준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물론 <킬힐>이 갖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즉 2회부터 배경설명은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인물들 간의 대결이 이뤄지며, 치고받는 상황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면 첫 회의 아쉬움을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게다. 또한 첫 회에서도 거의 독보적인 아우라를 보이는 이혜영의 힘을 믿어볼 만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가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기대감 또한 단언하기 어려울 듯싶다. 기대감이 컸던지 첫 방이 남긴 여운은 여전히 오락가락하다. 계속 볼지 말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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