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이무생·손예진의 통념 넘는 사랑과 우정의 서사

[엔터미디어=정덕현] 이것은 불륜 미화일까. JTBC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에 등장하는 정찬영(전미도)과 김진석(이무생)의 관계는 그 자체로 보면 불륜이다. 사정이 어떻든 김진석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 한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유부남이고 정찬영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만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정을 들어보면 그저 불륜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 김진석과 정찬영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관계를 이어가던 중에 강선주(송민지)가 아이를 가진 채 나타나 김진석은 그와 결혼했다. 그런데 함께 살던 중 알게 됐다. 그 아이가 김진석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걸. 결국 강선주가 김진석을 속여 결혼한 셈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김진석은 아이를 위해 쉽사리 이 사실을 꺼내 놓지 못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였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아이를 위해 살아보려 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변수가 생겼다. 정찬영이 시한부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래서 강선주에게 사실을 꺼내놓고 이혼을 요구한다. 아이까지 속여 결혼을 한 셈이니 그에게도 귀책사유가 없다 말할 수는 없다. 또 자기 아이지만 그다지 신경 써 챙기지 않는 강선주에게 김진석은 아이도 자신이 챙길 거라고 말한다. 친자는 아니지만 제 손을 키운 아이라는 것.

정찬영은 시한부라는 사실을 안 후 이제 김진석을 밀어내는 중이다. 집 나온 그를 다시 집으로 돌아 보내는 것이 그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무작정 짐을 싸들고 찾아온 김진석이 밀어내는 정찬영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가 마음을 후벼 판다. “찬영아 나 못가. 너 가도 나 같이 못가.” 그러면서 그의 옆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내가 부탁한다. 그냥 네 옆에 있으면서 없는 사람 이렇게 있을게. 그리고 네가 해달라는 것만 딱 해주고 도움 달라고 할 때만 또 딱 도움을 딱 주고 없는 사람처럼 딱 있고 또... 그냥 네 옆에서 숨만 쉬고 있을 게. 아냐 숨도 안 쉬고 있을게.”

김진석이 선을 넘어 하고 있는 이 사랑은 어딘가 불륜처럼 보이지 않는 면이 있다. 그건 심지어 순애보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 인물의 이런 행보에 대해 공감 가는 구석이 있어서다. 자신을 속여 결혼까지 한 아내를,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만 아이를 가졌다는 걸로 발목으로 잡아 결혼을 하게 한 아내를 그 누가 선선히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까.

게다가 김진석이 정찬영에게 보이는 사랑은 불륜에 늘 따라오는 어떤 집착이나 욕망보다는 희생과 인간애에 가깝다. 그는 정찬영에게 ‘없는 사람처럼 있겠다’고 할 정도로 바라는 게 없다. 그가 바라는 건 자신이 무언가를 해주고픈 걸 하게 해주는 것이다. 김진석이 정찬영에게 하는 말들과 행동들은 그래서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물론 시한부라는 절실한 상황이 전제되어 있지만 불륜이라는 통념 또한 넘어서는 사랑으로 그려져서다.

이런 면은 <서른, 아홉>이 그리는 우정, 워맨스에서도 똑같이 보여진다. “그건 불륜”이라며 정찬영에게 갖가지 차가운 말을 쏟아냈던 차미조(손예진)는 친구가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고는 찾아온 찬영의 엄마 김경애(이지현)에게 김진석이 유부남이라는 걸 밝히지 못한다. 그는 여전히 두 사람이 만나는 걸 탐탁찮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그런 신념조차 무너뜨리는 건 친구가 우선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찬영의 엄마가 김진석을 딸의 남자친구라 생각해 즐거워할 때, 갑자기 찾아온 강선주를 막아 세우고 맨발로 밖으로 끌어낸 후 무릎까지 꿇으며 제발 이번만은 돌아가 달라고 애원한다. ‘나는 지켜야 했다. 한 여름밤의 꿈 같은 순간이라고 해도 찬영이와 진석 오빠와 엄마의 시간을 지켜야 했다. 곧 부서지겠지만 한 번은 딸의 남자친구에게 밥을 지어주는 엄마의 시간을 지켜야 했다. 한 번은 엄마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한 시간을 지켜야 했다. 신념. 정직하자는 나의 신념을 버리고 지켜야만 했다.’ 통념의 뛰어넘는 김진석의 사랑과 차미조의 우정. 그래서 더 절절해지는 <서른, 아홉>의 서사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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