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았다고 부모인가... 친모 관계 정리하는 ‘서른, 아홉’ 손예진

[엔터미디어=정덕현] ‘결자해지. 일은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사람과 내가 부모와 자식인 것이 결이라면 해지, 풀어야 하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 한다.’ JTBC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에서 차미조(손예진)는 교도소의 친모를 찾아가며 그렇게 생각한다. 그건 친모와의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뜻이다.

친모가 사기 전과로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갔던 차미조는 너무나 속물적이고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친모의 말들에 실망한다. 조금은 애틋한 말들을 상상했던 차미조는 “쌍꺼풀 한 거니?”라고 묻는 친모를 보며 황당해한다. 직업이 의사라고 하자 반색하는 친모는 딸이 잘 살고 있는 것에 반색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의사 엄마가 됐다는 사실을 더 좋아한다. 게다가 “오랜만에 널 보니까”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는다. ‘오랜만’이라니. 이제 서른아홉이 되어서야 만나게 됐는데.

하지만 이날 친모를 찾아간 일은 차미조에게 열어보지 말아야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은 일들을 만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병원으로 전화를 걸고, 심지어 이상한 남자가 병원으로 찾아와 자신이 친모에게 받을 돈이 있다며 은근히 돈을 요구한다. 친모가 딸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도무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한 차미조는 결국 양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런데 거기서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친모가 양부모에게도 돈을 요구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렇지만 양부모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딸이 받을 상처만을 걱정한다. 너무나 미안한 차미조는 눈물을 흘리며 양부모에게 말한다. “엄마 고맙고 미안해.”

<서른, 아홉>은 유독 클리셰가 많은 드라마다. 시한부, 불륜에 이어 출생의 비밀 코드도 들어 있다. 그런데 그 클리셰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는 면이 있다. 보통의 출생의 비밀 코드라면, 뒤늦게 찾은 친부모에 의해 신데렐라가 되는 스토리로 주로 활용되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친부모와 양부모의 상황이 역전되어 있다. 드라마는 이 역전된 출생의 비밀 코드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낳기만 했다고 부모인가. 사랑으로 키워준 이가 진짜 부모이지.

친모는 교도소에 있지만, 차미조는 엄마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양어머니를 진심으로 엄마라 부르고, 친구 장주희(김지현)의 엄마나 정찬영(전미도)의 엄마도 엄마라고 부른다. 모두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차미조에게는 친모 이상으로 엄마 같은 살가운 정을 주고받은 인물들이다.

물론 드라마는 정반대로 입양을 했다고 해서 모두 차미조의 양부모처럼 진짜 엄마, 아빠가 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김선우(연우진)의 아버지를 통해 그려낸다. 그는 입양했던 김소원(안소희)이 유산이라도 가져갈까 거리를 두고 결국 파양을 선택하게 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김선우가 만나는 차미조 역시 입양아 출신이라는 사실을 꺼려하며 아들과 헤어질 것을 은근히 종용한다.

하지만 김선우는 그의 아버지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이미 파양되어 남남이 되었지만 김소원을 여전히 친동생으로 여기고 챙긴다. 그런 김선우의 마음 씀씀이는 차미조가 그를 사랑하게 된 중요한 한 요소가 됐을 게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보다 혈연은 아니어도 진짜 정을 나눈 관계가 이 시대의 진짜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이 드라마는 하고 있다.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 양부모와 친부모가 역전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SBS <그 해 우리는>에서 최웅(최우식)이 더할 나위 없는 양부모 최호(박원상)와 이연옥(서정연)을 만나 진짜 가족 그 이상의 끈끈한 관계를 보여준 사례가 있다. 그 작품에서도 친아버지는 어린 최웅을 길바닥에 버리고 간 인물이다.

한때 가족주의 시대에 혈연, 핏줄은 그 무엇보다 상위 가치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 무엇도 넘을 수 없는 천륜으로 이어진 관계.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들이 핏줄보다 진짜 사랑으로 관계를 맺는 이들을 이 시대의 진정한 가족으로 그려내고 있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시대는 바뀌고 있다. 낳았다고 부모가 아니다. 사랑으로 키워준 이가 진짜 부모이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