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씨 추앙합니다... 본격화된 ‘나의 해방일지’식 멜로 아니 추앙

[엔터미디어=정덕현] “난 그 말을 이해 못해. 심장 뛰게 좋다는 말. 그 정도로 좋았던 적이 없었단 말이 아니고 그렇게 좋았던 적도 없지만 내가 심장이 막 뛸 때 다 안 좋을 때던데. 당황했을 때, 화났을 때, 백 미터 달리기 전. 한 번도 좋아서 심장이 뛴 적이 없어. 정말 좋다 싶을 땐 반대로 심장이 느리게 가는 거 같던데? 뭔가 풀려난 것 같고. 처음으로 심장이 긴장을 안 한다는 느낌.”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김지원)은 이른바 ‘심장이 뛴다’는 말이 가진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말한다. 흔히 좋아하면 심장이 뛴다 말하지만 사실은 거꾸로가 아니냐는 것. 오히려 차분하고 긴장하지 않는 해방감을 줘야 그것이 사랑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건 아마도 박해영 작가가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담으려는 사랑의 진정한 풍경이고 확장해서 해석하면 좋은 인간관계의 모습이며, 이 드라마식으로 말하면 ‘누군가를 추앙하는 법’이 아닐까 싶다.

미정의 그런 이야기를 들은 창희(이민기)는 ‘개똥철학’을 하듯 친구에게 심장이 뛰는 건 사랑이 아니라 갈망 때문이라는 걸 설파한다. “내 건 그냥 내 건가보다 해. 너 월급 들어오는데 심장 뛰는 거 봤어? 내 건데 왜 뛰어? 내게 아닌데 아닌 걸 알겠는데 잘 하면 가질 수 있겠다 싶을 때 그 때 뛰는 거야 심장이.” 그러면서 그는 삶에 따라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나뉘어진 현실에서 사랑 같은 인간관계에서 심장이 뛰는 이유는 갈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너 봐. 남녀 관계도 똑같다. 결혼한 사람들 중에 첫눈에 제짝인 줄 알았다, 이런 사람들 있잖아. 얘기 들어보면 그냥 보자마자 음 너구나 이런대. 막 심장이 막 뛰는 게 아니고 그냥 음 너구나. 그냥 내 건거야. 인연은 자연스러워. 갈망할 게 없어. 내 건데 왜 갈망해? 너 부자들이 명품 갈망하는 거 봤어? 그냥 사지? 내가 뭔가 죽어라 갈망할 땐 저 깊은 곳에서 이미 영혼이 알고 있는 거야. 내게 아니란 걸. 갖고 싶은데 아닌 걸 아니까 미치는 거야. 아 그래서 내가 차를 못 모는 거네...”

<나의 해방일지>는 갈망하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위치에 선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것은 경기도 변두리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도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많은 것을 소외받으며 살아가는 창희, 미정, 기정(이엘) 삼남매와 그 가족들로 대변되어 그려진다. 그것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어 살게 된 사회 시스템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의 삶 자체가 태생적으로 그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삼남매는 도시의 삶을 갈망한다. 창희 말대로라면 그것이 가질 수 없다는 걸 영혼이 알고 있어서다.

물론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갈망의 대상이었던 적도 있다. 기정은 태훈(이기우)이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고 그 때 양팔을 잃은 듯한 상처를 겪었다며 이혼한 자신의 딸도 그런 느낌일까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에 대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뭣도 모르게 막 내뱉었던 말들을 후회한다. 술자리에서 옆자리에 태훈과 딸이 앉아 있는 것도 모른 채, 함부로 ‘애 딸린 홀아비’ 운운했던 말이 그것이다.

창희는 여자들이 자기보다 아래 있는 남자가 자기를 좋다고 하면 죽일 듯이 난리를 친다며, 기정이 그간 그를 갈망했던 남자들을 찼던 이야기를 한다. “염기정. 올 겨울엔 아무나 사랑? 됐다 그래 못해. 여태 아무 일 없었는데 난데없이 괜찮은 남자가 대쉬해 올 리가 있겠냐? 그럼 자기가 먼저 진짜 아무나든 뭐든 들이대야 되는데 그걸 할 수 있겠냐구. 지가 한 짓이 있는데 혹시 잘못 말했다가 남자한테 총 맞아 죽을 텐데. 그니까 다 지가 싼 똥인 거야.”

마침 그 이야기를 자기 방에서 숨어 들은 기정은 그날 밤 어둠 속에서 기도한다. “잘못했습니다. 건방졌습니다. 무례했습니다. 그 옛날 저한테 고백하셨다가 욕먹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저 같은 걸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재차 말한다.

<나의 해방일지>는 누군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인가를 삼남매가 전하는 서라운드 스토리로 들려준다. 미정은 ‘뭔가 풀려난 것 같고’ 긴장을 안 하는 그 느낌이 사랑이라고 하고, 창희는 영혼이 가질 수 없다 말해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사랑이 아닌 갈망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정은 그렇게 사람도 위 아래로 구분지어 놓고 자기보다 못하다 싶은 사람이 대쉬하는 걸 거부해온 자신을 후회한다. 그러면서 누군가 좋아해준, 아니 추앙해준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나의 해방일지>가 “날 추앙해요”라며 “사랑으론 부족하다”고 미정의 입을 통해 말한 건 아마도 이 드라마가 다루려는 사랑 혹은 진정한 관계가 갈망이 동반되어 심장이 뛰는 그런 세속적인 사랑과 관계와는 다르다는 걸 말하기 위함이 아닐까. 작가는 그런 사랑으로는 온전히 한 존재가 채워지거나 충만해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보다는 갈망하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말하고 있다. 미정과 구씨(손석구)의 사랑이 그렇다.

얼굴 붉히는 것도 힘들어 대출까지 해서 돈을 빌려줬지만 헤어지고는 입을 닦아버린 전 남친과 싸우지도 못하는 미정은 구씨에게는 마구 속에 있는 말들을 쏟아내며 얼굴을 붉힌다. 그런 미정에게 구씨가 “나한텐 잘만 붉힌다”고 말하자 미정의 대꾸가 흥미롭다. “넌 날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뭔 짓을 못해? 그러니까 넌 이런 등신 같은 나를 추앙해서, 자뻑에 빠질 정도로 자신감 만땅 충전돼서, 그 놈한테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야무지게 할 말 다할 수 있게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누가 알까 조마조마하지 않고 다 까발려져도 눈치 안보고 살 수 있게 날 추앙하라고!”

이건 사실상 미정이 구씨에게 털어 놓는 사랑고백에 가깝다. 단지 표현이 다르고 그 사랑법이 다를 뿐이다. 그러자 구씨 역시 미정식의 ‘추앙법’에 맞춘 사랑고백을 한다. “너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면 깜짝 놀란다. 나 진짜 무서운 놈이거든? 옆구리에 칼이 들어와도 꿈쩍 안 해. 근데 넌 날 쫄게 해. 니가 눈앞에 보이면 긴장해. 그게 병신 같아서 짜증나. 짜증나는데 자꾸 기다려. 응? 알아라 좀. 염미정. 너 자신을 알라고.”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추앙해 편안해지는 사랑. 그래서 뭐든 다 털어놓을 수 있고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랑 혹은 삶의 관계. <나의 해방일지>는 세속적이고 물신화된 사랑과 삶의 관계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하고 있다.

“구찌가 아니라 구씨.” “손석구씨 추앙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유독 구씨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인 건 이러한 색다른(추앙 같은) 관계를 제안하는 미정에게 어색한 듯 잘 따라주고 동조해주는 모습 때문이다. 어딘가 진정한 관계가 사라진 물신화된 세상에서 구씨 같은 인물이 우리를 해방시켜줄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이것은 또한 구씨와 미정이 보여주는 <나의 해방일지>의 색다른 멜로 혹은 추앙이 조금씩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근거리기보다는 갈수록 편안해지는 관계에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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