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리’ 가해자의 자살, 사죄 아닌 2차 가해가 되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솔직히 쟤가 막 몰래 동영상 찍고 협박하고 그런 애는 아니었잖아.” “그렇지 그 여자 혹시 꽃뱀 같은 거 아니었었을까?” 여론의 뭇매를 맞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의대생 지승규에 대해 학생들은 그렇게 수군거렸다. 학교에는 그를 추모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메모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그저 평범한 의대생이었다면 이런 메모들이 납득되는 일일 수 있었겠지만, 지승규는 헤어진 여자 친구 남궁솔에게 사적 동영상 유포 협박을 지속적으로 했고 그래서 남궁솔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가해자였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지승규가 저지른 죄는 덮어지거나 사실이 아닌 것인 양 치부되었다. 안타깝게도 먼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남궁솔의 죽음은 지승규의 죽음으로 가려졌다.

이것은 SBS 월화드라마 <트롤리>가 보여주는 ‘가해자의 자살이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 가하는 2차 가해’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과연 가해자가 자살했다고 모든 게 묻히는 게 정당한 일일까. 학교에서 학생들이 수군대는 그 소리와 추모 공간의 메모들을 보고 남궁솔의 할머니 조귀순(원미원)은 절망한다. 그리고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그렇게라도 손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조귀순과 그의 손녀에게 닥친 이 비극을 김혜주(김현주)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아파한다. 자주 찾아가던 기름집 할머니의 손녀에게 벌어진 비극 때문이라 보기에는 너무 과한 공감으로 보였지만,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등장한다. 그건 김혜주 역시 비슷한 일을 과거에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절친 진승희(류현경)의 쌍둥이 남매 진승호(이민재)에 의해 성추행을 당했던 것. 명문대 법대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진승호는 김혜주에게 고백했지만 거절당하자 이성을 잃었다.

앞길이 구만리 같던 아들의 죄를 덮기 위해 쌍둥이의 모친 이유신(길해연)은 묵인의 대가로 대학 장학금을 약속했고 순간 김혜주 역시 흔들렸지만, 집밖에서 “돈이 필요해서” 그런 거였냐며 “거지같은 고아 새끼”라고 진승호가 쏘아붙이자, 결국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경찰서에 신고한다. 그러자 그 일은 예기치 않게 진승호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등장하는 사건을 다루는 서사들은 대부분 가해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트롤리>는 그것으로 결코 사건은 끝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진짜 사건의 종결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래야 가해자의 죽음이 미화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생기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가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은 그래서 결코 피해자에 대한 사죄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이상 사건의 수사가 종결됨으로써 그 진상이 묻히고 그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혜주가 이름까지 개명하고 자신이 살았던 영산을 떠나와 죽은 듯이 살아가게 된 이유는 가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어디에도 항변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애써 외면하려 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는 가해자인 진승호의 극단적인 선택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신도 피해자라는 걸 진승희에게 강변한다. “그건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사고야. 하지만 나도 그 불운한 사고의 피해자야. 승호가 죽어서 진실을 밝힐 기회를 나는 잃었고 나는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어.”

“모두 알다시피 현재는 고소를 당한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해서 수사가 더 이상 이뤄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범죄의 경우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사건을 해서 사건이 종결되어 버리면 그로인해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지 못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가 다수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죠.” 김혜주의 남편 남중도 의원의 이 말은 피해자와 유족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법의 딜레마를 말해준다.

사실 신문에는 종종 어떤 사건의 피의자가 심경을 적은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들이 등장한다. 그걸로 마치 사건은 종결된 것처럼 처리되고 받아들여지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걸 <트롤리>는 보여준다. 누군가의 죽음이 아니라 진정한 진상 규명만이 사건의 종결이 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2차 가해가 발생하고, 그것이 또 다른 피해를 만들 수 있다는 걸 <트롤리>는 김혜주라는 인물을 통해 강변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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