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덕현] 피해자가 가해자 취급을 받고 가해자는 피해자처럼 행동한다. SBS 월화드라마 <트롤리>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의 정황이다. 사적인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과 스토킹 피해를 당하던 한 여성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가해자는 장래가 촉망받는 의대생이라는 이유로 풀려난다. 촉망받고 올곧은 정의를 부르짖는 정치인 남중도(박희순)는 이런 일이 또 벌어지면 안 된다며 이 사건을 공개저격하고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법 강화를 외치고, 이로써 여론이 들끓자 의대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누구이고 가해자는 누구일까. 결국 가해자는 의대생이고 피해자는 죽은 여성과 그 유가족들이다. 의대생이 악플 속에서 자살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의 ‘잘못된 선택’일 뿐이다. 나아가 죄를 짓고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공권력이 그를 자살로까지 몰아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남중도는 정적들과 의대생의 부모로부터 ‘살인자’ 취급을 받는다. 그가 공개저격을 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거다. 남중도는 할 일을 한 것이 맞지만, 죽은 의대생의 빈소를 찾아가자 그 부모의 질타를 받는다.

가해자가 피해자처럼 행동하고 피해자가 가해자 취급을 받는 이러한 상황은 남중도의 아내 김혜주(김현주)에게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고교 시절 영산에서 이유신(길해연)의 아들이자 진승희(류현경)의 쌍둥이 진승호에 의해 성폭행을 당할 뻔 했던 김혜주는 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이 사실 때문에 진승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본래 잘못은 진승호가 한 것이지만, 그의 엄마 이유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서울대 법대에 막 합격한 아들을 잃은 슬픔만이 그의 눈을 가리고, 결국 김혜주가 무고를 해 아들이 죽게 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로써 김혜주는 졸지에 가해자가 되어버리고, 결국 그곳을 떠나 이름까지 개명해 조용히 살아간다.

하지만 국회의원인 남편을 둔 김혜주는 결국 과거에서 도망칠 수는 없게 된다. 남중도의 아들 장례식 장면을 TV로 보던 진승희가 그 옆에 서 있는 김혜주를 알아보고 찾아온 것. 그는 진승호가 죽은 후 지금껏 그 슬픔에서 한 발작도 벗어나지 못한 엄마 이유신에게 김혜주가 무릎꿇고 사과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지 않으면 김혜주의 과거사를 폭로해 그의 남편의 정치인생을 끝장내겠다는 협박을 하면서.

결국 이 상황에서도 김혜주는 피해자다. 그리고 가해자는 죽은 진승호와 그의 엄마 이유신이다. 진승희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김혜주를 몰아세우지만, 그 역시 전후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협박을 하는 가해자일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김혜주는 어쩔 수 없이 진승희의 집을 찾아가 그 엄마 앞에 사죄하려 한다. 물론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 남중도가 이를 막아 세우려 하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에 김혜주의 이런 행동은 남편을 위한 일이라고는 해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물론 <트롤리>가 그리고 있는 피해자가 심지어 상대를 무고한 가해자 취급을 받고, 가해자가 무고를 당한 피해자인 척 하는 건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특히 가해자의 집안이 부와 권력을 갖고 있는 경우, 이런 일들은 피해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2차 피해를 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이라고 해도 <트롤리>라는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김혜주라는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소극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현실의 문제를 리얼하게 그려내겠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드라마로서 이런 캐릭터는 그다지 매력적일 수가 없다. 언제쯤 김혜주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가해자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까.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건 바로 그런 면면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