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리’의 흥미로운 질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엔터미디어=정덕현] 정의를 위한 선택이지만, 그 결과에 의해 누군가 처단되고 희생된다면 그건 과연 옳은 일일까. SBS 월화드라마 <트롤리>는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트롤리 딜레마’를 소재로 하고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등장하는 트롤리 딜레마.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발이 묶인 인부 다섯 명을 향해 질주하고 당신은 레버를 움직여 선로를 바꿀 수 있는데 그 바뀐 레일 위에 무고한 한 사람이 묶여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 상황을 여러 버전으로 변환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결국 이 질문이 하는 이야기는 ‘선택’의 문제다. 정의 혹은 선의로 불리는 어떤 선택을 할 때, 그것은 누군가를(피해자) 구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를(가해자) 처단하고 희생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선택은 과연 정의라는 이름으로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트롤리>는 이 딜레마를 스토리의 주요 소재로 가져왔다. 별 탈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김혜주(김현주)와 남중도(박희순) 부부에게 ‘위기의 전차’가 달려오기 시작한다. 아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그 옷가지에서 마약이 발견된 것. 중도의 전처 소생이지만 친아들처럼 생각해왔던 혜주는 비탄에 빠지고, 정의를 부르짖던 중도는 아들을 잃은 데다 마약까지 발견되면서 정치인으로서 구설에 휘말린다.

여기에 아들이 죽던 날, 혜주와 싸우고 가출한 딸을 찾는 와중에서 너무 간절한 나머지 혜주는 남편이 의원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수사를 요구하고, 그것은 정적들에 의해 정치인의 ‘공권력 남용’이라 비판받게 된다. 또 죽은 아들의 애인으로 아이를 가졌다는 김수빈(정수빈)이 나타난다. 동시에 몇 가지 사건들이 불러온 ‘위기의 전차’가 이들 부부를 향해 달려오자, 중도는 레버를 움직여 그 여론이라는 위기의 전차가 달리는 방향을 틀어 놓는다.

마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스토킹 범죄로 한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상대가 의대생이라는 이유로 풀려난 사건을 꺼내 공개적으로 저격함으로써 여론의 방향을 바꾼 것. 그런데 그렇게 바뀐 여론이 전차처럼 그 의대생을 몰아세우고, 결국 그 스스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로써 여론은 중도를 마치 쓰레기를 처단한 ‘영웅’처럼 칭찬하지만, 막상 중도는 마음이 좋지 않다. 세상 밖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보이지만, 혜주 앞에서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무너진다.

<트롤리>는 이처럼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혜주와 중도 부부가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앞으로 이 드라마가 ‘선택의 딜레마’를 다룰 거라는 걸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진짜 하려고 하는 이야기인, 혜주의 과거와 얽힌 사건을 시작한다. 혜주 역시 과거 자신의 어떤 선택으로 인해 누군가 죽게 되는 일을 겪은 것. 그 사망한 이가 왜 그런 일을 겪게 됐는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망자의 엄마는 이유신(길해연)이고 그는 중도와 각을 세우고 있는 정치인 강순홍(장광)의 처제다. 또 그의 딸 진승희(류현경)와 그의 남편 최기영(기태영)은 모두 혜주와 동창생으로 과거 사건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인물들이다.

우연히 뉴스를 통해 중도의 아내 혜주의 모습을 보게 된 진승희는 혜주의 집을 찾아와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진다. “오랜만이다? 김재은, 아니 김혜주... 이 살인자.” 과거의 그 사건을 못내 잊고 싶었던 혜주가 이름까지 바꾸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이제 그 과거사가 드러날 위기에 놓였다. 그것은 또한 중도의 정치인생을 뒤집어 놓을 일이 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위기의 전차가 달려오는 셈이다. 과연 중도는 끝까지 혜주를 선택할까 아니면 자신의 정치인생을 선택할까.

이처럼 <트롤리>가 가져온 문제의식은 흥미롭다. 정의와 선의로 선택한 어떤 것들이 만들어내는 파장들을 담는다는 점이 그렇다. 대체로 정의라고 하면 그것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만 집중하지,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롤리>가 가진 이러한 흥미로운 문제의식과 별개로 이를 담아내는 드라마의 전개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좀 생각해볼 문제다.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꽁꽁 숨겨 놓은 채 진실이 무엇인가를 궁금하게 만들며 끌고 나가는 <트롤리>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적 색깔을 가져왔다. 그래서 많은 인물들이 과거사를 숨기고 있다. 혜주도 그렇지만 그의 남편 중도도 어딘가 의문점들이 있어 보인다. 또 그들의 집에 들어와 있는 아들의 애인이라는 수빈도 그렇고, 과거 혜주와 얽혀 있는 승희와 기영의 이야기도 뭐 하나 분명히 드러내 보여주지 않고 있다.

미스터리가 갖는 힘이 없는 건 아니지만, 꽁꽁 숨기는 것만으로는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적당히 정체들을 드러내고 그 파장의 결과들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결국 <트롤리>는 사건이 만들어내는 의외의 파장들과 그 딜레마가 중요한 드라마다. 굳이 미스터리로 숨기기보다는 드러내놓고 그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양상을 보게 해주는 것이 더 스토리에 있어서나 메시지 전달에 있어서나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롤리>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책을 수선하는 직업을 가진 혜주와 어려서부터 약자들을 도우며 그것이 발단이 되어 정치계로 들어온 그의 남편 중도라는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케미다. 정치라는 것이 본래 선택하는 일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파장에 힘겨워 하는 남편을 꼭 안아주는 아내가 책을 수선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의미심장해서다. 찢어진 책장을 다시 붙이고, 망가진 책을 되살리는 것처럼 혜주는 과연 낡고 찢겨진 자신의 과거와 점철된 관계들을 수선할 수 있을까. 만일 어떤 선택을 통해 남편과의 관계 또한 위기를 맞는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혜주라는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기대감이 <트롤리>의 중요한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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