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일하는 김현주, ‘판타스틱’에 딱 어울리는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 김현주는 참 독특한 연기 영역을 갖고 있는 연기자다. 그녀는 여전히 미니시리즈에서 젊은 연기자들과 트렌디한 여주인공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기자면서도 동시에 주말극 같은 장편드라마에서 중년의 사랑을 연기할 수도 있는 연기자다. 가볍고 풋풋한 이미지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농염하고 섹시한 느낌을 주는 역할로 변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어찌 보면 상반될 수도 있는 이미지를 모두 소화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이전 작품인 <애인있어요>에서 1인2역(사실상은 1인3역에 가까운)을 해낼 수 있었다.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에서 그녀는 역시 열 일하는 캐릭터를 맡았다. 그가 연기하는 이소혜라는 인물은 드라마 작가로서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역할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만 억눌려 있지는 않다. 드라마작가로서 작품을 쓰면서 신인 시절 함께 했던 한류스타 류해성(주상욱)과 다시 작업을 하게 되고 그와의 밀고 당기는 멜로 연기 또한 선보여야 한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소울메이트처럼 등장한 별종의사 홍준기(김태훈)와의 미묘한 관계가 얽혀있다.

게다가 학창시절 둘도 없던 친구들 또한 그녀가 풀어 나가야할 이야기 중 하나다. 특히 명문가의 며느리로 들어갔지만 사실상 노예처럼 살아가는 백설(박시연)이 각성하고 변화하는 과정에는 바로 이 이소혜라는 주인공이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여주인공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 여겨지긴 하지만 김현주가 특히 이 작품에서 열 일을 해야 하는 까닭은 이소혜가 다름 아닌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 인물은 그래서 지금껏 그냥 지나쳐 오던 모든 일들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판정을 받았지만 별 실감이 없던 그녀는 급성 폐렴으로 마치 죽을 것처럼 아파 쓰러진 연후에야 그 말기 암이라는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녀는 마치 바로 죽을 사람처럼 행동한다. 꿈에도 그리던 우유니 사막을 가기 위해 모아놨던 돈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여긴 그녀는 친구와 함께 마음껏 쇼핑을 하고 미용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 돈을 모두 쓴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즐거워 하지만 그럴수록 그 얼굴에는 어떤 허전함이나 허무함 같은 것들이 드리운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갑자기 클럽으로 발길을 돌린 그녀는 마치 망가지려 작정한 듯 술에 취해 춤을 춘다. 다잡으며 살아왔던 자신을 놓아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녀가 친구인 백설을 변화하게 만드는 그 과정은 바로 이 시한부라는 인생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통쾌한 답변처럼 보인다. 시댁에서 눈치 보며 새장의 새처럼 살아가는 그녀에게 이소혜는 오토바이를 선물해주고, 시댁에서 남편과 외도한 여자가 버젓이 찾아와 남편과 시댁 식구들과 저녁을 먹을 때 한복차림으로 시중을 들던 그녀에게 이소혜는 오토바이에 걸맞은 가죽재킷을 선물한다. 가짜로 살아가는 그녀를 진짜의 삶으로 되돌리려는 것.

김현주는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했지만 <판타스틱>에서도 열 일하는 캐릭터다. 시한부로 절망하면서도 그래서 더 절실해진 삶의 마지막을 불태우려 한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생겨나는 이 절실함은 주변으로도 전이된다. 그녀의 친구들에게도 또 절실함이 없어 한류스타이면서도 여전히 발 연기를 하는 남자에게도. 다양한 면면들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이소혜라는 캐릭터. 김현주라는 연기자의 매력을 볼 수 있는 ‘판타스틱’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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