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지 익숙한 ‘모범가족’, 그럼에도 단숨에 보게 만드는 힘은

[엔터미디어=정덕현] “넌 우리 가족이 정상으로 보이냐? 그러니까 우리 가족 중에 정상이 있냐고. 갑자기 저승에서 돌아온 할아버지. 태어날 때부터 고장 난 너. 맨날 히스테리 부리는 엄마에 사고뭉치 나. 그리고 저기 주인 잃은 개까지.” 동하(정우)의 딸 연우(신은수)는 동생 현우(석민기)에게 그렇게 말한다. 선천적인 심장병을 갖고 있지만 늘 밝은 현우가 반색하며 “아빠만 정상이네?”라고 말하자 연우는 “아빠가 우리 집에서 제일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이 짧은 장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모범가족>의 동하네 가족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범하고 모범적으로까지 보이는 동하네 가족이지만 실상 이 가족은 붕괴 직전이다. 아들은 몸이 아프고 딸은 사춘기에 엇나가고 있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고 동하는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이사장에게 돈을 썼지만 그 이사장이 성폭력으로 검거된 상황이다. 게다가 동하가 버린 셈 치고 살아가는 아버지(오광록)까지 찾아온다.

극한에 몰린 동하가 어느 날 사람이 죽어 있는 사고 차량에서 돈 다발을 발견하고 이것이 그와 그의 가족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린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돈을 챙기고 사체마저 유기하지만 그 돈을 찾아내려는 마약조직 광철(박희순)에게 붙잡혀 배달원 노릇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마약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광철을 쫓아다니는 마약수사팀장 주현(박지연) 또한 이런 상황을 조금씩 알게 되고 드라마는 가족을 지켜내려는 동하와 돈을 되찾으려는 광철, 그리고 마약조직을 일망타진 하려는 주현의 서로 다른 욕망들이 뒤엉킨다.

그런데 드라마가 그리려 하는 건 붕괴 직전에 몰린 동하네 가족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 드라마에는 세 개의 패밀리가 등장한다. 동하네 가족과 광철이 충성을 다해왔지만 이제 그를 버리려는 마약 조직 패밀리,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몇 년을 수사하고 헌신했지만 주현 같은 형사들을 소모품처럼 이용하고 버리려 하는 경찰 패밀리(?). 동하가 돈 때문에 위기에 처한 가족을 어떻게든 구해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면, 광철은 자신을 제끼려는 조직 내 강준(김성오)과 싸우며 독립하려 하고, 주현은 마약조직을 추적하면서도 그들과 연루된 내부자가 경찰조직에 있다는 걸 알고는 분노한다.

물론 <모범가족>의 대학교수 동하의 붕괴와 그의 가족이 처한 위기상황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브레이킹 배드>와 <오자크>가 그 작품들이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화학교사 월터 화이트가 마약을 직접 생산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브레이킹 배드>에, 잘 나가던 재무 컨설턴트 마티가 어쩌다 마약조직과 연루되어 온 가족이 미주리 주 오자크로 이주해 조직의 돈을 세탁하는 과정을 다룬 <오자크>의 서사가 섞여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모범가족>이 차별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건 제목에도 담겨 있는 ‘가족’에 대한 서사다. 저들 <브레이킹 배드>와 <오자크>가 서구의 장르물들이 그러하듯이 그 기상천외한 극장 상황들의 자극들을 특유의 유머코드와 뒤섞어 전하고 있다면, 이 드라마는 조직과 어쩌다 연루되었다는 그 비슷한 서사를 가져와 좀 더 무겁게 질문하고 있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처음에는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여기진 동하네 가족은 이 살벌한 사건들과 연루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더 끈끈한 진짜 가족의 면면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이 사건을 수사하다 경찰 내부에 마약조직과 연루된 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강주현은 시니컬하게 혼잣말처럼 툭 내뱉는다. “가족이라는 게 참 웃겨. 원수처럼 으르렁거려도 절대 돌아서진 않거든. 우린 경찰 가족이라면서 맨날 씨발, 뒤통수치고 배신 때리고 그러잖아. 가족 아니야 우리. 걔네는 진짜 가족인 거고.” 이건 패밀리라 여겼지만 필요 없어지니 자신을 제거하려 하는 조직 앞에서 독립하려는 광철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진짜 가족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짜 가족이란 무엇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을까. 그건 좋을 때가 아니라 힘겨울 때 함께 하는 존재들이다. 동하는 처참하게 붕괴된 자신을 발견하고 자꾸만 과거 단란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이 위기 상황에 자신 옆에 있어주는 가족이 진짜 가족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그 누구 하나 ‘모범’이라고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선과 악으로 분명히 나뉘기 보다는 그 둘이 공존하는 인물들이랄까. 문학을 가르치는 동하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를 통해 “강한 것은 악”이고 또 위기 상황에서 누군가를 생존하게 해주는 것 역시 “악”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하이드만큼 지킬 박사의 면면도 가진 존재들이다.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드라마 속에서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는 캐릭터는 동하의 아들 현우다. 그는 아프지만 늘 가족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현우는 동하에게 병실에서 창밖 저 멀리 선회하고 있는 비행기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까부터 저러고 있지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비행기는 착륙하는 순서가 있거든요. 저 비행기는 하늘을 빙빙 돌면서 대기하고 있는 거야.” 그의 이 말은 동하네 가족이 바로 그 비행기처럼 선회할 뿐이라는 걸 드러낸다. “아빠. 내가 계속 아픈 게 가족들한테 좋을까요? 아니면 빨리 낫는 게 좋을까요? 내가 아프면 온 가족이 다 모이잖아요.” 현우는 그렇게 물으며 자신의 희망을 말한다. “연료가 바닥나기 전에는 착륙하겠죠? 저 비행기. 아무 문제없이.” 흔들려도 너무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올 수 있는 존재. 좋을 때보다 힘겨울 때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라고 <모범가족>은 피가 철철 흐르는 이 누아르를 통해 말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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