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 KBS라 필요한 정통사극, 익숙한 스토리·조악한 CG 어쩌나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5년만의 대하사극이다. 그간 공영방송 KBS 대하사극 부활에 대한 목소리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최근 들어 사극이 대부분 역사보다는 상상력에 무게를 두고 제작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정사를 제대로 알려준다는 의미에서 정통사극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통사극이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정사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그 역사를 극화해 보다 생생하게 그려낸다고 볼 수 있다. <태종 이방원>은 그 시작을 훗날 세종이 될 충녕대군 앞에서 선위를 반대하는 신하들에 대한 광기를 드러내는 태종 이방원(주상욱)의 모습으로 시작했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형제들까지 다 죽였던 이방원이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 칭하며 회한과 광기가 뒤섞인 모습을 드러낸 것. 그 앞에서 벌벌 떨며 눈물을 쏟아내는 충녕대군에게 태종 이방원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니 이젠 너의 차례다. 세자. 성군이 되거라. 네가 성군이 된다면 나도 사람이 될 것이고, 네가 그렇지 못하면 나는 괴물로 남을 것이다.”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첫 발을 이방원이 충녕대군에게 선위하려는 순간으로 시작한 건 이 사극의 서사를 가늠하게 한다. 갖가지 위기를 넘고, 때론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할 일까지 함으로써 왕좌에 오른 이방원의 그 치열한 일생이 담길 것이라는 것. 그는 한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괴물처럼 보이는 인물이었지만,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역사를 통해 중요한 인간으로 서게 되는 그런 인물이었다는 걸 이 첫 시퀀스는 담아낸다.

그리고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성계(김영철)의 위화도 회군으로 돌아간다. 요동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명을 어기고 회군을 결정하자 우왕이 그의 가족들을 모두 잡아들이려 하는 와중에 모친과 동생들을 이끌고 도주하는 이방원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역시 대하사극의 익숙한 장면인 전투신도 빠지지 않았다. 회군한 이성계가 개경에서 우왕의 군대와 성벽을 두고 벌이는 전투가 그려졌다.

오랜만에 돌아온 대하사극이어서 첫 방에 쏠린 관심은 높았다. 첫 시청률이 8.7%(닐슨 코리아).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첫 방이 남긴 숙제도 적지 않다. 일단 너무 많이 재현되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스토리(역사 자체)가 주는 익숙함이 가장 큰 스포일러가 되고 있다. 정통사극인지라 새로운 인물이나 스토리를 넣어 재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은 그래서 <태종 이방원>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5년 동안 OTT 등을 경험하며 훨씬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어딘지 어색한 CG(특히 전투신에서)나 과거의 대하사극을 다시 보는 듯한 익숙한 연출이 여전히 먹힐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여기에는 출연한 배우들의 익숙함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방원 역할의 주상욱은 새롭지만, 이성계 역할의 김영철이나 방우, 방과, 이지란 역할을 맡은 엄효섭, 김명수, 선동혁 등등의 배우들은 과거 대하사극에서 그대로 돌아온 느낌이다. 정통사극이라 하더라도 그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지금의 시청자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정통사극은 KBS라는 공영방송에는 중요한 가치를 갖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정사를 담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정통사극이라고 해서 현재적 눈높이에 맞는 연출이나 스토리 구성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게다. 정통사극의 가치를 좀 더 효과적으로 구현해내기 위해서라도 그 익숙한 역사를 새롭게 재현해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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