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새롭다는 호평과 새롭지 않다는 혹평 사이
KBS 정통 대하사극의 5년 만의 컴백, ‘태종 이방원’의 첫 인상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3인 3색 TV비평’이라는 문구 아래로, 붉은색으로 그려진 구형 브라운관 TV가 보인다. 흰색 글씨로 쓰여진 코너 제목 ‘TV삼분지계’가 TV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TV 상표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흰색 글씨로 매체명 ‘엔터미디어’가 적혀있다. 붉은색 TV 아래, 좌측에는 남지우, 이승한, 정석희 세 이름이 세로로 나열되어 있고, 우측에는 흑백으로 찍힌 남지우, 이승한, 정석희 평론가의 사진이 가로로 나열되어 있다. '사진 설명 끝'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3인 3색 TV비평’이라는 문구 아래로, 붉은색으로 그려진 구형 브라운관 TV가 보인다. 흰색 글씨로 쓰여진 코너 제목 ‘TV삼분지계’가 TV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TV 상표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흰색 글씨로 매체명 ‘엔터미디어’가 적혀있다. 붉은색 TV 아래, 좌측에는 남지우, 이승한, 정석희 세 이름이 세로로 나열되어 있고, 우측에는 흑백으로 찍힌 남지우, 이승한, 정석희 평론가의 사진이 가로로 나열되어 있다. '사진 설명 끝'

KBS가 5년 만에 선보이는 정통 대하사극, 그것도 계유정난과 더불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사극의 소재인 조선 개국사를 다룬 작품. KBS 주말드라마 <태종 이방원>은 시작부터 무거운 짐을 이고 출발하는 작품이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대하사극으로는 불멸의 레퍼런스인 KBS <용의 눈물>(1996-1998)이 있고, <용의 눈물>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에게도 7년 전 방영된 KBS <정도전>(2014)은 그리 멀지 않다. 퓨전사극으로도 SBS <육룡이 나르샤>(2015-2016), JTBC <나의 나라>(2019)로 다뤄진 바 있는 이 시기를, 과연 <태종 이방원>은 어떻게 새롭게 이야기할 것인가?

첫 2회차가 방영된 지금 시점에선 답이 애매해 보인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의 평이 극단적으로 갈렸기 때문이다. 냉정한 평가는 정석희 평론가와 이승한 평론가의 몫이다. 정석희 평론가는 배우들의 연기력, 인물 해석, 연출과 CG 모두 아쉽다고 평하며, 지금 “왕권에 바탕을 둔 왕조국가를 지향하며 정도전을 숙청한 인물”에게서 시대에 걸맞는 리더상을 가늠해보자는 거냐고 묻는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드라마 '태종 이방원' 포스터. 주상욱이 연기하는 태종 이방원이 강렬한 눈빛으로 정면을 노려보고 있다. 흑백의 대비가 강렬한 가운데, 화면 위를 가로지르는 불티들만 붉게 빛난다. 이방원의 얼굴 왼쪽으로 ‘가(가족)를 넘어 국(나라)으로, 국가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홍보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진 설명 끝'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드라마 '태종 이방원' 포스터. 주상욱이 연기하는 태종 이방원이 강렬한 눈빛으로 정면을 노려보고 있다. 흑백의 대비가 강렬한 가운데, 화면 위를 가로지르는 불티들만 붉게 빛난다. 이방원의 얼굴 왼쪽으로 ‘가(가족)를 넘어 국(나라)으로, 국가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홍보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진 설명 끝'

이승한 평론가의 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물들의 욕망과 복잡한 속내가 드러나기 용이한 거대한 정치적 격변인 위화도 회군을 기점으로 잡았으면서도, 주요 등장인물들을 지극히 평면적으로 묘사한 탓에 이벤트의 입체성도 인물의 깊이도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다.

반면 남지우 평론가의 평가는 비교적 호평이다. OTT 플랫폼의 호흡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스타일리시한 시퀀스 연출은 KBS 정통 사극이 새로운 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꾀한 과감한 변신이며, 아직 많은 게 서툴고 어설픈 스물한 살의 젊은 문관 이방원이라는 캐릭터 설정 또한 충분히 새롭다는 평가다.

모처럼 극과 극으로 갈린 [TV삼분지계]의 평가,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은 어느 쪽에 가까우셨을까?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사진 좌측부터 흑백으로 찍힌 정석희 평론가의 사진. 그의 어깨 너머로 ‘TV삼분지계’가 적힌 붉은색 TV가 보인다. TV 오른쪽에 ‘정석희의 시선’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사진 좌측부터 흑백으로 찍힌 정석희 평론가의 사진. 그의 어깨 너머로 ‘TV삼분지계’가 적힌 붉은색 TV가 보인다. TV 오른쪽에 ‘정석희의 시선’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 새로움은 없고 만듦새는 갑갑한

무릇 익히 아는 맛에는 평가가 박하기 마련이다. 어지간한 솜씨로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서다. KBS 사극 <태종 이방원>이 바로 그렇다. 이성계가 조선을 만든 이야기, 또 그 이후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이방원의 이야기는 숱하게 구전으로, 역사 교과서로, 소설을 비롯한 온갖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 살아온 세월이 길면 길수록 더 잘 아는 맛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요 인물을 연기해 명성을 얻은 배우는 오죽이나 많았나. 11일 첫 화 방송 직전에 공개된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역적의 아들이 되다’에 따르면 ‘이방원’이 드라마에서만 열네 차례, KBS만 해도 1973년 작 <세종대왕>부터 시작해 일곱 차례나 등장했다고 한다. 따라서 연기 비교는 당연지사가 아닐는지. 1996년 작 <용의 눈물>을 즐겨 시청했던 이들은 유동근·최명길과 주상욱·박진희의 조합을 비교할 것이고 2014년 작 <정도전>이 인상 깊었던 이들은 이성계 역할의 유동근과 김영철을, 정도전 역할의 조재현과 이광기의 연기를 비교할 밖에.

그러나 아쉽게도 2화가 방송된 현재 참신한 해석이라고 칭찬할 만한 캐릭터는 눈에 띄지 않는다. 흐름이 끊기는 연출과 성에 안 차는 CG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 틈틈이 삽입되는 내레이션, 특히 2화의 최근의 사진을 곁들인 이방원과 스승 운곡 사이의 일화는 새로운 시도라고 보기엔 뜬금없었다.

 

무엇보다 KBS가 <정도전> 이후 5년 만에 왜 또 다시 같은 시대 배경의 드라마를 선보일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이상적인 왕도 정치를 꿈꾼 조선 건국의 숨은 실세였고 반면 이방원은 왕권에 바탕을 둔 왕조국가를 지향하며 정도전을 숙청한 인물이 아닌가. 이방원이 어떻게 권력을 잡아 왕위에 올랐고 어떤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렸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이 시대에 걸맞은 리더가 누구인지 가늠해보자는 것인가?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사진 좌측부터 ‘TV삼분지계’가 적힌 붉은색 TV가 보인다. TV 오른쪽에 흑백으로 찍힌 이승한 평론가의 사진. 그의 오른쪽에 ‘이승한의 시선’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사진 좌측부터 ‘TV삼분지계’가 적힌 붉은색 TV가 보인다. TV 오른쪽에 흑백으로 찍힌 이승한 평론가의 사진. 그의 오른쪽에 ‘이승한의 시선’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 프롤로그를 지나자마자 꺼지는 기대감

“네 눈엔 내가 괴물이 아니더냐? 이유를 말해 보거라! 어찌 하여 내가 괴물이 아닌 것이냐? 보아라. 내가 박살낸 것들이다. 산산이 부서진 충효의 파편이다! 창칼로 임금을 겁박하여 충을 부셨고, 아비의 목에 칼날을 들이대어 효를 부러뜨렸다. 나를 위해 헌신한 아내를 내팽개치며 신의마저 짓밟았다! 이러고도 내가 괴물이 아닌 것이냐?” <태종 이방원>의 시작은 양위를 거두어 달라는 충녕대군(김민기)의 간청에 태종(주상욱)이 광기어린 자기모멸을 쏟아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선 건국사에서 가장 냉정한 숙청을 저지른 태종의 처절한 울부짖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작품이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탐구하는 밀도 높은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준다.

아쉽게도 그 기대감은 프롤로그가 끝나자마자 빠르게 휘발된다. 위화도 회군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은 <태종 이방원>은, 각자의 정치적 셈법과 복잡한 욕망이 뒤엉켜 용광로처럼 타오른 그 거대한 정치적 사건을 평면적인 캐릭터들로 채워버렸다. 이성계(김영철)는 오로지 권문세족의 학정에 시달리는 백성 생각에 말머리를 돌리는 강직한 무장으로, 이방원은 정무를 미루는 상관에게 백성들 걱정을 하라고 직언을 하는 피 끓는 관료로, 이지란(선동혁)은 아들을 먹이겠다고 군영을 돌아다니는 개를 잡아 삶는 개그 캐릭터로 등장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주상욱이 연기하는 태종 이방원이, 김민기가 연기하는 충녕대군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깨진 도자기 파편을 손에 쥔 채 피를 흘리며 광기를 토해내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주상욱이 연기하는 태종 이방원이, 김민기가 연기하는 충녕대군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깨진 도자기 파편을 손에 쥔 채 피를 흘리며 광기를 토해내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인간의 복잡한 속내와 입체적인 면모들을 보여주기 좋은 역동적인 역사적 이벤트를, 교과서적인 모범생 주연들과 감초 조연이라는 지극히 평면적인 접근으로 채운 것이다. 입체성이 보이지 않으니 따라가야 할 주연은 어떤 인물인지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배우들의 연기력을 지적하기도 무색하다.

위화도 회군부터 창왕 옹립에 이르는 일련의 정치적 이벤트를 2화만에 주파하느라 초반부를 잰 걸음으로 달려야 했던 것은 알겠다. 그런데 전투 장면은 조악하고 편집 리듬도 툭툭 튀는데 인물까지 평면적이라면, 시청자 입장에서 어디에 마음을 두고 <태종 이방원>을 봐야 할지 가늠이 어렵다. 5년만의 선보이는 대하사극이라 마음이 급한 건 알겠는데, 시청자가 굳이 이런 식으로 조선 건국사를 다시 봐야 할 명분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사진 좌측부터 흑백으로 찍힌 남지우 평론가의 사진. 그의 어깨 너머로 ‘TV삼분지계’가 적힌 붉은색 TV가 보인다. TV 오른쪽에 ‘남지우의 시선’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사진 좌측부터 흑백으로 찍힌 남지우 평론가의 사진. 그의 어깨 너머로 ‘TV삼분지계’가 적힌 붉은색 TV가 보인다. TV 오른쪽에 ‘남지우의 시선’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 스물다섯 스물하나, 태종 이방원

2004년 <불멸의 이순신>, 그리고 2006년 <서울 1945>를 애청하던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 꼬마가 104부작의 거대서사를 돌파하는 끈기는 과연 어디에서 왔으며, 광복 전후의 이념 대립과 계급투쟁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시늉은 누구로부터 배웠던 걸까. TV 시리즈의 16부작 호흡에도 빠르게 지쳐버리고, 30분 단위로 휴식을 허락하는 OTT 플랫폼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2021년 지금을 생각하면, 그때 그 아이는 내가 아닌 것만 같다. 지상파를 대표하는 정통사극 시리즈, KBS 대하드라마가 다시 시작된다는 소식. 사실 나는 유년의 반가움은커녕, 민춤하니 잔뜩 겁을 먹은 스물다섯이 되어 <태종 이방원>의 첫 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주상욱이 연기하는 젊은 시절의 이방원이, 예지원이 연기하는 이성계의 경처 강씨부인과 강가에서 대화하며 아련하게 웃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시작' 주상욱이 연기하는 젊은 시절의 이방원이, 예지원이 연기하는 이성계의 경처 강씨부인과 강가에서 대화하며 아련하게 웃고 있다. '사진 설명 끝'

그런데 이 드라마, 뭔가 다르다. 사람의 손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보폭이 아주 큰 롱 테이크로 연출된 1화의 오프닝은 기존의 장르 규범에서 보자면 대단히 생경한 것이었다. 태종의 불안한 심리와 함께 초점은 흔들리고 심도는 요동치는 한편, 그의 꿈자리를 뒤덮은 끔찍한 학살 장면은 넷플릭스 <킹덤>의 몇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스타일리시했다. ‘정통사극’이란 말에 한 번 쫄고, ‘대하드라마’라는 말에 두 번 쪼그라든 어깨가 금세 펴지는 느낌이었다. KBS는 지난 40년의 경력을, 새로운 세대의 시청자들을 위해 과감하게 변주하는 길을 택했다.

<태종 이방원>이 KBS 대하 사극의 자장, 그 바깥에 머무르며 예외성을 만들어내는 지점은 연출뿐만 아니라 이야기에서도 온다. 아버지 이성계(김영철)의 위화도회군 당시, 스물한 살짜리 문과 관리에 불과했던 아들 방원(주상욱)의 모습은 어딘가 어리벙벙하고 때론 코믹하기까지 하다. 동료의 고자질로 무장들에 쫓기기 시작한 그는 여느 영웅들처럼 날렵하게 말에 올라탈 줄도 모르거니와, 칼싸움과 맨몸전투엔 완전 젬병이다. 그러한 위기 때마다 현명한 여성과 강인한 동물의 도움을 받아가며 개경으로 무사 귀환한 방원, 2화에 들어 우리는 순수한 질문과 근원적 고민을 짊어진 한 젊음의 눈동자를 확인한다. 형님, 궁금합니다. 아버지, 여쭙고 싶은 게 많습니다. 혁명의 박동, 신세계의 도래를 목전에 둔 스물한 살의 어느 날. KBS의 새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어느 젊음의 물음을 안고, 또 다른 젊음의 응답을 기다리며 5년 만의 여정을 시작했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사진·영상=KBS.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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