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의 동물 학대, 사과만 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1년 12월, <태종 이방원>이 돌아오기 전까지 KBS 대하드라마는 2016년 3월 26일 이후 <장영실>을 끝으로 긴 동면에 빠져 있었다. 1981년 시작해 한때 시청률 60%를 달성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던 주말 대하드라마는 PPL 조달이 불가한 제작여건과 연이은 흥행 실패로 멈춰 섰다. 대하드라마 시청률이 해가 갈수록 낮아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효율이 떨어진다. 실제로 <태종 이방원>의 경우 10%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지만 그 앞에 편성된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는 30%대 중반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시청률이 평가의 전부가 될 순 없지만 명백한 중장년 콘텐츠다보니 OTT를 핑계로 대기도 어렵다. 일종의 사극 치트키라고 할 수 있는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삼고, 대하드라마 전성기의 주역인 김영철 등이 열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도 아니다. 그럼에도 햇수로 6년 만에 대하드라마가 어렵게 부활한 이유는 KBS만의 콘텐츠, 공영방송의 가치를 드러내는 측면이 크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정통사극은 KBS니까 가능하다는 거다. 그리고 사실이긴 하다.

KBS는 “2021년 5월 수신료 공론조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의견 가운데 정통사극 부활을 원하는 요구가 많았다.”면서 2022년을 대하드라마 부활의 원년으로 삼고 <태종 이방원> 이후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을 소재로 한 대하사극도 준비 중이다. 지난 6일 국회에 제출한 수신료 조정안에 따르면 KBS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정통 대하드라마’ 제작에 23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또한 대하·정통사극과 같은 고품격 콘텐츠 제작을 위해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3800원으로 인상하길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 19일 동물자유연대가 ‘생명과 부상 위협에 노출된 동물 연출, 안전 기준 부재한 KBS의 변화 촉구’를 주장하면서 공개된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 촬영 영상과 하루 뒤 나온 KBS의 안일한 사과문을 보고 두 번의 충격과 두 번의 분노를 느꼈다. KBS가 늘 주장하는 수신료의 가치가 무엇인지는 언제나 모호했지만 이번만큼은 수신료를 돌려줘야 마땅하다. 제작 현장의 처참한 후진성과 말문이 막히는 사회문화적 감수성, 이쯤 되어도 사태 파악조차 안 되는 KBS의 위기관리 능력을 여과 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촬영기법이나 방식이란 말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낙마하는 장면 연출을 위해 정말로 발목에 밧줄을 묶은 말을 힘껏 달리게 한 다음 여러 장정들이 불시에 밧줄을 당겨 거꾸러뜨렸다. 당연히 말은 땅에 크게 처박혔고, 스턴트맨도 나가 떨어졌다. 스턴트맨의 안위도 걱정이지만 그는 최소한 그런 상황이 벌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달리던 말은? 말의 신체적 특성상 운이 정말로 좋지 않는다면 부상 혹은 죽음을 피하기 어려운 촬영기법(?)이다. 해당 영상은 잔인해서 추천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KBS가 사건화되고 하루 뒤 겨우 밝힌 사과문에서 해당 말은 그 촬영 이후 일주일 후 죽었다고 한다. 인간이 보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위해 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촬영기법이 2021년(촬영일 기준) 현실 세계에서 벌어졌다.

그런데 사과문은 더욱 아연실색하게 했다. 모두가 두 눈으로 어떻게 촬영되었는지 보게 됐는데, 배우와 말의 안전을 고려해 며칠 전부터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해 준비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뻔뻔한 해명을 담았다. 물어보고 싶다. 작은 매트 조각하나 하나라도, 그 어떤 안전 설비 없는 맨 땅에서 달리는 말의 발목을 줄로 잡아채 거꾸러뜨리는 데 과연 며칠 전부터 어떤 시뮬레이션을 했다는 건가? 아니 며칠 동안 고민했다면 대비가 아니라 실행을 했으면 안 되는 일이다. 제도권 교육을 받았고 어지간한 사고능력이 있다면, 그 방식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며칠이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 장면이 문제가 되는 건 카메라와 드라마 촬영이란 목적을 제거하면 완벽한 동물 학대 현장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때로 너무 태연하게 잔인해진다.

사과문의 마지막 문단은 더 가관이다. 그대로 옮겨보겠다. “KBS는 이번 사고를 통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다시는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각종 촬영 현장에서 동물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방법을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조언과 협조를 통해 찾도록 하겠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벽에 부딪혀보니 차가 부서지고 운전자가 다치더라 수준의 사고다. 보도국까지 있는 방송사의 공식 답변이 이 수준이라 침통하다. 참고로 KBS는 1981년부터 사극의 전통을 쌓아왔고, 자기들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콘텐츠로 정통사극, 대하 역사 드라마를 꼽았다. 그간 이런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했을까. 대하드라마뿐 아니라 이 방송사가 변화와 발전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극단적인 단면이다.

단군 이래 우리네 문화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이 가장 고조된 오늘날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찬물을 거하게 뿌렸다. 상상 이상으로 후진적인 스턴트 연출에 깔린 생명 경시 풍토는 충격을 넘어 가히 반사회적이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자리에서 내려와라 책임지라는 외침은 건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생명이 죽어나갔음에도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을 못하고 있는 공영방송사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동물의 위상이 높아진 게 아니라 상식의 허들이 기준 이하로 너무 낮다는 점에서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난국이다.

사과문 마지막 문장처럼 동물애호가와 시청자들에게만 사과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일원이라면 동물보호를 위한 최신 프로토콜은 몰라도 최소한 생명이 소중한 존재라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건화 되고 며칠이 지나도록 KBS는 그걸 여전히 모르는 것 같다. 이런 방송사가 전하는 역사인식이란 게 과연 가치가 있을까? 수신료의 가치는? 그래서 KBS의 사과문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한 결과가 그 장면이라면 그 콘텐츠와 제작 주체는 심각하게 사회와의 격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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